파란 벽돌을 만나다.-1
오늘은 파란 벽돌의 사무실을 찾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그의 일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달라.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파란 벽돌입니다. 반갑습니다.
- 그건 아이돌식 인사법 아닌가? 어울리지 않는 언행은 삼가해 달라. 언짢으니까......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올린 글들에서 제 정체가 부분 부분 노출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해 보면 대충 아시겠지만 50대의 서울 모 대학병원 의과대학 교수입니다.
- 파란 벽돌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전에는 본명을 계정명으로 내세우기도 하는 등 자신에 대한 정보 노출을 꺼리지 않던데 혹시 관종(관심 종자) 아닌가?
전혀 아닙니다. 저는 원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다른 이들 앞에 나서기도 좋아하지 않고, 유명해지기도 바라지 않는 평범한 아저씨입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 음, 당신을 직접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튀지 않는 외모에 조용한 목소리, 인터뷰어인 나조차 본분을 잊고 졸리게 만드는 정말 관심이 1도 가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의과대학 교수의 일상'이라는 부제를 단 글을 쓰면서 아직까지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안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본시 보기와는 달리 입을 열면 청산유수(靑山流水)요, 붓을 들면 일필휘지(一筆揮之)라 백성들이 좋아라 하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지어낼 수 있습니다. 제가 내건 글귀의 제목은 그러하나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기 전, 보는 이들의 흥취를 돋우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달구기 위해, 맛보기로 재미진 얘기들을 털어놓은 것뿐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 몸이 종일 하는 일을 들려드리면 지나가던 소도 걸음을 잊고, 집 지키던 개도 제 일을 잊어 담장으로 넘나드는 도적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허허허.
- 보아 하니 얼마 전 붓을 꺾었다는 진인(塵人) 조은산인가 하는 사람을 흉내내려는 것 같은데 그이처럼 재미나지도 않고 재기발랄(才氣潑剌)하지도 않으니 시답지 않은 짓은 냉큼 삼가고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기를 바란다.
아, 죄송합니다. 그분이 자리를 비운 동안 틈새시장이라도 노려 볼까 하고 무리를 했습니다. 제 목소리로 말하겠습니다.
- 벌써 몇 번째 사과인가? 원래 그리 사과를 잘하나? 사과를 할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 음...... 하여튼 당신은 언제 출근하나? 의사들은 대부분 부지런하다고 하던데....
예, 저의 출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6시 전에는 제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그럼 아마도 저의 기상 시간이 궁금하실 텐데... 그것도 일정하지 않습니다만 대체로 3-5시 사이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 아니, 그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스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의 소설에 나왔던 주인공처럼 불면증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요, 불면증은 없습니다. 머리만 대면 잡니다. 다만 전날 일찍 자는 것뿐입니다. 저녁잠이 많아서요. 이런 생활 패턴을 가진지는 3-4년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는 정말 아침잠이 많았거든요. 중년에 들어서면서 수면 습관이 바뀌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 그럼 정식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나?
제 병원에서의 정식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누구도 이렇게 근무하지는 않지요. 많은 분들이 보통 8시 이전에 근무를 시작합니다. 특히 의사들은 오전 7시부터 각종 세미나 등 교육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뭐,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는 교육과 자기 계발은 의사에게 있어서는 필수입니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뒤쳐지게 되니까요.
저는 코로나 사태 전에는 일주일에 1-2회 정도 아침 7시에 우리 과 전공의와 전임의 교육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물론 저도 배우고요. 하지만 요즘은 감염 전파를 막기 위해 병원 차원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 교육 시간도 조금 불규칙해졌습니다.
교육이 없는 날에는 8시경 제 담당 입원 환자분들을 위해 병실 회진을 도는 것으로 병원 일과를 시작합니다.
- 출근은 6시 전인데 병원 일과는 8시부터라니 그 사이에 시간이 남는다. 그동안 뭐하나? 솔직히 말하라.
그 시간에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주로 합니다. 밀린 일이나 급한 일을 할 때도 있고요. 아마도 이 시간이 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거든요. 요즘은 브런치에 올릴 글을 1-2시간 정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주 다양한 일을 합니다.
가령, 그날 생일을 맞은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도 보내고, 밤새 들어온 이메일을 처리하고 답장도 보냅니다. 다 아시다시피 업무에 관련된 이메일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해야 할 일(to do)'을 만들어 주는 '잡일 제조기'이지요. 이메일 하나당 해야 할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아침 시간에는 그중에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즉각 해결하고 시간이 걸릴 만한 것들은 나중에 할 일로 정리해 놓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