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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벽돌 Mar 23. 2022

나의 소들을 소개합니다.-18

파란 벽돌을 만나다.-3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이미지 출처: Gettyimages

- 머릿속으로 수술을 해본다? 그것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 것 같다. 그것이 효과가 있는가?

과거에 빅히트를 했던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이라고 아시지요? 원래 이 드라마 원작은 같은 제목의 일본 드라마였습니다. 저는 일본판 원작만 보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드라마도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겠는데,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병원 옥상에서 주인공 의사가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지휘를 한다니요? 생소하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자신이 오늘 할 중요한 수술을 미리 해보는 중이었습니다. 양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처럼 장엄하게 보였던 것이지요. 저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머릿속으로 수술부 절개부터 봉합까지 수술을 해보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안정되고 직접 수술에 들어가서는 마치 방금 해 본 수술을 반복하는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난이도가 있는 수술을 앞두고는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MBC

- 당신은 외과계 의사로서 이미 오랫동안 수술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눈을 감고서 수술 연습을 할 게 아니라 눈 감고도 수술을 척척 해낼 정도로 익숙해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신은 수술에 소질이 없는 손이 둔한 사람인 것 같다.

제가  타고난 외과 의사라고  정도로 수술에 아주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직업을 그만두어야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는 것도 아닙니다. 천부적인 소질이라는 것은 무시할  없으나 상당 부분은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할  있거든요. 의사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는 사람은 결국 일가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물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의 흉내를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 그중에서도 수술의 질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라 만한 수준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음... 당신, 지금 상당히 오만한 눈빛을 보이고 있다. 조심하기 바란다. 그럼 그 수술을 앞두고 외과 의사로서의 심정은 어떠한가? 물론 수술을 많이 해보았을 테니 떨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주 평안하지도 않을 것 같고.... 무척 궁금하다.

네, 저처럼 수술을 하는 외과계 의사들의 마음가짐이 모두 비슷할 것 같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제 친구 혹은 선, 후배 의사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거의 유사한 대답을 하더라고요. 수술을 앞두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말입니다. 그들에게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신기하게도 '두려움'입니다. 의외지요? 환자들이 생명이나 건강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제 몸을 맡기는 외과 의사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니요? 그런데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그 두려움이라는 것은 "내가 이 수술을 100% 성공적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완벽한 수술에 대한 희망과 그에 따른 가벼운 흥분 정도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뭉뚱그려서 '두려움'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만약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만하게 되고 어이없는 실수도 할 수 있겠지요. 적절한 선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도 그런 두려움을 가장 먼저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빨리 수술장에 들어가 준비한 만큼 수술을 잘 해내고 내 환자를 완치시켜야겠다.'는 조바심과 기대감도 느낍니다. 또한 내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살짝 가지게 됩니다.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무척 행복한 순간입니다.


- 오호, 이제야 처음으로 당신에게 약간의 신뢰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수술 중 돌발 상황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철저히 준비하고 차근차근 해 나가는 수술이지만 도중에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환자가 선천적으로 기형을 가지고 있다거나,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다거나, 중요한 구조물에 손상이 발생하였다거나, 뭐 그런 일들 말이지요. 경우의 수가 매우 다양해서 하나하나 다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문제들은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들을 미리 가정하고 그것에 대한 대비를 미리 연습하는 것입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수술 연습을 할 때 '이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까?'라는 상황 설정을 하고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은 여러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제가 개인적으로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프로토콜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으면 수술 중 예상밖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닥치면 당황하고 흥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수술을 받는 환자입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 가지 돌발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을 준비하고 반복 연습을 통해 그것을 숙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수의 어려운 경우들을 신속,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 당신, 또 그 오만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래, 뭐, 그 정도라면 잠시 그런 눈빛을 하고 있어도 이해해 주겠다. 하지만 너무 자주 그러지는 않길 바란다. 음..... 아까 수술장에서 호출이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네, 수술장에서 환자의 마취를 마치면 전공의와 수술장 간호사들이 환자를 수술에 필요한 자세로 위치시킵니다. 크게 나누어 환자를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눕히거나, 엎드리게 하거나, 아니면 옆으로 누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성공적인 수술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저도 청년 의사 때에는 수술장에 미리 내려가 직접 환자의 자세를 잡았습니다. 요즘은 능숙하게 훈련된 인력들이 도와주어서 직접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제가 젊은 시절 무거운 환자들을 이리저리 옮겨 눕히느라고 무리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이렇게 환자의 자세를 잡고 나면 수술 부위를 철저히 소독하고 그 부위만을 노출시킨 채 주위를 살균된 포로 덮게 됩니다. 한 겹으로 덮으면 세균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보통 3겹 이상을 덮고 또 덮습니다. 이 과정이 꽤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drapp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마치면 비로소 수술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수술장에서 수술을 담당할 집도의에게 연락하게 됩니다. 이제 내려와서 수술을 시작해도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수술장에서 오는 호출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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