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벽돌을 만나다.-5
파란 벽돌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 오호, 당신이 이제야 의사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동영상을 한 번 보라. 이것은 하얀 거탑의 수술장 장면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매우 잘 생기고, 극 중 캐릭터의 카리스마가 대단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cxNl9gQffg
- 다 보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도 저렇게 멋있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터뷰이를 우롱하는 태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미안하다. 또 궁금한 점이 있다. 외과 의사는 왜 저리 손을 앞으로 들고 다니는 것인가? 너무 어색한 자세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것을 따져 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현재 지구 상의 우점종(優占種)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 용어를 잘 모르시겠군요. 우점(優占, dominant)이라는 말은 주로 생물학에서 쓰는 말입니다. 우선적으로 혹은 우위를 점하여 지역적 환경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이룬 군집(종)의 상태를 말하고, 어느 환경에서 우점 상태를 이룬 종을 가리켜 우점종이라고 합니다.
- 그거야 현재 지구 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바와는 다르게 우리 주위 환경 속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세균입니다. 지구 상 어디에도, 또한 당신이 머무는 어디에도, 심지어는 당신의 손에도, 입에도, 위장관에도 세균이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들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우겨우 공생(共生)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 음, 그렇군. 그런데 그것이 내 질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당신 특기대로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번에는 아닙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우리 주변 어디에나 분포하는 세균 중 다수는 우리 몸에 들어와 감염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수술이라는 것은 우리 몸에서 세균이 없어야 하는 부위를 절개하고 그것을 세균이 득실거리는 주위 환경에 노출시킨 채 장시간 조작을 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수술 중 주위에 있는 세균을 묻혀서 인체 내로 오염시키는 불상사를 최대한 방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수술장 환경은 가능하면 세균의 번식과 분포, 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세균 오염과의 싸움입니다. 이런 기본 지식을 가지고 수술장의 모습이나 의료진의 행위를 보시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병원은 수술장 환경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수술장 안은 매우 청결합니다. 매 수술이 끝날 때마다 완벽히 청소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매주 한 번씩 대청소를 합니다. 먼지도 거의 없습니다. 수술장 안의 세균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실제 수술이 벌어지는 수술실 안을 한 번 보시죠.
매우 청결하지요? 이것은 설정된 사진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렇게 청결합니다. 다만 실제 수술방에는 각종 수술 기구들을 보관하는 선반이라든지 병원 업무를 볼 수 있는 컴퓨터, 수술 일정이나 과정을 보여주는 모니터들이 추가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각종 설비들의 전원을 연결하기 위한 전선도 지나다니고요. 하지만 조금 어수선해 보이기는 해도 깨끗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수술실 안에서는 공기의 질과 흐름도 통제합니다. 환자가 수술받는 수술 테이블을 중심으로 세정된 공기가 천장에서 나와 방안을 거쳐 흡인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이것을 층류(層流, laminar flow)라고 합니다. 결국 환자에게 가장 깨끗한 공기가 쐬어지게 하여 공기에 의한 세균 오염을 최대한 줄이는 시스템입니다. 사소한 곳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기 때문에 수술실을 운영하는 데에는 많은 경비가 들게 되는 것입니다.
- 하드웨어는 그렇다 치고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관리하는가?
당신답지 않게 오랜만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셨네요. 그렇습니다. 수술장 설비를 아무리 완벽하게 마련하였다고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의료진이 불결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환자를 마취하고 수술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술장 안의 의료진은 모두 예외 없이 수술복으로 갈아입는 것입니다. 수술복은 병원에서 공동 관리합니다. 한 번 사용해서 벗어놓은 수술복들은 깨끗하게 세탁하여 살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의료진은 수술 전에 그것을 갈아입어 의복에 묻어 옮겨질 수 있는 세균의 수를 최대한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복이나 장신구는 가능한 한 착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술복 안에는 최소한의 속옷 이외에는 입지 않으며 시계,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도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제거합니다. 모르는 사이 머리카락이 떨어져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완전히 덮을 수 있도록 수술 모자를 씁니다. 내쉬는 숨으로 옮겨질 수 있는 세균을 차단하기 위해 마스크를 코와 입을 완전히 덮도록 착용합니다. 아, 이것은 요즘 코로나 사태 때문에 독자님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술장 안에서 신는 신은 의료진마다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술장 안에서만 신는 수술장 전용 신발이기 때문에 외부의 먼지나 세균을 묻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신발은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세척 및 살균 처리해줍니다. 정말 철저하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