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진 형의 죽음에 부침
마지막 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탯줄이 떨어지던 첫 숨은 알 수 없으나
끝 숨은 기억할 수 있으리라.
그만큼 나는 크고 성숙하였다.
한 숟갈, 한 숟갈 속을 채우며
내 몸은 자랐다.
한 순간, 한 순간 추억을 만들며
내 마음은 익었다.
바래지 않을 것 같던 찬란함이 있었다.
꿈을 꾸었고 누군가를 사랑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햇살은 나를 따라왔고 나는 그 속에서 빛났다.
넘치고 흘렀기에 소중함을 몰랐다.
이윽고 해는 지고 적막이 찾아왔다.
그제서야 나는 뒤돌아 서서
지나친 길의 꽃봉오리들을 안타까이 바라본다.
눈은 감기고 귀는 닫힌다.
손은 열리고 다리는 풀린다.
부모는 절규하고, 아이들은 흐느낀다.
나의 손을 잡고있는 이는 무너져 내린다.
정신없이 내달으면서도 느끼지 못하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물처럼 들이닥친다.
한없이 가벼운 영혼으로 묵직한 한 평생을 만들었다.
내가 세운 뾰족탑은 도시를 내려다 보고,
나를 아는 이들은 흔적을 기억한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더 살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
무엇을 더 하기 위해,
무엇을 더 이루기 위해,
헛되이 시간을 욕심내려 하는가.
힘찬 호흡과 몸짓을 그리워 하는가.
이제는 그만 되었다.
잘 살았다. 그래, 잘 살았다.
*몇달 전 나의 사촌 형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건강하던 그는 갑작스런 암 진단을 받고 2개월간 음식을 삼키지 못한 채 야위어 갔다. 치유의 가망이 없어지자 한적한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택하였다. 나는 그가 떠나기 며칠 전 마지막 배웅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슬픔의 우열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남아 있는 나보다는 떠나는 그의 아픔이 더 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따뜻한 선배였고 다정한 친구였으며, 때로는 멘토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짧았으나 무척 묵직하였다. 무엇보다 그를 영원히 사랑하고 기억할 수많은 사람들을 남겨 놓았다. 나는 그 중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