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짜리 소설]
도와줘요, 하이드 양(孃)-13

그녀의 홀로 서기

by 파란 벽돌

그러다가 위기가 찾아왔어요. 나에게 새로운 거래처가 배당되었어요. 새로 맡은 곳은 한국병원 내과였어요. 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출이 큰 병원에, 가장 매출이 큰 과였죠. 그동안 우리 회사와는 전혀 거래가 없었지요. 미션도 주어졌어요. 그곳에 1년 50억 원 매출의 새로운 약품을 들이밀어야 했어요. 우리 회사로서는 대형 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중대한 프로젝트였죠. 그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내가 낙점을 받은 것이었고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아시겠지요?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임무였지요. 생판 얼굴도 모르는 새 거래처에 1년에 5천만 원도 아닌 50억짜리 품목을 새로 넣으라니요? 경영진의 지나친 욕심이자 환상이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았어요. 중소 회사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거든요. 삼판양승제라는 것은 애초에 없어요. 매번 단판 승부지요. 거기다가 현재 유사한 약물의 납품업체는 CNJ예요. 골리앗에 덤벼드는 다윗이었죠. 다윗에게는 돌멩이라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어요. 아니 돌멩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극복할 수 있는 격차가 아니었어요. 워낙에 덩어리가 큰 건이었던데다가 상대방이 너무 거인이었거든요. CNJ에서 1년 50억 원 건을 팔짱 끼고 지켜만 보고 있을까요? 몇 주간을 고민했어요. 어떻게 이 건을 성공시켜야 할지. 어떤 돌멩이를 구해다가 어떻게 골리앗의 정수리에 그것을 꽂아 넣어야 할 지를요.

우선은 내과 과장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약품 도입과 사용에는 일단 과장의 영향력이 제일 크거든요. 이미 과장에게 인사한 적은 있었어요. 처음 본 느낌은 능구렁이 같았어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첫인상으로부터 받는 예감이 꽤 정확해요. 쑥 들어간 눈 속에, 그늘진 동공은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게 가려줬어요. 그러면서도 등골이 서늘한 차가운 느낌을 주었죠.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무엇을 해줘야 나의 고객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인지 읽어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사람을 상대하기가 가장 어려워요.

나는 과장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제 마흔 후반이었고, 별로 특별한 취미도 없었어요. 글쎄 정치가 취미라고 해야 할까요? 그는 내과 과장이 되기 위해 물밑 작업을 철저히 했고 권모술수에도 능하다고 들었어요. 하긴 그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마흔 후반에 한국 병원 내과 과장을 맡았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거기다가 그는 향후 병원장을 꿈꾸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어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동안 만나왔던 순진한 의사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죠. 오히려 나 같은 꼬맹이는 공깃돌처럼 갖고 놀 수 있는 닳디 닳은 사람이 분명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시도마저 안 해볼 수는 없잖아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