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의 비밀
그의 아버지가 말한 대로 크리스티아노는 신앙심이 깊은 젊은이였다. 그가 주름살 하나 없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채로 아름다운 눈을 살짝 감고 기도를 드릴 때에는 습관처럼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 미소는 전염이 되듯 그를 바라보는 사람마저 평온해지게 만들었다. 레오나르도가 찾아 헤매던 결점 없는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표정만 가지고 있었다면 레오나르도가 크리스티아노에게 그렇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아노는 이따금씩 이유 모를 불안감과 괴로움의 표정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그것이 레오나르도를 사로잡았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가지셨을 상반되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심한 갈증을 느낄 때처럼 조바심이 났다. 얽힌 실타래처럼 구분이 되지 않는 이 신비한 표정이 크리스티아노의 얼굴에서 사라지기 전에 한시 바삐 벽화로 옮겨야 했다. 먹고 자는 것을 잊은 채 작업을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마침내 자신이 꿈꾸어 왔던 모습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완성하였다.
그가 그려낸 예수님은 너무도 거룩하여 레오나르도조차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은은한 미소에 숨어있는 깊은 슬픔이 그의 마음속에 전해져 왔다.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의 귓가에 예수님의 따스한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였다. 기도를 마친 레오나르도는 예수님을 닮은 청년을 뒤돌아 보았다.
“크리스티아노, 고맙네, 자네 덕분에 최후의 만찬의 예수님 얼굴을 되살릴 수 있었네.”
크리스티아노도 완성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였다.
“오, 나리. 나리는 정말로 하느님께 축복받으신 화가이십니다. 어떻게 미천한 저의 모습으로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낼 수 있으셨습니까? 정녕 나리로부터 그러한 영감을 불러일으킨 게 저라면 저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 주여, 찬미 받으소서.”
그제서야 레오나르도는 크리스티아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주님께서 나를 자네에게 이끄신 것을 감사드릴 뿐이네. 사실 자네처럼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젊은이를 이전에 몇 명 찾아낸 적이 있었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최후의 만찬 속 예수님을 보여주지 못하였네.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으나 한 가지 표정 밖에 지을 줄 몰랐기 때문이네. 내가 정말로 목말라 했던 것은 자네의 얼굴에 담겨져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었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것은 자네의 고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이따금씩 스쳐가는 괴로움과 안타까움이었네. 그 동안은 예수님을 그려내는 데 애가 타서 관심을 둘 틈이 없었네. 하지만 이제 예수님을 완성하고 나니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는군. 자네에게 묻고 싶네. 티없는 자네의 얼굴에 그러한 그늘을 드리울 만한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나?”
크리스티아노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예수님의 얼굴이 아닌 근심으로 가득 찬 한 사내의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리지요. 제 또래의 누구에게나 그런 것처럼. 제게도 청춘의 전령(傳令)이 찾아 왔습니다. 몇 달 전 아침에 빵을 사러 나온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비너스처럼 아름다운 뺨과 천진난만한 입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본 순간 저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두오모에서 멀지 않은 귀족가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안젤리나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빵을 사러 들렀습니다. 오, 하느님, 그녀를 기다리는 한 주일이 저에게는 연옥(煉獄)에서의 1년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녀에게 자네의 연정(戀情)을 고백했나?”
“물론이지요, 나리. 제 가슴속에 숨겨두기에는 너무 큰 떨림이었습니다. 제가 감추려 해도 제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정도였지요. 그녀가 네 번째 저희 가게에 들렸던 날, 저는 그녀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자네의 사랑을 받아들였나?”
“저에게는 생사를 넘나드는 열병(熱病)이었으나, 그녀에게는 고뿔조차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짧은 한마디로 제 인생의 격렬한 갈망을 매몰차게 거절하였습니다.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저는 심한 적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 하느님, 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심이나 이성으로는 다스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사랑때문에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랑은, 특히 자네와 같은 젊은이의 사랑은 자칫 눈을 멀게도 하지. 그 후에는 그녀를 포기한 것인가?”
“한번 눈이 먼 소경이 어찌 다시 앞을 볼 수 있겠습니까, 나리? 사랑은 저의 눈을 영원히 뜨지 못하게 하였고 저는 그로 인해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려도 그녀를 향한 사랑이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그것이 나리가 저에게서 느끼셨다는 괴로움의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군.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녀간의 사랑은 부싯돌로 일으키는 불꽃처럼 서로 격렬히 마주쳐야 그 빛을 만들어내는 법이네. 한쪽이 달아나는 사랑은 다른 한쪽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지. 불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둘 중 어떠한 사랑도 해본 적이 없네. 하지만 자네에게 이 말은 해주고 싶군.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안타까이 쫓지 말고 앞으로 만나게 될 진정한 사랑의 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게.”
“예, 나리.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용서하시옵소서.”
헤어지는 젊은이의 눈가는 눈물로 촉촉히 젖어 있었다. 그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쉽게 잊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난 후, 레오나르도는 크리스티아노의 빵 가게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가게의 주인은 바뀌어 있었다. 이전 주인이 급하게 가게를 처분하였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벽화를 그리기에 바빴던 레오나르도는 어느새 크리스티아노의 일을 잊고 말았다. 그에게는 예수님 외에도 아직 그리지 못한 열두 제자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