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의 비밀
루도비코 경은 접견실에서 수도원장과 함께 레오나르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으나 그들을 감싸고 있는 공기는 차갑기만 했다. 레오나르도가 접견실 문 앞에 당도할 무렵 수도원장은 레오나르도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채 큰 목소리로 루도비코 경에게 말하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온 소리는 레오나르도의 귀에도 생생히 들렸다.
“폐하, 레오나르도는 일부러 딴청을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훌륭한 그림을 거의 마치고, 그 은혜로운 예수님의 모습을 제일 먼저 그린 그가, 그 따위 유다의 얼굴을 채우지 못해 완성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림의 진척이 멈춘 지도 벌써 수 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레오나르도는 미친 사람처럼 며칠 동안 그림만 바라보다가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져서, 며칠 만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시 나타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입니다. 아마도 제작 수당을 올려달라는 태업(怠業)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더 오랜 시간 수당을 챙기기 위한 간책(奸策)일지도 모르고요. 산 프란체스코 교단이 ‘암굴의 성모’로 10년 이상 그자에게 능욕당하고 있는 것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루도비코 경은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했다.
“수도원장, 그럴 리가 있겠소? 내가 아는 레오나르도는 편집증이 있는 게으른 천재일지는 몰라도 간교한 인간은 아니오.”
접견실 문을 열려는 레오나르도의 손목을 안토니오가 지그시 잡았다.
“나리, 잠시 후에 들어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 손잡이를 놓았다.
“알았소, 그러지.”
수도원장의 분노는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오, 폐하. 벌써 그 일을 잊으셨습니까? 레오나르도는 프레스코화를 그리라는 폐하의 명을 거스르고 아무도 쓰지 않는 템페라 기법으로 벽화를 채색하고 있습니다. 만약 프레스코 기법으로 채색을 하였다면 급하게 회벽을 칠해가는 인부들의 작업 속도에 맞추어 채색을 서둘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림도 진작에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성을 아름다운 벽화로 채워나가고 있는 루도비코 경도 그림에 대해서라면 웬만한 안목은 갖추고 있었다. 그가 대답했다.
“레오나르도가 말하기를 한번에 채색을 마치는 프레스코 기법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오. 색칠하자마자 빠르게 물감이 회칠 속으로 번져가는 프레스코는 자칫 붓이 잘못 나갔을 경우 그것을 바로잡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되오. 만약 레오나르도가 특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수정을 반복적으로 하겠다고 하면 그때마다 회칠을 새로 해야 한단 말이오. 그러면 그림이 완성되기까지는 10년이 아니라 20년이 걸려도 모자랄 것이오. 흐르는 시간이 아까워 그리다 만 졸작을 인정할 수도 없는 일 아니오.”
수도원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폐하, 그자의 말을 믿으십니까? 그는 그리 순진한 작자가 아닙니다. 교활하고 닳디 닳은 인간입니다. 그가 스승인 베로키오의 품을 벗어나 혼자서 마무리 지은 그림이 몇 편이나 됩니까? 저는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습니다. 그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오, 하느님, 영광 받으소서. 수도원 식당 벽에 그려지고 있는 벽화는 지금까지의 어떠한 최후의 만찬 벽화에 비하여 뛰어나고 독창적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반면에 그는 그저 미적미적 그림의 완성을 미루며 수당을 챙기는 사기꾼의 습성이 배어있는 자입니다. 더 과격하게 그를 몰아붙이지 않으시면 그림의 완성은 보지 못하실 것입니다.”
“알았소, 수도원장. 내가 지금 레오나르도를 호출하였으니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오. 내가 잘 얘기해 보겠소.”
“알겠습니다, 폐하, 그럼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접견실 문을 밀치고 급하게 나오던 수도원장은 문 밖에 서 있는 레오나르도를 보자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레오나르도는 조용히 수도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를 무섭게 노려보는 수도원장의 눈길을 무시하고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숙인 채로 루도비코 경이 앉아있는 접견실로 들어갔다.
“폐하,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부르셨사옵니까?”
“오, 우리 천재 화가께서 오셨구먼.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소?”
“폐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벽화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오.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도 그 벽화때문이오. 벽화는 얼마나 진행이 되었소. 듣자 하니 거의 마지막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언제쯤 그 위대한 작품의 완성을 보여줄 것이오?”
루도비코 경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레오나르도를 떠 보았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아직 기약이 없사옵니다. 많은 부분을 완성하였으나 중요한 한 구석을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중요한 한 구석이라면 유다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오? 성스러운 예수님과 11제자의 형상을 완성해낸 당신이 어째서 그까짓 유다의 얼굴을 그리지 못해 쩔쩔매는 것이오? 혹시 수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오?”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폐하가 분부하신 ‘최후의 만찬’은 제 인생 최대 걸작으로 만들 욕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생각하기에 이 그림의 백미(白眉)는 예수님과 유다의 팽팽한 대립과 긴장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성스러울수록 유다의 모습은 추악하여야 하고, 예수님이 평안할수록 유다는 고뇌에 차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마가 성령으로 빛나고 있다면 유다의 얼굴은 주름과 어둠으로 얼룩져야 합니다. 다만 그렇게 추악한 얼굴을 상상만으로 만들어 낼 실력이 제게는 아직 없습니다. 누군가 그 얼굴을 똑똑히 제 눈앞에 보여주어야 겨우 그릴 만한 정도입니다. 유다의 얼굴을 직접 보아야 그를 무덤으로부터 다시 불러내 올 수 있으며 그래야만 폐하와 저의 필생의 역작은 완성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욕심에 저는 하염없이 그 얼굴의 모델이 될 자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과 그가 사랑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완성된 지금, 누가 그리 유다의 얼굴에 시선을 주겠소? 나와 모든 밀라노 시민들은 이미 당신의 그림에 매우 만족하고 있소. 유다의 얼굴은 그냥 당신이 과거에 혐오하였던 자를 아무나 기억하여 그린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오. 어떻소? 그렇게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겠소?”
레오나르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기대에 찬 루도비코 경의 눈을 한참 쳐다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렇다면 폐하, 유다의 얼굴에 수도원장을 그려 넣어도 될지요? 바로 그가 제가 기억하는 가장 사악한 자입니다만…”
“뭐라고요? 하하하. 이거 참, 당신의 고집도 대단하군요.”
루도비코 경은 딱딱한 표정을 무너뜨리고 크게 웃었다. ‘유다의 얼굴을 수도원장이 차지한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재미있는 답변이었다. 그림을 보고 당황해 할 수도원장의 낭패한 모습을 상상해 보자니 웃음이 멈추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잠시 후 다시 굳어졌다. 근엄하고 날카로운 눈동자로 레오나르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좋소, 이렇게 합시다. 당신에게 한 달의 시간을 주겠소. 그때까지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유다의 얼굴 대신 당신의 머리 가죽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오. 나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요. 다만 당신의 아름다운 그림에 정신이 팔려 그때그때 용서하며 참아냈을 뿐이오. 그림의 빈 구석을 무엇으로 채워 넣어도 좋소. 원한다면 수도원장이 아니라 내 얼굴을 그려 넣어도 좋으니 한 달 안에 벽화를 마치도록 하시오.”
루도비코 경의 목소리는 분노에 가득 차 살짝 떨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조언을 하나 해주고 싶군. 유다의 추악한 얼굴을 찾고 싶다면 나의 성에 있는 지하 감옥을 돌아 보시오. 그곳에는 온갖 흉악한 범죄자들이, 지은 죄의 업보로 썩은 바닥을 기어다니며 연명해 가고 있소. 가장 추하고 그늘진 얼굴을 찾는다면 그들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오.”
그는 접견실 밖에 있는 안토니오를 불렀다.
“안토니오, 우리 천재 화가를 지하 감옥으로 모시고 가라. 그리고 그를 가장 추악한 얼굴을 가진 죄수들에게 인도하라. 만약 그가 한 사람을 고른다면 아무 말 하지 말고 그자를 묶어 수도원 벽화 작업장으로 데려다 놓고 감시하라. 레오나르도가 그를 모델로 그림을 마저 그릴 것이다. 물론 벽화가 완성되면 죄수는 다시 지하 감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폐하.”
안토니오는 긴장된 모습으로 추상(秋霜)과 같은 루도비코 경의 명을 받들었다. 어쩔 줄 모르는 레오나르도의 소매를 잡아 접견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나리, 저와 함께 감옥으로 가시지요. 폐하께서 저렇게 크게 화를 내시는 것은 오랜만에 봅니다. 더 이상 폐하를 자극하지 마셔야 합니다. 폐하는 밀라노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만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신 분입니다. 특히 자신이 한 말이라면 아무리 잔인해도 그대로 지키는 분이기도 하고요.”
레오나르도는 아직도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에게 가해질 처벌이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4년에 걸쳐 성심을 기울인 작업을 마지막에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머리 가죽이 벗겨진다면 더 이상 그가 꿈꿔왔던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즉 한 달 내에 살아있는 유다를 찾아 그림 속 유다의 얼굴을 채워 넣어야 한다. 예수님과 완벽한 대조와 균형을 이룰만한 어둡게 가라앉는 유다의 모습을 살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