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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Sep 10. 2020

소나기와 휴식


하늘이 흐려지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우리 아파트 마당을 가득 채웠다.

낮인데도 사방이 어둑어둑.
빗줄기가 세차게 아파트의 나무들을 때리고,
놀이터의 철봉을 두드리는 소리.
지나가다 소나기를 만난 아이들의 비명소리.

텔레비전을 끄고 슬그머니 일어나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바깥의 어둠을 집안에 들인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어젖힌다.


그와 동시에 굵은 빗소리가

내 집 거실을 가득 채운다.

거실 바닥에 얇은 이불을 깔고
향초 하나를 켜 두고,
집 안에서 입고 있던 얇은 티셔츠와 반바지,
속에 입은 팬티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팔로 머리를 베고서
비스듬히... 한껏 교태를 부리며

유럽 어느 미술관에 걸린 비너스를 흉내내본다.


발가벗고 베란다 앞에 누워
미의 여신 흉내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습다.

하지만 어떤가, 혼자인 내 집 안.
나는 원래 이런 교태 있는 여자였다는 듯



소나기가 만들어내는 대낮의 어둠.
내 몸이 기다리던 완전한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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