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사람을 망친다.
사춘기부터 시작된 외로움은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인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부모님의 가정 불화로 부모로부터 정신적 안정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했고, 그런 사람의 자식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 때문에 자존감을 한창 키웠어야 할 시기에 자기부정만 했다.
그나마 스무살 이전 미성년일 때에는 부모 탓을 할 수 있었다.
대학을 들어가니 아직 다 크지 못한 마음이 어른인 체 하느라 부모 탓도 못했다.
부모 탓을 못하니 결국 탓할 건 나 뿐이었다.
나를 탓하면서 친구들에게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고, 썸남 앞에서는 거북이 등껍질에 숨어들기 바빴다. 나를 사랑하고 내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에게 남는 건 외로움 뿐이었다.
그럴 땐 혼자 해운대 모래 사장에 앉아 사막에서 모래 지옥을 만나 그 속에 빨려 들어가듯 내 몸이 모래 아래로 순식간에 꺼져 내리는 상상을 했다.
(바다에 빠지는 건 너무 끔찍해서 상상하지 않았다. 죽고 싶은 마당에도 물 공포증이 있어서 ^^;;;)
그렇게 대학을 마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며
관계에서 비슷한 실수와 실패를 거듭했다.
진짜 괜찮은 썸남은 상처 줘서 나한테 질리게 만들고, 진심으로 다가오던 친구들도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후회와 미련, 그리고 외로움만 그득 남았다.
실수와 실패로 낭비한 시간을 더는 그냥 흘려 보내지 않으려고 후회와 미련을 끊어내겠다 결심했다.
이것도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여러 번 과거로 돌아갔다가 결심하기를 반복하고
나니 비로소 깨달음이 왔다.
외로움은 내가 선택했던 감정이었구나.
이 외로움이 부모님처럼 내가 어쩔 수 없는, 나를 둘러싼 상황에서 오는 거라 생각했었다.
나를 둘러싼 상황 중에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 분명 있지만, 오히려 그 나머지 중에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 이었다.
나를 둘러싼 것들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은 것 중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분석한다. (분석이라 말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이건 개인의 일생을 놓고 보면 인간이 달에 착륙한 것 만큼 거룩한 한 걸음이어서 매우 거창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하나씩 하나씩 다른 선택을 하면서 내 인생을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내게 상처받아 등돌렸던 친구 중 하나는 내 상처를 이해해주고 나의 장점을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없던 친구나 없던 애인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외로움 반대편의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는 날.
그 이후로 나는 더이상 외롭지 않았다.
물론 원한다면 언제든 외로움을 선택해도 괜찮았다. 내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내 행동의 결과에 책임질 결심만 하면 되었다.
어느 한 순간도 외롭지 마라
어느 한 순간도 외로움을 선택하지 마라.
선택할 수 없는 일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을 방해하도록 하지 말라
나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벗어나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