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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Jan 13. 2022

항상 거기 있을 것 같은 식물,

항상 거기 있어줄 것 같은 사람.

식물 구경하러 화원에 가면 가게 주인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물 자주 안 줘도 되고, 손도 잘 안 가서
편하게 키울 수 있어요


나같이 식물을 매일 관찰하고 자주 건드려보는 게 취미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을 끌게 될 말이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할 식물을 고르거나 식물을 처음 키워보는 사람에게는 마음 편하게 고르는 데에 도움을 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믿고 식물을 데려왔다가 그 말대로 정말 물 자주 안 주고 손도 잘 안 대면, 식물이 어느샌가 말라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키우기 쉽다더니 아니네.”라고 무심히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식물이라도 식물에는 꼭 물을 줘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식물은 없다.


오늘 나도 ‘항상 거기에 있을 것 같은 식물’ 하나를
떠나 보내게 될 것 같다. 

향이 좋아서 내 가장 가까이, 침대 머릿장 위에 둔다. 자기 전에 잎사귀를 어우만지면 향이 올라오고 손 끝에도 향이 남는 라벤더.


재작년에 삼천 원짜리 어린 라벤더를 집에 들였다. 무성하게 성장도 하고, 꽃도 한 두 송이 피어 주었었다. 아쉽게도 사진이 없지만, 많이 무성해져서 가지치기를 해서 삽수도 했었다. 삽수는 실패했지만, 삽수하고도 남아서 가지치기한 것들을 말려서 옷장에 넣어두기도 했었다.


지난여름에는 갑자기 서울로 발령 난 주인 때문에 한여름 더위 속에 이사하다가 거의 죽다 살아난… 그렇지만 결국에는 살아난 아이다. 그런 아이를 죽이게 생겼다.


며칠 출장 다녀왔는데… 출장 가기 전 날 저면관수로 물을 주고 창문을 조문 열어 주었어야 했는데… 경험상 라벤더는 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통풍이 중요한 것 같다.


물도 말랐지만, 통풍이 안돼서 이렇게 된 것 같다. 가지 윗부분이 조금 마른 상태면 잘라내고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지 중심부터 아래쪽이 마른 걸로 보아서는 힘들 것 같다.


일단 물을 흠뻑 줘봤는데 살아날 기미가 없다.  살리기는 어려울  같다. 차라리 아직 푸릇한 가지 윗부분을 잘라서 삽수를 해볼까 싶다.   정도는 화분을 엎어서 뿌리 상태를 봐야겠는데, 어쩐지 엄두가  난다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싶어서, 오래 청소 안 한 집의 대청소를 앞둔 것 같은 비장함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돼버렸으니, 일단 눈을 질끈 감고 며칠 놔둬보기로 한다.



오랜 시간 함께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  싸움   없이  냈고, 항상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나에 비하면, 감정적이지 않고 그래서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무심하게 느껴졌다. 또 그래서 무던하고 한결같은 사람인데 반해, 나는 변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싫증 잘 내는 성격이다. 내가 지겨워져서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는데도 그는 다행히 거기 있어주었다.


 사람 옆이 가장 안전하고 따뜻했다는  함께 있을 때에는  몰랐다. 잠시 떠났다 돌아와 보니 알겠다. 물론 무심하고 다소 무신경한 사람이므로 “항상 거기”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닐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어디 열 길 사람 속을 다 알겠는가.


그 사람이 항상 거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는 지나고 나서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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