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거기 있어줄 것 같은 사람.
식물 구경하러 화원에 가면 가게 주인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물 자주 안 줘도 되고, 손도 잘 안 가서
편하게 키울 수 있어요
나같이 식물을 매일 관찰하고 자주 건드려보는 게 취미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을 끌게 될 말이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 선물할 식물을 고르거나 식물을 처음 키워보는 사람에게는 마음 편하게 고르는 데에 도움을 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말을 믿고 식물을 데려왔다가 그 말대로 정말 물 자주 안 주고 손도 잘 안 대면, 식물이 어느샌가 말라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키우기 쉽다더니 아니네.”라고 무심히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식물이라도 식물에는 꼭 물을 줘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해줘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식물은 없다.
오늘 나도 ‘항상 거기에 있을 것 같은 식물’ 하나를
떠나 보내게 될 것 같다.
향이 좋아서 내 가장 가까이, 침대 머릿장 위에 둔다. 자기 전에 잎사귀를 어우만지면 향이 올라오고 손 끝에도 향이 남는 라벤더.
재작년에 삼천 원짜리 어린 라벤더를 집에 들였다. 무성하게 성장도 하고, 꽃도 한 두 송이 피어 주었었다. 아쉽게도 사진이 없지만, 많이 무성해져서 가지치기를 해서 삽수도 했었다. 삽수는 실패했지만, 삽수하고도 남아서 가지치기한 것들을 말려서 옷장에 넣어두기도 했었다.
지난여름에는 갑자기 서울로 발령 난 주인 때문에 한여름 더위 속에 이사하다가 거의 죽다 살아난… 그렇지만 결국에는 살아난 아이다. 그런 아이를 죽이게 생겼다.
며칠 출장 다녀왔는데… 출장 가기 전 날 저면관수로 물을 주고 창문을 조문 열어 주었어야 했는데… 경험상 라벤더는 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통풍이 중요한 것 같다.
물도 말랐지만, 통풍이 안돼서 이렇게 된 것 같다. 가지 윗부분이 조금 마른 상태면 잘라내고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지 중심부터 아래쪽이 마른 걸로 보아서는 힘들 것 같다.
일단 물을 흠뻑 줘봤는데 살아날 기미가 없다. 다 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아직 푸릇한 가지 윗부분을 잘라서 삽수를 해볼까 싶다. 한 번 정도는 화분을 엎어서 뿌리 상태를 봐야겠는데, 어쩐지 엄두가 안 난다.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싶어서, 오래 청소 안 한 집의 대청소를 앞둔 것 같은 비장함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왕 이렇게 돼버렸으니, 일단 눈을 질끈 감고 며칠 놔둬보기로 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사람이 있다. 오랜 시간 큰 싸움 한 번 없이 잘 지냈고, 항상 거기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 나에 비하면, 감정적이지 않고 그래서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무심하게 느껴졌다. 또 그래서 무던하고 한결같은 사람인데 반해, 나는 변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싫증 잘 내는 성격이다. 내가 지겨워져서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는데도 그는 다행히 거기 있어주었다.
그 사람 옆이 가장 안전하고 따뜻했다는 걸 함께 있을 때에는 잘 몰랐다. 잠시 떠났다 돌아와 보니 알겠다. 물론 무심하고 다소 무신경한 사람이므로 “항상 거기” 있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닐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어디 열 길 사람 속을 다 알겠는가.
그 사람이 항상 거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는 지나고 나서만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