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떤 건 벌써 꽃봉오리를 올리고, 어떤 건 싹도 아직이다. 아마 아직 싹도 안 난 건 구근이 짓무르거나 썩어서 뿌리를 못 내렸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작년 가을 새로 사서 심은 튤립 구근 대부분은 싹이 올라왔다. 꽃까지 예쁘게 올라와야 할 텐데, 싹만 올리고 꽃은 제대로 여물지 못해서 알맹이 빠진 듯 일그러진 봉우리가 올라오는 경우도 있으니 아직 방심할 순 없다.
재작년에 심어서 구근을 수확했다가 작년 가을에 다시 심은 히아신스들은 꽃이 조금 작아도 모두 꽃대를 올려줬다. 어떤 건 벌써 폈다가 지기도 했다.
피고 지는 꽃들은 유리컵에 담아 보는 걸 좋아한다. 꽃들의 다리가 뽀글뽀글 공기를 들이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가지를 꺽지 않고 흙에 심긴 채로 두면 더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중구난방 하나 둘씩만 불규칙적으로 필 때는 투명한 화병에 한데 모아 두고 보는 것도 좋다.
꽂아두고 보니 퍽 예쁘다.
이리 꽂았다, 저리 꽂았다 해보니 어찌 꽂든 너무 예쁘다.
색도 어찌나 서로 잘 어우러지는지!
이건 망고 참 튤립.
남향집에서 햇볕을 너무 듬뿍 받아 키가 작은 편이라 조금 아쉽다. 상품으로 내놓고 팔 것이 아니니, 나에게는 다 예쁜 튤립이지만, 튤립 꽃대가 길쭉하게 빠져나오면, 늘씬한 여자의 목선을 보는 것 같아 시원스럽다. 아직 다른 튤립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 늘씬한 목선이 다 끝난 건 아니지. 일부러 햇볕을 덜 보는 쪽으로 옮겨뒀다.
따뜻한 남향집 햇볕 아래에서 쇼팽을 들으며 일찍 펴준 키 작은 망고참 한 송이를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최대한 늘씬해 보이게 하체부터 찍어도 보고, 자연스럽게 휜 저 곡선. 잎사귀와 잎사귀들 서로서로 조화로운 자리 차지. 저 늘씬함에 감탄한다.
누군가의 집 안 속사정을 들어가 보듯, 튤립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수술과 암술을 들어다 보기도 하고.
(관음증인가? 이래서 아이폰 접사 기능을 정말 좋아한다. 빨리 13으로 바꿔야 하는데!)
망고참의 노랑과 핑크, 화이트의 컬러 그라데이션을 한참을 뜯어본다. 자연이 만들어낸 색 조합. 그림을 그려볼까 하다가 금방 포기한다. (저 절묘한 노랑핑크를 나를 그려낼 수 없어. 결국 좌절하고 말 거야.)
어디 식물원이나 화원을 가면 꼭 만지지 말라는 주의가 적혀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져 식물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어서겠지.
하지만 나는 식물 만지는 걸 참 좋아한다. 수분 가득 머금은 촉촉한 꽃잎과 가지. 입술로 그 촉감을 가만히 느껴보면,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발바닥을 입에 대고 부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래서 내가 꽃을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