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렸는데, 비가 몇 방울 토 도도 독. 하필 오늘 차려입은 새로 산 백바지 종아리 부분에 흙탕물이라도 튈까 신경이 쓰인다. 우산을 챙길까 말까 하다 가방이 무거워져서 패스.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겁다고…
그나마 작은 빗방울이고, 버스정류장에서 회사까지는 하늘에서 구멍 난 듯 소나기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옷이 젖지 않고도 뛰어갈 수 있는 거리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발끝에 힘을 주며 경보를 막 시작하려는데, 포대 자루에서 신발을 하나씩 꺼내 진열하기 시작하는 노점상 아저씨가 보인다. 내가 자주 가던 손짜장집 점포가 나가고 나서부터 그 가게 문 앞에 종종 등장한다.
모자도 쓰지 않은 아저씨 머리 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 내려앉고, 운동화인지 단화인지 종목을 단정할 수 없는 신발들 위로도 빗방울이 내려앉는다.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흠뻑 젖을 비일까, 오다 말 비일까를 고민할까. 오늘 재수 옴붙었드 투덜거릴까, 도로 집어넣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할까. 저렇게 깔아 놓고 아저씨는 오늘 신발을 몇 켤레 파실까? 신발을 몇 켤레 팔아야 아저씨 일당이 벌어질까? 아저씨에게는 자식이 있을까?
나에게 노점상 아저씨의 생각과 마음은
남의 그것이 아니다.
언젠가 엄마가 옷 노점상을 한 적 있다. 엄마는 내가 국민학교 마칠 때쯤인가 중학생일 때쯤인가 옷가게를 시작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꽤 여러 직업을 전전했기 때문에 내 나이 몇 살에 엄마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매치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인지 별로 행복하지 않아서인지 내 어린 시절은 뒤죽박죽 기억이 많다.
엄마는 옷가게를 하다 점포 임대료를 감당할 정도로 장사가 안돼서 결국 가게를 닫았다. 낡았지만 하얀색 중고 뉴프린스에 물건을 싣고 노점상에 나섰다. 엄마가 하는 노점상에 따라나선 적은 없었으니 노점상 엄마의 모습은 온전히 내 상상일 뿐이다.
우리 엄마는
정말 이런 일할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일할 사람, 안 할 사람 따로 있냐고 누군가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냥 우리 엄마는 아니다. 왜인지는 모른다. 엄마에게 세뇌당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험한 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늘 집안에서 묵향 풍기며 서예를 했고, 철마다 유자차 모과차 같은 차를 담아 예쁜 잔에 담아 마셨다. 동양란이나 행운목 같은 식물을 키우면서 한 입 한 입 정성스레 닦아주던 엄마 모습도 기억한다. 엄마는 취향과 개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턴테이블과 전축에서는 흔히 아줌마들이 좋아하는 설운도, 태진아 같은 트로트가 아니라 클래식이나 가곡이 흘러나왔다.
직업에 귀천이 있냐는 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정답인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소금장수 큰아들과 우산장수 작은 아들을 둔 부모는 아니었지만, 날씨가 궂으면 궂은 대로 해가 쨍쨍하면 쨍쨍한 대로 걱정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틈틈이 걱정을 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좋아할 만한 반찬을 만들어 두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의 하루는 어땠을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