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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Apr 28. 2023

징벌적 손해배상- 금융처벌?

레인메이커(The Rainmaker)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존 그리샴이라는 변호사 출신의 소설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지요(글 써서 먹고사는 변호사, 제 롤 모델^^).


맷 데이먼이 로스쿨을 갓 졸업한 새내기 변호사 루디 베일러를 연기하고, 로스쿨 졸업 후 6년째 변호사 시험을 낙방하고 있지만 사건 경험은 많은 덱이 루디의 파트너로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루디는 백혈병에 걸린 젊은 청년의 가족이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대리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공공의료보험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지요. 보험료를 매달 꼬박꼬박 납부했지만, 정작 백혈병에 걸쳐 골수이식 치료를 받고자 하니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 주지를 않습니다. 결국 청년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생을 마감합니다.


루디와 청년의 부모는 결국 재판에서 승소합니다.

알고 보니 보험사는 보험금청구가 들어오면 "일단 거절한다, 반복해서 거절한다, 1년 간은 무조건 계속 거절한다. 청구인이 지쳐서 청구하지 않을 때까지 거절한다."와 같은 내부 지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숱한 거절에 지친 청구인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을 악용한 지침이지요. 루디와 덱은 그 점을 재판에서 밝혀 내어 승소를 끌어냅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승소합니다. 원래 지급되었어야 할 보험금 15만 달러에 더하여 징벌적 손해배상금 5천만 달러가 인정됩니다. 보험사의 악의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로 청년이 사망하게 되었으니, 300배가 넘는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인정된 것이지요. 루디는 거대 보험사를 이긴 루디 베일러라는 새내기 변호사로 엄청난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각 지역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한 소송들이 쏟아지지요.


루디와 청년의 부모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원래 받았어야 할 보험금 15만 달러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거대해 보이던 보험사는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허점을 꼬집고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한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하지 않았다면, 원래 받았어야 할 보험금 정도라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지만 실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실제로 어마어마한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선고받고 파산하는 기업이 종종 있었습니다.


'징벌' & ‘손해배상'.

징벌은 범죄로 볼 수 있는 행동을 저지른 데 대한 응보의 의미이고, 손해배상은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입니다. 물론 범죄로 볼만한 행동이 아닌 경우에도 손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이루어집니다. 형사법질서에서 볼 때 범죄로 볼만한 행동이 아니어서 처벌하지 않음에도 징벌의 의미를 붙이는 것은 형사법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는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불법행위로 인하여 실제로 발생한 손해만큼만 배상하는 것을 “전보적 손해배상"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손해배상은 전보적 손해배상만을 의미하지요.

전보 = 부족한 것을 메꾸어 채움.
유의어) 보충, 충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정명석 변호사님이 잘 설명해 주고 있죠?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2회 중 한 장면


전보적 손해배상은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위자료. 이 항목들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해서 이만큼만 인정해 줍니다.

우리 법도 전통적으로 전보적 손해배상제도만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하도급법 등 몇 가지 법에 전보적 손해배상에 더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법상 규정된 제도는 사실상 배액배상제도 혹은 배율배상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보적 손해배상액의 3~5배 정도로 규정하고 있거든요. 영화 레인메이커에서처럼 진정한 모습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아닙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미국이나 영국 등 영미법계의 전통이거든요.
하지만 그 전통도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 연방 대법원 판결을 보면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원래 받아야 할 전보적 손해배상액과 1:1의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 독점규제법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3배로 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각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미 연방 대법원 판결의 경향을 따르지요. 원래의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배액이나 배율을 정함이 아예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최근 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위헌이라는 논의가 나오고 액수 또는 배율을 제한하는 판례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미국조차도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제 발생한 손해(전보적 손해)보다 수십 수천 배의 금액(징벌적 손해)을 배상하라고 합니다. 아주 부도덕하거나 아주 악의적인 행위로 누군가의 삶에 마이너스가 생긴 경우에는, 그 아주 부도덕하거나 아주 악의적인 행위에 대한 대가를 가혹하게 치르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징벌적 손해배상은 마이너스가 발생한 쪽에게는 마이너스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플러스가 생기고, 플러스가 발생한 쪽에게는 자신의 불법행위를 훨씬 뛰어넘는 책임을 지우는 또 다른 부당한 결과가 생기기도 합니다. 살짝만 기울었던 시소가 아예 반대로 쿵 떨어져 버리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것도 정의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미국은 오히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나라는 왜 오히려 도입하는 추세일까요? 우리나라는 전보적 손해배상액수 자체가 너무 적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해도 1~3억 정도입니다. 기대여명에 따라서 다르지만, 3억까지 인정되는 경우도 많지는 않습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손해배상액수의 규모 자체가 상당하고, 회사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경우 그들의 손해배상 능력을 감안해서 액수를 정하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운전 중 사망한 사람 측에 700억 규모의 손해배상판결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중 실제 피해배상액과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비율을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실제 피해배상액을 10%만이라고 보아도 70억 원이지요.


우리나라 손해배상액수 산정이 너무 엄격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있습니다. 이미 시소가 너무 기울어져 있는 거지요.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열렬히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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