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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May 28. 2023

증거에 의해 사실 인정한다는 당연한 말

개인 간의 계약이나 불법행위에 대한 재판 절차는 민사소송, 범죄에 대한 국가의 재판 절차를 형사소송이라 하지요. 


형사소송은 형사법의 적용을 통한 처벌이 목적인 절차입니다. 

형사법의 적정한 적용을 위한 전제는 무엇일까요? 


적용 대상이 될 구체적 사실관계 파악이겠지요. 

사실 관계의 확정이 형사소송의 전제이자 시작이므로 형사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 구체적 사실관계 파악을 형사소송에서는 간단히 “사실 인정”이라 합니다. 


많은 법실무가들이 말합니다. 



법 공부를 할 때는 법을 이해하고 외우고 익히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실무를 해보니 사실 인정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잠시 아래 사건을 상상해 볼까요? 


18세 소년이 아버지를 자신이 소지하던 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는 순간에 창문 밖에서 소년이 칼로 아버지를 찌르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증인도 있고, 소년이 “죽일 거야”라고 말하고 살해 후 건물을 뛰쳐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아래층에 사는 증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찌른 칼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소년은 그 시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으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합니다. 



소년은 부인하고 있지만, 살인의 증인도 둘이나 있고, 소년은 그날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보았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는 불리한 정황도 있습니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증인도 있다면, 모순 없는 사실 인정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런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죠. 

성범죄 같은 내밀한 장소에서 내밀한 관계에 있는 당사자들만 겪은 일에 대해 당사자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피해자의 말은 왜 믿어야 할까요?
피의자는 정말 억울한 걸까요? 


책에서 배운 법률 지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인정은 가설을 세우는 일입니다. 누구의 가설이 더 그럴 듯한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증거재판주의”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되,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양측이 제시하는 가설이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그 증거들에 의해 세운 가설에 구멍이 없는지 면밀히 살핍니다. 

공소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합리적 근거 없이 배척해서도 안 되고, 공소사실에 배치되는 증거를 합리적 근거 없이 채택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에 와서는 모든 일에 대해 증거 있냐고 묻고 따지는 것이 너무 일반적인 일이 되었지만, 과거 어느 때 원님재판,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지요. 

하지만 증거재판주의가 모든 사람의 상식처럼 되어 있는 요즈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론재판이나 마녀사냥은 자행되기도 합니다. 물론 주로 법정 밖에서의 일이기는 합니다. 


1957년에 제작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라는 영화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사건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입니다. 12명의 배심원들이 소년에 대한 유무죄의 “사실인정”을 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있습니다. 실제 활용률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미국의 배심재판 역시 전체 재판에서 5% 이내라고 할 정도로 잘 쓰이지 않지요. 워낙 특별한 제도라 영화 속 소재로 많이 쓰이다 보니 배심재판이 많을 거라 대중에게 인식될 뿐입니다. 영미의 배심제도나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의 특징은 다음 기회에 상세히 말씀드릴게요. 



저 영화에서는 12명의 배심원 중 단 한 명이 “소년에 유죄라는 확신이 없다"라고 말하고, 나머지 11명은 모두 유죄를 확신한다는 데서 평의가 시작됩니다. 



무죄를 확신하는 것도, 유죄를 확신하는 것도
아니라는 저 한 사람의 말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유죄를 확신한다는 11명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더운 날씨에 누구는 빨리 끝내고 야구 보러 가야 한다고 재촉하고, 누군가는 덮어놓고 윽박지릅니다. 현실에서라면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요?


다행히 이 영화 속에서 단 한 사람은 잘 버텨 나갑니다. 증인들의 증언의 모순점을 지적하고, 증인들이 거짓 진술을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소년에게 불리한 정황을 합리적 경험칙으로 뒤집어 갑니다. 


마지막까지 유죄를 확신한다는 한 남자에게는 알고 보면 아버지인 자신을 폭행하고 집을 뛰쳐나가버린 아들이 있었지요. 자신의 아들과 이 소년을 오버랩합니다. 인간의 선입견과 이것이 판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입니다.  



70년 전 만들어진 흑백영화에 이렇게 감탄하게 될지 저도 몰랐습니다. 

아버지를 폭행하고 집을 나간 아들을 가진 아버지라면, 합리적 의심 따위는 없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했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어떤 세력이나 집단이 “저놈은 죽일 놈이다” 하면 그 세력이나 집단에 동조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고 싶은 누군가는 합리적 의심 따위는 집어치워 버립니다. 


여론재판이나 마녀사냥 같은 일이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어요. 물론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가진 이유들이 “얼마나 증거에 기반한 것이며, 얼마나 합리적인지” 입니다. 재판에서의 사실인정은 잘 훈련된 법관의 몫이겠지요. 하지만 세상 속에는 원님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인정을 어려워하는 법관처럼, 합리적 의심이 없을 만큼 증명이 되었는지 생각한 뒤에 판단하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졌으면 합니다누군가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집단적인 린치가 두려워 의견을 밝히는 데 주저할 필요 없고 설득하고 토론할 기회를 주는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달라도 일단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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