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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May 28. 2023

카더라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어릴 때 부모님이 뉴스가 제일 재미있다고 하시는 걸 봤는데, (저도 그럴 나이가 된 것인지) 요즘 뉴스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최근에 정치시사프로그램이나 정치인들이 나오는 뉴스를 보다 참 (어이가 없어서) 재미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모 당 대표를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증거는 하나도 없고 죄다 말뿐인데, 그걸로 처벌을 할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은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 규정을 들먹이면서 "카더라 증거만 가지고 증거가 되나요?"라는 분들도 있더군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에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도 저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는 걸 그들도 알 텐데…뻔뻔하게 저런 말들을…?) 

이게 얼마나 어이없고, 얼마나 국민들을 우습게 보고 하는 소리인지… 

제 이야기 들어보시고 저런 말에 절대 속지 말자고요. 


“(누가 누가) 뭐라고 하더라”를 경상도말로 “카더라”라고 하지요?



다른 사람이 뭐라 뭐라 하는 말, 
그 말을 전(傳)해 들은(聞) 말을 “전문(傳聞)”이라 합니다. 


영미법에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hear) 전하는 말(say)이라는 의미로 “hearsay”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증거를 속칭 “카더라 통신” 또는 “카더라 증거”하고들 합니다. 카더라 증거만으로 증거가 되냐고들 하는 말이 전문증거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걸 의도적으로 빼놓고 하는 말이에요. 물론 법을 잘 모르는 국민들을 속일 의도겠지요. (우리가 이 정도도 모를까 봐?) 


형사소송법에는 “전문증거”에 관한 원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전문법칙”이라 부릅니다.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전문증거와 증거능력의 제한) 제311조 내지 제316조에 규정한 것 이외에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대신하여 진술을 기재한 서류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 외에서의 타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은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



전문증거가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드는 말이 바로 이 규정인데요. “증거로 할 수 없다.”는 문구가 있으니, 그들의 말이 정말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합니다. 

국어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요. 하지만 법을 안다는 사람의 말이라면 이런 말은 완전 사기입니다. 



저 규정에서 진짜 진짜 중요한 것은
 “제311조 내지 제316조에 규정한 것 이외에는”
이라는 표현이거든요. 


형사소송법은 제311조 내지 제316조를 통해 전문법칙의 예외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전문증거는 증거로 쓸 수 없지만, 무려 6개 규정을 마련해서 전문증거를 증거로 쓸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정도의 예외면 증거로 쓸 수 있는 경우가 꽤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말이 예외이지, 이 정도면 예외가 예외가 아니거든요. 


전문법칙의 예외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전에, 
전문법칙이 이런 예외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외를 두고 있는 이유는 형사소송법의 다른 증거에 관한 규정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쉬워요.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제309조(강제 등 자백의 증거능력)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제308조의 2는 위법수집증거의 배제법칙, 제309조는 자백의 임의성 법칙입니다. 전문법칙만큼이나 형사소송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법칙이에요. 전문법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규정들은 원칙만 규정하고 있고, 예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실체진실의 발견과 인권 보장이라는 충돌하는 이익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는 법이에요. 어느 때는 실체진실 발견을 위해 개인의 인권이 후퇴되기도 했고, 어느 때는 인권 보장을 위해 실체진실 발견을 양보하기도 했습니다. 


예외를 두고 있지 않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 자백의 임의성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인권 보장이라는 가치를 후퇴시킬 수 없다는 입법자의 의지의 표현이에요. 


한편, “예외를 두고 있는” 전문법칙은 인권보장이라는 가치를 위해 원칙적으로 전문증거를 증거로 쓰지 않되, 실체진실 발견이라는 가치를 위해 이러이러한 요건 아래에서는 증거로 써도 된다는 입법자의 판단입니다



법학은 항상 충돌하는 이익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 예외의 예외를 만들어갑니다. 그 모습이 가장 첨예한 것이 형사소송법의 증거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증거법을 법학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수많은 사건의 역사들이 쌓여 예외에 예외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카더라 증거는 증거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정치인들의 말이 저에게는 왜 재미있다는 것인지 공감이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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