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Learner로의 여정(4)

도광양회(韬光养晦) - 칼집 속의 시간과 그 빛의 의미

by 와이키키

휴학시절, 잠시 국제정치학에 몰두한 적이 있다. 세계사를 좋아해서 당시 정치적 결단 이후의 결과와 그 함의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韬光养晦), 유소작위(有所作为)에서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崛起)로 이어지는 중국의 대외정책을 표방하는 4자성이들이다. 이 사자성어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면 이렇다. 칼의 섬광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칼집에 숨겨 힘을 기르되,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한다. 그리고 힘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성장했을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해 평화롭게 우뚝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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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 시진핑의 중국몽(中国梦)이나 전랑외교(戰狼外交)도 있지만, 여기 함의된 중국의 정치방향과 전혀 상관없이, 마치 홀로 공부하던 시절 나의 각오와 의지를 반영하는 느낌이 들어 가끔 머릿 속에 떠오른다.

과거에 난, 입사 후 회사가 면밀한 인사관리를 통해 내 가치를 잘 활용해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직책자의 주관적 평가가 기본이 되는 인사 시스템에서는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회사가 이를 쉬이 알리가 없다. 나 역시 회사의 네임밸류만 보고 우선 입사를 결정했지만, 지나고 보니 직무가 더 중요하고, 그 중에도 내 숨은 가치를 보는 귀인과의 인연과 약간의 운이 더해져야, 내 Career Path에 방향성과 추진력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당시 나는 마치 빛 한줄기 없는 어둠속에서 칼집도 없이 칼을 휘둘러대며 지쳐가던 시기였었다. 그렇게 낮은 위치에서 낮은 자세로 커리어의 돌파구라는 생각으로 기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기술사 공부는 흔히 말하는 '운칠기삼'이 아니라 오히려 '기칠운삼'에 가깝다. 합격의 칠할은 매일을 꾸준히 공부하는 엉덩이 힘이고, 나머지가 운이다. 여기서 운이라 함은 요행이 아니라 학습량에 대비 제시되는 문제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눈에 익어 짧은 시간 내 즉문즉답이 가능한 문제를 마주하길 바라는 바램이다.


시험장에 가보면 개인별 준비의 차이는 확연하다. 하루종일 고사장에서 시험이 언제 끝나나 싶어도 시작하면 마치 시위를 놓은 활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끝나고 나서야 정신없이 필기하느라 지친 손목의 욱씬거림이 느껴진다. 사실 공부방법은 개인차가 많겠지만, 당시 미국기술사로 역학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던터라, 웹상에 파는 서브노트를 사서 내 방식대로 내용을 붙여가면서 날마다 외웠던것 같다. 이렇게 3개월 준비하고 처음 필기시험을 봤는데 놀랍게도 59.9점을 받고 첫 탈락의 고베를 마셨다. 이후 초심자의 저주였는지 몰라도 기존 루틴대로 외워도 53, 54점 언저리에서 헤매면서 한동안 좌절기를 겪었다. 슬럼프가 오면 더 이상 외우는게 즐겁지 않았고, 이 짓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동안 쉽게 지치지 않도록 공부를 쉬다가 시험이 한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 다시 노트를 펴고 집중적으로 암기하는 식으로 방법을 바꿨다. 중요한 점은 매 차시 어느 시점에 내가 경험했거나 암기한 문제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웬만하면 시험 응시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하는 점이다. 어느 순간 노트를 계속 외우다 보니, 시험이 보름만 남아도 노트 내용만 다시 훓어 보며 신기술 트렌드 정도만 파악하고 가도 시험장에서 대응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을 치르고 나니 이 정도면 합격하겠구나 생각하는 시점까지 도달했던 것 같다. 지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문제들이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일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많은 고민을 했던 도장 분야의 경험과 묘하게 연결되는 문제가 기억난다.



불과 15년 전만해도 방청분야에서 도장은 건설업계의 주류에서 소외되어 왔었다. 당시 그린필드 내 신규 프로젝트의 도장 규격 수립 임무를 받고, 국내 한 대형 제조업체의 도장 규격을 벤치마킹하려고 보다가 놀란 적이 있었다. 영문 코드로 특정업체의 제품들이 명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도장 전문업체에 외주를 의뢰하다보니, 알아보기 힘들게 제품코드명으로 자사 제품을 넣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공법으로 도장 관련 ISO 규정을 보며, 6개월간 현지 업체에 대기 중 염분 조사 용역을 의뢰했고, 그 결과를 근거로 ISO12944에 따라 도장 규격을 수립했었다. 현지 환경에 따라 코드를 해석해 그대로 준용한 결과이긴 하지만, 50억불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에서 대리가 세운 도장 규격으로 메인 철골 방청규격이 그대로 준용된 점은 요즘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에는 발주사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팀에서도 관련 설명회를 여러번 가졌지만, 도장을 그저 Side Job의 일종으로 취급하며 굳이 깊이 알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도료사들과 협상과정 중 해외 제작장에서 규정대로 도장이 이행되는지 도료사의 QA/QC(품질관리) 서비스 및 인증을 보증받기 위해, 공급부터 품질관리까지 일원화 된 글로벌 도료사를 선정하려고 할 무렵에는 기존에 관심없던, 반대론자들을 맞딱뜨리게 되었다. 결국 실행은 각자 자율적으로 진행하며 국내든 해외든 기존의 공급 먹이사슬은 유지되었을지 모르지만, 규격에 맞는 함량의 아연도 프라이머나 도막두께 준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도막 Lifetime을 15년 설정했으니, 지금 쯤 현장을 보면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여하튼 당시 ISO 코드 번호들이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열정을 갖고 본 기억이 있어 기술사 문제 역시 놓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거듭된 필기 탈락과 한번의 면접 탈락 뒤 2020년 겨울이 되서야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미국기술사를 취득하고 거진 3년이 지나 있었지만,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의 커리어는 대부분 큰 변함이 없었다. 쓸때도 없는 미국기술사를 왜 하냐던 선배들도 하나 둘씩 언제,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기 시작했다. 사실 현업과 연결된 기술사 종목이라면 평소 업무를 하면서 용어하나 더 정확히 확인해가며 자가 학습이 가능하다. 오히려 억지로 쓰면서 외우는 것보다 더욱 각인시키기 쉽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어느덧 주변에서 업무를 등한시하고 칼퇴하면서 공부한다, 이직 준비한다는 엉뚱한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던것 같다.


국내기술사의 결과는 미국기술사와 달리 소액의 수당이 나온다는 점만이 다를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분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등떠밀어서 한 것도 아닌 만큼 '축합격'이란 게시물은 밀물같이 밀려드는 경조사 소식들에 빠르게 페이즈아웃 되어갔다.


"선배님!"

어느 날 문득 사내메신저로 날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어느덧 나에게 미국기술사 Reference를 요청하는 후배들이 생긴 것이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모든 과정을 감내하며 나에게까지 온 것을 보니, 회사동료로서 반갑게 느껴짐과 동시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마음 한켠 안도감도 생겼다.


블로그나 메신저를 가끔보면 한국이나 미국 기술사에 대해 이건 따기 쉽고 이건 어렵고 하는 비교 글들이 보인다. 물론 구조나 소방처럼 기술사 인증이 필요한 공종은 인증에 대한 책임감으로 타 기술사보다 중히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격취득 자체도 사람에 따라 누구는 3개월만에도 가능하다. 암기 위주의 주관식 평가인 한국 기술사와 달리 이론 위주 문제풀이형 객관식인 미국 기술사는 상대적으로 쉽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 경험 글들을 모두 맞거나 틀렸다고 보지는 않고, 그냥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험의 난이도는 응시해본 사람만 안다. 준비된 사람은 쉽게 느꼈을테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반복 암기가 익숙할지만, 수학적 계산을 통해 명확한 답을 구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자의적인 난이도 얘기보다도 무슨 자격증이든 아무개씨의 끈기와 노력에 관한 경험담이 더 마음이 쓰인다. 또한, 그렇게 차곡히 쌓인 하루 배움의 기억들이 지식의 깊이를 만든다.한동안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 간 체득한 습관을 잘 활용하여, 다른 기술사 학습으로 발을 넓혀보았다. 업무에서도 신규로 화공 프로젝트를 참여하며 동시에 미국기술사의 Chemical 분야도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후는 모두 허무하게 실패했다.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이고, 한번 더 해볼까는 안이한 결정을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루어 내기에 내 실력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고 나서는 더 이상 자격증 한칸 늘리는게 즐겁지가 않았다. 대신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내 동기가 무엇인지, 왜 내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지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그동안 오랜 고민만 하고 실행은 엄두도 못내던 학위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했다.


저맘때의 나도, 현재의 나도 언제 화평굴기(和平崛起)하게 될까하는 기대가 있다. 한편으로 아직도 칼집 속에서 빛을 갈고 닦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대신 언젠가 그 빛이 드러나며 우뚝 일어설 순간을 기다리며, 지금까지의 작은 성과들이 누군가의 영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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