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조각(2)
요즘은 유명인이나 일반인 가릴 것 없이 소리소문 없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 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아마 대부분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전 생애주기동안 희노애락의 복잡한 감정을 품고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대처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개개인이 허용할 수 있는 감정 폭에 의해, 마치 기저효과처럼 어느 기준 시점의 감정에 따라 내 감정의 기울기는 냉탕 온탕을 향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번번이 취업원서에서 낙방을 하던 이는 비록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망과 아쉬움이 남겠지만, 98번째와 99번째 낙방 간 기울기는 그 동안 형성된 기대 하향된 감정 밴드에 따라 자신감과 기대로 가득 찬 첫번째 시도의 기울기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흔히 정신질환에 동반되는 용어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자주 회자된다. 쾌락을 부여하는 대표적인 물질로 보상이나 성취 동기를 부여하는 호르몬으로 최근 도파민 중독, 도파미네이션, 도파민 효과 등의 용어로 쓰이는 것 같다.
비록 아는 의학지식은 이게 전부지만, 내가 자주 접한 자연계의 물리법칙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중학교부터 대학원때까지 날 괴롭히던 뉴턴의 3법칙은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그리고 작용 반작용의 법칙의 3가지로 나눈다. 쾌락을 쫓는 이는 쾌락을 지향하는 자세로 변하기 마련이며, 짧은 시간 내 더 큰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며, 만족스러운 쾌락을 접하지 못한 경우 반작용으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쉽게 빠지기 쉽다. 물론 마약이나 도박 같이 도파민 중독을 부를 정도로 짧은 시간에 큰 쾌감을 주는 경우, 자연히 그 반작용 또한 거기에 상응할 것이다. 문제는, 자극 x를 받는 개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Capacity y는 지수함수처럼 최악에는 0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로그함수처럼 때론 무한히 음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로만 할 수 있는 극한의 고통이라는 것은 과거에 경험해보지 않아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기저효과나 기대효과를 가늠조차 해볼 수 없다. 아마도 내가 경험한 감정한계선을 넘어선 반작용으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순간, 격랑의 파고 속에 키를 잃은 돛단배처럼 헤매일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순간은 차치하고, 우리는 매일을 감정 통제선 내에서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아침에 이별통보를 받고 온갖 새드 스토리들은 내 경험 마냥 암울해 있던 지난 날도 어느덧 아물어 새로운 각오로 정신줄을 다잡기도 하고, 무지성 매수로 산 주식이 다음날 상한가를 쳐도 순간의 행운으로 이것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챈다. 이는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기쁨이나 아픔의 경험만큼 형성된 감정통제선에 따라 아무리 기울기가 춤을 춰도 자제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주식처럼 10%의 하락이후 10%의 상승이 본전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듯, 슬픔 후에 그 아픔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즐거움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99번째 낙방에서 1번째 합격으로 모든 슬픔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정에서 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를 보내며 난 무엇으로 도파민을 충전하며, 무엇 때문에 가끔 자제력을 잃고 마음에 없는 말이 나왔는지를 곱씹어보았다. 문득 영화 타짜의 대사 중에 세상의 단맛, 쓴맛 다 겪어본 놈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비록 넓은 밴드의 감정통제선은 세상의 왠만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날 지킬 수 있겠지만, 내 앞에서 작은 사탕 하나에도 세상을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짓고, 도파민을 뿜는 아이를 보니, 우울증이라는 말이 새삼 무섭게 느껴짐과 동시에 세상의 좋은 것만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부모마음이 조용히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