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까?
자녀교육에서 자기 주도 학습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90년대 시골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조금 낯선 이야기처럼 들린다. 당시 주변 대부분 친구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오히려 학원에 가거나 학습지를 푸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지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주산학원이나 컴퓨터학원 가방을 든 친구들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이면 학원에서 후뢰시맨을 보여준다는 친구 말에 학원생도 아니면서 몰래 보며 느낀 쭈뼛거림과 두근거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한푼 두푼 모아 컴퓨터 학원 등록금을 손에 쥐어 주셨던 부모님 마음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학습에 있어 누군가의 리딩이나 정보 제공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의 키잡이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주도든 반강제든 이를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지만,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면 이보다 빠른 자기 개발은 없을 것이다. 물론 스스로 방향을 살피며 노를 저어가는 뛰어난 친구도 있고, 확고한 교육관을 가진 부모님의 지도를 받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만의 학습방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국 경쟁력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런 저런 자격증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MOOC를 알게 되었다. MOOC는 ‘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약자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 아이비리그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게 다가왔다.
어린 마음에 미국 유학을 가거나 국내 유명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은 나와 달리 무언가 특별한 학습 능력을 가졌다는 생각했다. 그 호기심에 과연 강의가 얼마나 어렵고 고차원적인 내용인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MOOC 플랫폼 중 하나인 ‘Edx’에 접속하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 들은 프로젝트 관리 강의는 영어였지만, 현업과 연관된 용어가 많아 시작의 두려움에 비해서 의외로 맥이 풀리는 평이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넘치던 의욕에 비해 강의를 오래 듣는 것 쉽지 않았다. 학습 목표 설정 없이 흥미만으로 하는 공부는 해당 분야에 특별한 흥미가 없는 한, 끈기를 쉽게 잃게 만든다.
그렇게 강의 맛보기만 하며 흥미를 붙이려는 중, 우연히 MITx에서 공개한 Supply Chain Management 강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공급망 관리는 현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단순히 구매를 위한 개념 정도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문구에 이 강의를 한번 들어보고자 하는 의욕이 생겼다. 바로 ‘Blended Master’s Degree’라는 문구였는데, 처음에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아 관련 설명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석사 학위는 주간이든 야간이든 실강을 들어야 했고, 더군다나 해외 대학은 당연히 현지 유학이 일반적이었다. 나처럼 딸린 식구들도 있어 벌이를 중단하기 힘든 경우, 회사에서 우수사원으로 선발되지 않는 한 학위 프로그램 자체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였다. 야간 과정도 고려했지만, 굳이 인근 대학원 야간 과정으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학위를 취득한들 현재 위치에서 무엇이 바뀔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Edx에서 본 MIT의 Blended Master’s Degree는 상당히 혁신적으로 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Edx 내 MITx에서 운영하는 5개 모듈로 구성된 ‘MicroMasters Supply Chain Management’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이수하고, 최종 시험을 통과하면, 비로소 블랜디드 석사 학위 프로그램 지원자격이 주어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합격 시 MIT 캠버리지나 스페인의 MIT 사라고사 센터 중 한 곳에서 5개월간 On-Campus 심화 과정 및 캡스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MIT의 MACc-SCM (Master of Applied Science in Supply Chain Management)이나 MEng-SCM (Master of Engineering in Supply Chain Management)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눈이 번쩍 뜨여 당장 Edx 유료 프로그램으로 5개의 모듈과 최종시험 세트를 결제했다. Edx 강의는 기본적으로 무료지만, 과목별 수료증을 받으려면 모듈별 유료결제가 필수적이다. 현재 당시 강의 내용은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지워져 기억이 나질 않지만,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한 번에 두 개의 모듈 교육 일정을 소화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해 하반기에 시작하여, 다음해 2월 종합 시험을 치르고 바로 블랜디드 석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매일 저녁을 헌납하다시피 몰두하며 5개의 모듈을 반년 만에 마쳤다. 당시 가족들도 배려해주었지만 왜 SCM 공부에 저렇게 몰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종합시험도 92점 정도로 마치며 MicroMasters Credential를 성공적으로 이수하였다.
하지만 진정한 장애물은 강의 성적이 아니라 더 단순한 현실적 제약들이었다. 부끄럽지만, 학교 내 외국인 학생의 기본 입학 조건인 영어 성적이 내 발목을 잡았다. 취업을 위해 토익시험만 보던 나에게 토플 IBT 100점 이상이 요구되었는데, 비싼 시험을 볼 때마다 좌절을 느꼈다. 대안으로 본 아이엘츠도 마찬가지 였다. Overall 7.0은 당시 나에겐 ‘마의 구간’이었다. 결국 지원 기간 내 영어성적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해보니, 마냥 MIT의 석사 타이틀만 쫓아 눈이 먼 채 몰두했던 지난 10개월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버스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MIT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SCM이라는 분야에 관심도 없었을 테고, 합격했더라도 체류 비용을 제외한 5개월 수업료만 5만불인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학위를 위한 학습 노력은 당연하지만, MIT 학위라는 이유로 반년간 휴직에 대한 기회비용과 가족체류비까지 포함하여 약 7만불의 견적서는 상당한 고민거리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숨고르기를 하면서, 현업에 신규 프로젝트를 착수하며 자연히 바빠지자, 영어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금전적인 고민도 뒷전으로 밀려났고, 서서히 이 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었다. 아직도 훈장처럼 내 링크드인 자격란에 ‘MicroMasters SCM Credential’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을 알아보면서 MIT의 SCM 프로그램의 경우 이 프로그램 외에도 굳이 MIT 정식 입학 없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Back Door’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실패한 경험과 더불어, 이것이 서두에 자기 주도 학습의 유행이나 학습 리딩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 정보를 미리 알고 문을 두드렸을 것이고, 30대 중후반에 되어서야 공부에 눈을 뜨고 해외 대학원 입학에 영어 성적 유무조차 판단 못하고 허겁지겁 준비한 나의 무지함에 비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미리 가진 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뒤돌아보면 진로의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친 것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사실 서두에 언급했듯이 가깝게는 부모형제부터 선생님까지 가이드를 받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없다고 해서 가족들을 원망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은 바로 하수 중의 하수이다. 나 또한 가계유지를 위한 생업이 우선이셨던 부모님을 원망하고, 자책하며 놓친 기회들이 있었다. 물론 스스로 알아내고 실천하는 자세가 최선이지만,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다면 때론 누군가의 조언이나 가이드가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번 시도를 통해 얻은 것은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학습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미리 알고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 것인지이다. 과거를 반추하며, 학습 정보의 중요성과 더불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파구를 찾는 용기도 필요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Edx에서의 MITx 프로그램 수료는 실패만을 남긴 경험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함의 외에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하는 기회의 본질을 돌아보게 했다. 아울러, Edx에서 흥미를 붙인 경험은 내 이력의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Edx에서 수강한 강의를 타고 넘어가서 학교 자체에 대한 프로그램도 재미로 살펴보다가 느지막이 대학원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