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Learner로서 여정(6)

실패로 빚어진 새로운 전환점

by 와이키키

현 한국 사회의 교육이나 입시 시스템을 보면 특별한 예체능 계열을 제외하고 획일화된 학습 방향으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대학 입학 전까지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 지나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깊이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취업을 위한 삶을 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평생직장이라는 관점에서 일하다 보면, 문득 내가 걸어온 길에서 무엇이 잘되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되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방과 후 학습이나 학원을 통해 이것저것 학습하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찾아보는 기회를 어릴 때부터 갖는다. 오히려 요즘은 학원의 종류나 배움의 종류도 다양해서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하지만 발레도 플룻도 하모니카도 배우던 아이들은 부모의 플랜에 의해 서서히 취미로 배우는 과목을 줄이고, 내신이나 수능이라는 입시 경쟁의 굴레 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한다.


반면 학원 경험이 거의 없던 어린시절의 나는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세상 물정에 어두웠지만, 막연히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학업 성적의 흐름을 보고, 대학을 가서 전공을 정해보고, 취업하면서 내 꿈의 크기는 마치 피라미드를 오르듯 조금씩 축소되어, 어느덧 한 뼘 남짓한 도화지에는 현재 내 모습 이상의 무엇도 그려지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의사가 되고 싶었고, 좁은 방에서 누나와 지낼 때는 큰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이든, 선택 여지가 없던 길이었는지 몰라도, 어찌어찌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히 취업도 하면서 엔지니어가 된 지금은 어린 시절 꿈처럼 의사나 건축가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꿈과 멀어진 현실을 위로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이 길이 어쩌면 내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호주에 파견되어 현지 협력 업체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싱글대디 였던 친구와 얘기를 하던 중 초등학생 딸의 학교 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잘하는 운동하나 만들기라는 소리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같이 협업하던 변호사 한 분은 골프 특기생으로 고등학교까지 골프를 했는데, 막상 대학에 가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물론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의외로 이런 생각 이상의 커리어 체인지가 많은 것을 보면 이를 용인해주고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도 생각이 들었다. 아마 국내에서는 특기생에 대한 편견이나 대학 학부의 명성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이런 이력으로 국내 유명 로펌에 취업하기는 상당한 유리천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많은 직업군 중 엔지니어가 되었다는 후회보다는 대학 간판에 대한 콤플렉스가 상당히 많았다. 어쨌든 학습의 결과니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왜 재수할 용기가 없었을까 생각도 해봤다. 아마 비겁하게도 성적이 더 나아질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난한 대학생활을 마치고 취업에 성공했지만, 대학원에 입학 문의에 입사를 포기할 정도로 흔들리기도 했었다. 마음 한 켠에 이런 콤플렉스는 그동안 겪었던 모든 실패의 원인을 학벌 탓으로 돌리게 만들어, 떨쳐내기 힘든 짐처럼 느껴졌다. 인사고과에서 동기보다 낮거나, 승진이 늦어지거나, 원하는 프로젝트에 선택받지 못하는 등 모든 불리한 상황을 다른 이유가 아닌 학부 간판 때문이라고 치부하게 되니 과거만 자책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원 진학에 대한 생각은 Edx를 통해 MITx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MIT 간판을 위해 학업의지를 불태운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불혹이 코앞이라 무사히 마칠 수나 있을 지, 대학원에 간다고 소위 학벌세탁이 될지 등 불확실한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자문자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습관의 힘은 강렬했다. 블렌디드 학위 과정을 포기한 이후에도 퇴근 후 집에 와서 하던 학습 루틴에 대한 관성은 계속되었고, 학습이 없는 시간은 왠지 모를 공허함으로 채워졌다. 물론 가족과 보내는 또 다른 시간이나 휴식으로 채워지고 있었지만, 내면에는 새로운 학습으로 채우고자 하는 욕구가 피어났다.


사실 막연히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학습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매일 이 시간에 이걸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자문자답을 쉬지 않고 묻곤 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미래에 대한 약속은 공허한 외침 같아서 누군가의 이해나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어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답을 찾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쌓은 동기부여와 학습 습관이 무너지고 나면, 이제 다시 쌓기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후회없이 하자는 결정이 더 우세했던 것 같다.


Image by Chat GPT


Edx에서는 전공별로 다양한 해외 대학의 강의를 접할 수 있었는데, 실제 강의 자료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그중 일부는 학점 인정까지 가능한 과정도 있었다. Edx의 강의 일부가 대학 간 학점 인정이 된다는 사실은 Edx가 학위프로그램의 일부로도 활용될 것이라는 가정과 함께, 실제 많은 미국 대학들의 학위 프로그램들에 Edx와 같은 MOOC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도 특화가능한 MBA과정이나 컴퓨터 사이언스 과정이 많았다. 단순히 지난번처럼 학교의 유명세만 보고 지원할 순 없었기 때문에, 학교별 프로그램과 전공이나 현업 사이의 접점을 찾기 쉽지 않았다. 물론 업무와 병행 가능한 국내 전문 대학원이나 인근 대학원도 함께 살펴보았다. 하지만 휴직 후 주간 과정으로 등록하지 않으면 전공과 맞추기 어려웠고, 국내 분위기상 야간이나 파트타임 석사는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비용이나 시간 대비 효율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강의들을 훓어보다 우연히 방문한 미국 대학교 전형일정과 전공 프로그램을 보고 ‘딱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자격요건이 얼추 가능했고, 전형일정도 준비가능한 시간이었고, 전공도 학부 전공과 동일했다. 먼저 선택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면제 조건이었다. GRE는 대학원 진학을 위한 학습성취도 평가 시험으로, 어학, 수리, 작문 능력을 측정하며 1년에 두 번 응시할 수 있다. 다만, GRE부터 시작할 만큼 대학원 진학에 대한 시간적 여유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둘째로 On-Campus/Off-Campus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논문 / 비논문 과정 선택이 가능한 점이었다. 원래 계획은 1년씩 On/Off를 해보고 싶었고, 상담 시 박사 진학 희망여부에 따라 논문 / 비논문 과정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듣고, 비논문 과정을 선택했다. 일단 미국은 워낙 넒다 보니 동부나 서부에서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일부 나처럼 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어 Off-Campus 과정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아울러, 비논문 과정 선택 시 입학 전 Lab실이나 교수들에게 별도 Offer할 필요 없이 지도교수가 선정되어 지원이 상당히 수월했다.


그리고 이번 지원에서는 학교의 간판보다는 동일한 전공으로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사실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며, SOP (Statement of Purpose)나 CV(Curriculum Vitae)를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다. 서류 준비도 느지막이 대학원을 준비하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좀 부끄럽기도 했고, 괜히 동료들의 눈총을 살까 봐 혼자 배우면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취득이후 수당이라도 주는 국내 기술사와는 달리 아무런 활용도가 없었던 미국 기술사가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고 합격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우선 미국 기술사는 자격 등록을 하기 전 미국 공학사 기준 학력 평가가 필수 조건이다. 즉, 국내 대학교 성적과 이수 과목별 Description을 준비하여 제출하면, 자국 기준으로 기초과학, 역학, 수학 등 과목별 이수 기준을 재정의 한 뒤, 해당 분과의 이수 학점이 기본 조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여지없이 해당 부분 학점 재이수가 필요함을 통지한다. 이는 특정 분과에 편중되거나, 쉬운 과목 위주로 이수하는 경우를 배제하여, 기술사의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준으로 이해가 되나, 때론 일부 국내 전공과목들이 현지에서 필수 전공과목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아무튼, 난 텍사스주에 등록된 미국 기술사 자격으로 인하여, 별도 학력 검증이 필요 없었고, 나아가 자격 요건에서도 일반 지원자들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SOP는 자기 소개서 격으로 학업을 어떻게 이어 나가겠다는 계획을 쓰는 것으로 정해진 분량 자체도 많지 않았으나, 합불의 척도로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코멘트를 듣고 나름 시간을 두고 고민을 하며 작성했었다. 그나마 회사 내 유학파 부장님께 찾아가 고견을 여쭈었는데, 이런 식으로 준비하면 거의 불합격이라는 말이 상당히 자극적으로 들렸었다. 어휘나 문장 등 몇 가지 피드백을 주셨지만 '네까짓 게 되겠어?'라는 싸늘한 시선처럼 느껴져, 더 이상 사내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기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그 동안 내 발목을 잡았던 영어도 이번에는 간신히 자격요건에 부합했다. 기존에 블랜디드 과정을 준비하며 응시했던 IELTS에서 최고 점수로 받은 Overall 6.5과 세부 요건 중 Speaking 6.0이 간신히 자격요건에 부합하여 영어시험 부담이 없었으며, 물론 ChatGPT가 없던 시절이라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SOP와 CV도 구글링 하면서 내 기준대로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학원은 추천인 제도가 필수적이었는데, 다행히 이런 결정을 응원해주는 사내 선배 두 분과 외부 교수님 한 분께 추천서를 받아 응시 서류를 무사히 준비했다. 전형 일정에 맞춰 서둘러 서류를 제출하며 모든 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지난 날을 소회하면, 마치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듯 순조롭게 전형 조건과 일정에 맞춰 응시를 완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매 순간 '이걸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비관적인 주변 여론, 학비 부담, 그리고 졸업은 커녕 영문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수많은 걱정이 나를 짓눌렀다. 이 모든 고민에 대해 혼자만의 합리화를 하며 과정을 이어가는 기간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래서, 오히려 응시서류 제출 시 마음이 너무 홀가분해져 이제부터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모든 고민을 털어버렸다.


그렇게 치열하게 두 달을 보내고 7월 어느 날 Admission Letter를 받았다. 이는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학벌 콤플렉스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학습의 끈을 놓지 않았던 지난 날들에 대한 작은 보상처럼 느껴졌다.

keyword
이전 09화Professional Learner로서 여정(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