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째 수면 이슈로 몸과 마음고생을 꽤나 하고 있다. 자는 것과 먹는 것. 이 두 가지만 내 인생에서 해방됐어도 나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병원에 가서 약을 바꿨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예술인 심리 상담을 4개월쯤 진행했을 때, 상담 선생님이 너무 힘들면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나는 더 이상 나쁠 시간이 없었으므로 바로 병원을 예약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가려니 무서웠다. 진료실에서 나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가… 선생님 저는 정말 여기 다시 오기 싫어요. 저는 제 삶을 나아지게 하려고 진짜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 자꾸만 여기로 돌아와요 하고 엉엉 울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잠을 엉망으로 자거나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던 것, 술과 담배를 끊고 시작하길 반복했던 것, 아무나 만나서 쉽게 자버렸던 것. 자해였는데 멈출 수 없었다. 보통 나는 내가 나인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즉흥춤도 배우고 글쓰기도 하고 수영도 했잖아요. 훌라도 배우고 텃밭도 가꾸고 차도 마시고 자연 속에서 위안도 받았는데 왜. 병원 진료 기록이 5년이면 사라진대서 이번에야말로 참았다가 실손 보험에 들려고 했는데 또 왜.
시간이 빠르게 지나서 같은 새벽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뭔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만난 친구가 날 꼭 안고 “으이구~ 잘 지내?”라고 물어봤을 때 “아니 사실 나 잘 못 지내”라고 대답했다. 둘 다 까르르 웃었다. 친구가 내 손을 붙잡고 “나도. 못 지낸다고 말할 수 있어 기뻐!”라고 말하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를 머뭇거리게 할 때가 많다. 잘 보이고 싶고, 괜찮아 보이고 싶고, 내심으로는 나를 좋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 특히 일이라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나는 입을 꾹 다물게 된다. 폐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너에겐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아. 나의 작업과 내 출신과 형편과 인간관계와 그런 무엇을 다 떠나서 그냥 '나'이기만 해도 되니까 편해.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 내가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손으로 꼽아보았다. 그러다가 내 신세한탄에 나를 떠나갈 것 같은 사람들 손가락을 다시 펴 보았다. 몇 명이 남으려나.
'좋은 집에서 부모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산 걸 친구들에게 숨겼던 적이 있었어. 왠지 모를 죄책감 때문에. 그래서 더 무전여행을 하고 가난을 습득하려 했었나 봐.'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 역시 엄마와 사이가 안 좋다는 친구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평생 바다와 같은 사랑을 내게 쏟아부은 부모의 은혜를 쏙 빼고 엄마 흉을 본 적이 있다. 근데 사실 굳이 숨길 건 아니었다. 내 처지가 나아 보이면 우리 사이에 연대 같은 게 사라질까 감췄지만 친구를 좀 더 믿어도 됐었다. 좋은 집에 살면 좋은 집에 살아서 좋겠다. 좋은 대학에 갔으면,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그렇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시키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좋다. 우리의 당장의 상황이 영영 결정짓는 것은 아니잖아. 지금은 니가 돈이 많아서 나에게 베풀 수 있지만 언젠간 내가 내 안에 깊은 사랑으로 너를 보듬어 줄 수 있고, 작업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방을 내어 줄 수도 있으니. 그러니까 내 말은. 친구야. 우리 너무 시간을 얕보지 말자. 언젠가 살다보며는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고받게 되어 있어. 길게 보자 길게. 우리 둘 다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나는 접었다 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길게 볼 수 있을까. 믿어봐야 하는데. 그랬다가 상처받을까 봐 겁도 난다.
올해 새로 알게 된 친구들, 알던 친구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이 즐겁다. 나는 사람의 웃김을 최고로 치는데 그이의 웃긴 점을 찾거나 같이 팍 터져 웃게 되는 순간들이 좋다. 어디서 이런 애가 이제서야 나타났을까. 자꾸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니 인생의 최초 기억은 뭐야? 거기서 살 때 어떤 점이 힘들었어? 요즘 무슨 생각 자주 해? 그럼 그 애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열심히 하고 나는 그 표정이 웃기고 귀여워서 실실 웃게 된다. 지난주에 너와 이런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걸, 작년에 우리가 알았다면 좋았을걸. 몇 년 전에 너를 만났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 몰라. 그전에도 앞으로도 내가 늘 필요로 했던 사람들. 알아갈 날들이 많으니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길게 봐야지.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폈다가 하다가 왠지 새삼스러워서 열 손가락 모두 꼭 접는다. 이 유한한 인생, 마음을 아끼지 않고 곁을 내어주고 또 기대며 살아봐야겠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요. 몸이 따라오면 마음도 언젠가 도착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