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by 오씨네


새해가 밝았다. 보험회사 운세사이트와 어플에서 광고가 여기저기 넘쳐나는 계절이다. 올해는 좀 나아질까, 아니면 또 다른 문제 속에서 허우적댈까. 해가 넘어갈수록 이 불안감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런 걸 좀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신년이 된 김에 한번 보러 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하며 핸드폰에 도사님들 연락처를 만지작거린다.






매미도 맴- 울기를 멈춘 여름 한가운데, 습기 머금은 공기는 사방을 고요하게 한다. 대자리 위에서 털털털털 돌아가는 선풍기가 기력을 다했는지 영 힘이 없다. 그 앞에는 나시와 짧은 반바지 차림의 열두 살짜리가 땀을 말리고 있다. 눈을 감은 채. 땀은 이마를 타고 뺨을 지나 불규칙적으로 위아래로 덜덜덜덜 움직이는 허벅지 위로 툭 하고 떨어진다. 그때 착! 하는 손바닥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면 할머니 손바닥 모양이 허벅지에 그대로 찍혀있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이”



어렸을 적부터 좀 예민했던 여자는 비가 와도, 고기를 먹어도, 기분이 나빠도 바로 체했다. 그럼 엄마와 할머니 손에 질질 끌려 ‘체내리는 집’에 갔다. “아악 살려주세요오.” 하며 손을 싹싹 빌어도 체내리는 할머니는 그녀의 등을 착 치며 호통쳤다. “그만 울으라! “ 그리고 머리 위로 신문지가 씌워졌다. 발버둥을 치면 엄마와 할머니가 발목 하나씩을 붙잡았다. 이내 체내리는 할머니는 파란 쓰레기통을 입에 가져다 놓고 손을 쑥- 넣었다. 우웩. 웩.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여자는 잘 참고 착하다는 소리와 함께 박카스를 손에 쥔다.



고등학생이 된 여자는 이따금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수능만 끝나면 나아지는 건지, 대학에 가서 이 집구석을 벗어나야 나아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달간 지속된 불면에서 이유를 찾고 싶을 때도 있다. CT를 찍어도 두통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할머니와 엄마는 여자를 따로 부엌의 조용한 공간으로 불렀다. 부엌문이 닫힌다. 부엌 식탁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이거 아주 귀한 거야” 봉지를 끌러보니 뇌가 있었다. 머리가 아플 땐 다른 동물의 뇌를 먹어야 낫는다는 것이었다. 아주, 신선한, 벌건, 김이 펄펄 나는, 뇌. 여자는 먹기 싫다고 했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이미 소의 뇌를 설겅설겅 썰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거야. 소 도축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고급이야 고급. 이걸 먹으면 나을 수 있을까? 한입의 뇌가 입에 들어갔다.




어느 날 여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친다. 교복 하복 차림의 그녀는 바로 거실을 지나 열려있는 안방 미닫이문의 문지방을 콱콱 밟는다. 아아악 문지방을 밟은 그녀의 발에 힘이 세진다. 흰 양말이 붉게 물든다.








작년에는 진짜 어디가 용하다는 얘기만 들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점을 보러 갔다. 한참 화병에 시달리던 나에게 친구는 가만히 다 들어주더니 솔직히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대신 그녀가 매년 가는 철학관을 소개해 주었다. 생각보다 젊은 철학관 선생님이 나에게 10번 넘게 말했던 건 “육체노동을 하면 안 돼요”였다. 아니 저 지난주까지 말이 현장직 스텝이지 거의 노가다 뛰다 왔는데요 선생님… 그래서 안 맞은 거예요. 당신은 현장 스텝이 맞지 않아요.


나는 내 불안한 미래를 매일매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막막하기만 할까. 엄마가 말해준 동네에 용한 신점도 보러 가고, 사주랑 점성술을 같이하는 선생님이 제주도에 내려왔다기에 가고, 서울에 갔을 적에 친구가 진짜 잘 맞추는 보살님이 있대서 보러 갔다. 그리고 타로 봐주는 친구들에게 종종 5천 원을 내고 점을 봤고 인터넷에 연애 전문으로 하는 점쟁이에게도 돈을 내서 점을 봤다.



와… 써놓고 보니 내가 지금 신탁 국정운영하는 자들을 욕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절대로 고위공직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는 매번 미래를 본다는 자들에게 내 과거와 그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저는 진짜 너무 진심으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너무 실망스럽고 과거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은 작년은 ‘사주상, 별자리 상, 운 때 상’ 힘들었을 시기라고 말해줬다. 그럼 나는 내 고통의 근거라도 찾은 듯이 당당해져서 “맞죠? 제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죠?” 하고 확인받으려 애썼다. 그럼 그들은 “어휴, 작년에 그 정도이기 망정이지 큰 금전적 손해나 건강,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해야. 이만하길 다행으로 여겨!”라고 했다. 그럼 나는 그걸 다행으로 여기며, 돈도 없으면서 기꺼이 5만 원을 내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내 미래를 같이 감당해 주는 한 시간에 5만 원이면 싼값인 것 같기도 했다.




한 번은 어디 군자에 보살집에 신점을 보러 갔다. 보살님은 나를 보자마자


“우와 언니, 언니 운세가 너무 좋다!! 이제 확 필 일만 남았다!”

“저 작년에 진짜…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 작년에 힘들었겠네. 근데 다 끝났어. 언니는 남들이 50살까지 할 고생 지금까지 다했네. 이제는 너무너무 잘 될 일만 남았어. 이렇게 기운 좋은 손님이 아침부터 오니까 너무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이 점괘를 엄마와 밥 먹는 동안 말했더니 엄마는 피자집에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진짜… 너는 너가 한 거에 비해 너무… 너무… 힘들었어… “ 사람들이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는 것 같아 민망했다. 나는 맘속으로는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괴로웠을 내 인생이 좀 미안하게 여겨졌다.



그달 5월 말에 아주 좋은 일자리가 들어온다던 그녀의 말은 틀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9월이 되기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강한 어조로 ‘너는 잘 되고야 만다!’라고 말한 점괘를 그냥 구슬처럼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인생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나는 잘 되게 될까? 아니면 이번에도 그냥 돈을 날린 것일까?








그녀의 할머니는 3시간에 한 번씩 각 방의 모서리에서 염주를 잡고 염불을 왼다. 할머니의 오른손 지문은 기도를 하며 닳아간다. 천주교인인 그녀의 엄마도 성당에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하지만 몇 년 전 성인이 된 그녀가 자꾸 물에 빠지는 꿈을 꾼다고 하니 바로 동네 심방을 찾았다.


“야이가 잘도 착한 아이인데예. 자꾸 물이 막 무섭댄 예”


북과 방울 소리가 방안을 매운다. 둥둥둥둥. 심방이 던진 칼이 바당에서 챙챙 울린다. 심방들이 가운데 앉은 모녀 주위를 뱅뱅 돈다. 뱅글뱅글. 그녀의 엄마는 “이제 다 끝났다. 이제 다 낫는다” 계속 이 말만을 중얼거린다. 한편 그녀는 자신의 몸을 쓸어주는 심방들과 온갖 소리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몸이 덜덜 떨린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엄마의 마음은 딸에게 자주 오염되었다. 여자 역시 엄마의 마음에, 엄마 역시 할머니의 마음에 자주 물들었다. 세 여자 안의 사랑과 불안은 세대를 통해 전승되었다. 서로를 아끼지만 종종 미칠 것 같았으며, 언젠가 휙 버리고 떠나고 싶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런 마음을 각자의 신에게 빌었다. 제발 이 고통이 끝나게 해 주세요. 늘 그렇듯 신은 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절에서, 성당에서 어플을 켜서 올해에는 좀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나는 어플에 신년운세란을 쭉 훑는다. 올해는 연애운도, 금전운도, 직업운도 꽤 좋다고 한다. 오… 근데 괜히 좋다니까 심술이 나서 안 믿고 싶어진다. 운명, 너 올해도 나를 속이고 열심히 살게 한 뒤에 뒤통수 칠 거지. 운명이란 게 정말 있다면 내가 그 운명을 고를 수도 있을까. 올해는 정말, 운수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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