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상준 Oct 21. 2023

9화. 시계탑과 에메랄드 사원

 어둠 속에 흐르는 삥 강은 온갖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다 안고 가기에 검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물질들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들까지 한데 섞여 돌고 돌기에 검은색이 되었을 것이다. 무지개 일곱 색의 물감을 모두 섞어서 휘저으면 검은색이 되듯. 그러나 살아가는 세상에도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듯이 저 강물 속의 색은 혹시 하얀색이 아닐까. 

다리 위를 걸으면서 내가 툭하고 한마디 던진다. "우리 기왕이면 좀 더 북쪽으로 가볼까."


 치앙마이를 한 번에 다 본다면 아까울 것 같아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 싶다. 아직 많이 남은 인생인데 미련을 가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린 치앙라이로 가기로 한다. 훗날 다시 치앙마이에 와서 삥 강을 보게 된다면 저 강물은 분명 푸른빛을 띠고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볼트로 택시를 불러 치앙마이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버스로 3시간을 달려 치앙라이에 도착한다. 이젠 구글맵으로 길을 찾아가는 게 일상이 되어 캐리어를 끌면서도 길을 잘 찾아갈 수가 있다. 학교 부근에 있는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선 4층으로 짐을 들고 간다. 아담하지만 4층이라 창문으로 보는 뷰도 괜찮았다. 치앙라이를 란나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 번개를 맞고 부서진 탑 안에서 에메랄드 불상인 프라깨우가 발견된 왓 프라깨우를 보고 싶었다. 물론 에메랄드 불상의 진품은 방콕의 왕궁 안에 있는 사원에 보관되어 있고 여기에는 모조품 불상을 모셔 놓고 있다. 그래도 1434년 벼락을 맞아 부서진 탑 안에서, 에메랄드 빛을 발하는 불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석가는 란나 왕국의 수도인 치앙라이에 무엇을 설(說) 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을까. 혹시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빼앗고 훔치고 한들, 그 생은 한순간 한 찰나에 불과한 삶이며 모든 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설(說). 그래서 '세상은 텅 빈 공(空) 일뿐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벼락 속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을까.


 오래되었지만 김동리 소설 '등신불'을 보면은 주인공이 중국 정원사의 등신대 금불상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자신의 몸을 불태워 소신공양을 하며 깨달음에 간 만적스님을 보고서다. 그 굳어진 몸에 금불을 입힌 불상이 '등신불'이다. 온갖 고뇌와 비통이 서려 목과 등이 굽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을 깨닫고 성불을 하였을까. 나는 무엇을 깨닫기 위해 치앙라이의 왓 프라깨우의 불상을 보러 왔단 말인가. 부처님은 내게도 화두 하나를 던져주실까. 

옥으로 만든 불상이지만 내 눈에는 에메랄드 보석처럼 푸른빛을 발하고 있다.



 법당 1층을 둘러보고 계단이 있기에 2층으로 올라가 본다. 법당이라기보다는 박물관 같다. 너무나 진귀한 조각품들이 많다. 우리나라 절의 법당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단순함과 화려함의 차이랄까.

동남아시아는 대부분 남방 불교이고,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티베트 등은 북방 불교이다. 근본은 하나인데 가지는 자꾸만 갈라지고 있다.


 치앙라이는 도심 중심에 있는 시계탑을 중심으로 대부분 배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태국 국왕 60주년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 치앙라이 출신 건축가인 찰름차이 코삿피팟이 만든 탑이다. 시계탑이 서있는 곳이 로터리가 되어 사방에서 차들이 계속 다녀 직접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지만 가까이에서도 잘 보인다. 부근에 넓고 깨끗한 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기에 우리도 들어가 본다. 메뉴를 보니 주메뉴가 치킨라이스다. 가격도 저렴해 시켜서 먹어보니 담백한 맛이 참 맛있다.    


 식사 후 부근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둠이 깔리자 다시 시계탑으로 간다. 저녁 7시, 8시, 9시 정각에 10분 동안만 '빛과 소리'라는 주제로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조명이 탑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황금색 탑에 비치는 조명의 아름다움. 이 10분 간의 빛과 소리의 황홀 속에 잠기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탑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참 아름답다.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다고나 할까. 조명과 음악이 멈춘다. 그리고 다시 모두가 흩어져 텅 빈 자리만 남고 공허감이 그 주변을 감돌고 있다. 우리 인생도 돌아다보면 똑같다. 우린 치앙라이의 밤하늘을 쳐다보며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이전 09화 8화. 무엉마이 시장에서 만난 과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