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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Nov 12. 2023

2화. 모델의 시작

 중앙에 길게 펼쳐져 있는 무대,  일명 우리는 그것을 캐츠워크라 부른다. 그 위에는 많은 조명들이 무대 위를 비추고 있고 그 조명을 받으면서 모델들이 걸어간다. 아름다운 옷들을 입고 걸어가는 모델들을 보면 모두가 부러워한다. 나도 저 무대 위를 걸어가고 싶다고. 비록 내 옷은 아니지만 디자이너가 자신의 열정과 정성을 다해 만든 옷이다. 그 옷을 입고 걸어가는 모델들을 우리는 패션모델이라고 부른다.


 모델은 패션 산업의 중심에서 패션 산업을 발전시켜 온 원동력이다. 그렇다고 그 역사가 오래된 것도 아니다. 유럽에서 태동한 이 모델의 변천과 우리나라의 모델 발전은 많이 닮아 있다. 모델의 변천사를 한번 살펴보면 인류의 역사가 발전한 과정처럼 동서양이 유사하게 흘러왔음을 알 수가 있다. 지구가 둥근 탓일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모델이 되고 싶어 한다. 또한 모델이란 직업 역시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직업의 귀하고 천함이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자신의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투잡으로서 부업도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프리랜서로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거리이기도 하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을 권하면서 교육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이다.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취미 생활은 물론 부업으로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기업에서는 은퇴 예정자들을 연수원에 모아 놓고 재무설계나 건강과 취미 생활은 이렇게 하라고 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외부강사를 불러 가르치고 있는 이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것만이 은퇴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모델 교육과정도 가르치면은 건강과 취미는 물론 수입원 창출까지 다 할 수가 있는 과목이다. 패션모델이 아닌 광고 모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거리이기 때문이다.


 원래 모델은 패션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패션 산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모든 종류의 모델이 이 패션모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패션을 이야기하고 패션의 화려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패션모델을 이야기하면서도 광고 모델의 길도 이야기한다.


 모델이 없던 중세 시대에도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들을 우리는 영화나 자료 등을 통해 많이 볼 수가 있다. 바다 건너 섬나라인 영국의 귀족이나 대륙의 중심인 프랑스의 귀족들이 입은 옷을 보자. 모두 다 비슷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을 우린 알 수가 있다. 이 당시에 모델이 없는 시대에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은 바로 인형들이었다. 인형에 옷을 입혀 각 나라에 있는 외교관들을 통해 패션 정보를 서로 교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형들을 우린 패션인형 즉 'Fashion doll'이라고 부른다. 이 패션 인형은 19세기말인 1896년 뉴욕에서 열린 패션쇼에서도 무려 150개가 넘는 인형이 선을 보이게 된다. 정말 그 활약이 대단했음을 우린 알 수가 있다.


 최초의 모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파리 직물 도매상에서 일을 한 찰스 프레드릭 워스라는 디자이너의 아내다. 바로 마리 베넷이라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어느 날 찰스는 아내를 세워놓고 기쁜 마음으로 옷을 만들고 있었다. 마침 매장에 온 손님이 너무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고선 같은 모양의 옷을 요구하며 주문을 한다. 그렇게 해서 찰스의 가게는 차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점점 많은 사람들의 주문이 쏟아졌고 가게는 크게 발전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그의 아내 마리 베넷을 최초의 패션모델로 인정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 컬렉션이라 불리는 의미도 탄생을 한다. 찰스는 정기적으로 계절에 따라 자신이 디자인 한 의상들을 고객들을 초빙해서 선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옷들을 재단사 아가씨들한테 입혀선 고객들 사이로 걸어 다니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패션쇼였던 것이다. 


 이 컬렉션과 패션쇼가 근대적 의미에서 패션 산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 점점 발전을 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그 당시의 사회는 계급사회이고 귀족과 평민의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던 시대이다. 귀족들에게만 치중되었던 패션이라는 개념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패션잡지 때문이다. 즉 패션잡지가 탄생하고 난 이후부터인 것이다.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모델들이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 그 잡지를 많은 사람들이 사서 보면서 모델들은 바야흐로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침내 1926년 영국에서 '루시 클레이튼'이란 모델 에이전시가 설립을 하게 된다. 모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으로써 이에 부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모델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모델들도 점차 발전하게 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도 유럽과 같이 비슷한 경로를 걷는다. 1956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노라노가 반도호텔에서 패션쇼를 열게 된다. 당시엔 소규모의 패션쇼로 5~6명 정도가 무대에 섰다. 미스코리아나 유명 배우 또는 무용가들이다. 그러다가 그 뒤에 여성지 여원이 탄생하고 잡지에 패션 화보가 실리면서 점점 발전해 나간다. 유명한 여성 모델과 남성 모델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이 점차 국내의 패션 산업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한국모델협회로 까지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모델의 변천을 살펴보면 큰 흐름은 거의 비숫하다. 우리 인간이 탄생을 하여 세상의 흐름 속에 살아오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듯이.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만물은 다 그러하지 않을까. 모델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시간이란 흐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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