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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16. 2023

5화. 치앙마이에 도착하다

 침대 칸은 내 키가 큰 탓인지 다리를 쭉 뻗으니 여유가 없다.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차창밖을 바라본다. 건물들이 없는 탓인지 창 밖은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간혹 간이역에 도착하면 가로등 불빛에 나무들이 환영 인사를 하듯 일렬로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간이역'이란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한 남자가 간이역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영화다.


 삶에 대한 고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들을 가졌을 것이다. 나도 내 인생에서 깊이 고심하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더 깊은 곳까지 보면서 마음을 설레고 있다. 즐거운 행복감을 느끼면서.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좀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삶의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한 소중함이기에.

열차의 덜컹거림 속에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의 여명을 맞이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선 우린 식당으로 간다. 어제 먹다가 남은 도넛들이 있기에 식당에서 커피를 시켜 함께 요기를 한다. 


 치앙마이는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새로운 도시'라는 뜻으로 동서남북 4곳에 성곽이 있고 그 사이로 문(Gate)이 있어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성곽을 중심으로 크게 올드타운과 님만해민, 산띠탐으로 구분된다. 성곽 안쪽이 올드타운으로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우리도 이곳에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우리나라 서울에도 문이 있다. 조선시대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이 완성한 한양도성에 4대 문이 있다. 네 개의 문.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숙정문)이 그것이다.

훗날 다산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외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라." "사대문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진다." 한양도성의 사대문은 사대부들 신분의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로 서울로 외치며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씁쓸함에 잠긴 것도 잠깐 기차가 치앙마이 역에 도착했고, 우린 다시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역 밖으로 나간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든다. 택시 기사, 썽태우 기사, 툭툭이 기사 모두가 몰려들며 떠들어 댄다. 호객 행위가 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들 사이를 헤집고 나는 버스 정류장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정신이 없다. 마침 길가 쪽에 말없이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급히 간다. 보는 순간, 한국인 같은 예감이 들어 한국말로 바로 물어본다. 맞다. 한국 젊은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하늘까지 닿게 탑을 쌓아 올리며 신의 위치에까지 오르려고 한 인간들에게 신은 분노하여 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만들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바벨의 저주'. 그 저주 속에서 나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만나 말이 통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나이 든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자기가 볼트로 호출한 택시에 같은 일행으로 하고 타라고 한다. 일단 자기 숙소까지 가면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는 치앙마이에 두 번째 온다고 한다. 님만해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이번에는 산띠탐에서 한 달을 살려고 오는 길이란다. 님만해민은 발달된 도심이라 좋은데 공항이 옆에 있는 탓에 비행기 소리가 하루종일 들려 너무 피곤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정보도 들으면서 떠드는 사이 숙소 앞에 차가 멈춘다. 그리고 짐을 내리고선 다시 자기 폰에 있는 볼트 앱으로 우리 숙소까지 갈 수 있게 차를 불러준다. 덧붙여 태국에선 그랩보다는 볼트가 요금이 더 싸기에 볼트를 이용하라는 조언까지 잊지 않는다. 우리는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며 자신의 앱으로 결제된 요금을 밧으로 계산하여 돌려준다. 하늘의 도움으로 귀인을 만나 이렇게 편안하게 가다니. 또 한 번 볼트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요즘은 한 달 살기의 열풍이 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외지나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많이 한다. 여기 치앙마이는 한 달 살기의 성지 같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온통 치앙마이 한 달 살기다. 책도 여러 권 있는 걸 봤다. 특히 나이 든 우리 같은 사람보다는 젊은 세대에서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 달 살기는 한 숙소에 머물며 살아야 한다. 살아 보지는 않았지만 돈은 적게 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같이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에겐 한 달 살기는 맞지가 않다. 그래서 숙소도 며칠씩 짧게 일정을 잡으며 옮겨 다니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니 고맙게도 이른 시간인데 체크인을 받아준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씻고선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본다. 밤기차 타고 온다고 피곤했던 몸이 이젠 긴장마저 풀리니 스르르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한 달 살기의 성지인 치앙마이까지 우리는 왔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한 뿌듯함 속에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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