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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16. 2023

6화. 올드 타운의 선데이마켓

 치앙마이의 올드 타운은 올드 시티라고도 많이 불린다. 그러나 그 명칭과 뜻이 비슷함에 편한 대로 부르면 될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슬슬 나선다. 예외 없이 구글맵으로 맛집을 찾아 나선다. 구시가지가 그리 크지 않고 아담하게 느껴지니 걸음걸이도 훨씬 여유롭다. 식사 후에 길을 따라가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러 다닌다. 멀지 않은 곳에 치앙마이 경찰서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경찰서가 앉아 있으니 치안에 대한 문제는 생각을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중요한 소지품은 항상 끈이 달린 손지갑에 넣어 가슴을 가로질러 메고 다닌다. 유비무환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장(葬) 날이란 죽은 사람의 장사를 지내는 장날이 원래 유래된 말이다. 장례일로서 사람을 만나러 찾아갔더니 그 사람이 죽어서 장사를 지내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는 부정적인 의미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場) 날 또한 같은 발음의 장이다. 우리의 재래시장 오일장의 장날이 된다. 시골에서 장이 서는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 이상의 재미가 있다.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다. 물론 여기서도 사람을 만나러 갔더니 장날이라 모두 장에 가는 바람에 못 만나고 그냥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장날이 되어 장에서 사 온 음식으로 푸짐하게 얻어먹고 올 수도 있다. 불운과 행운의 차이는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예기치 않은 우연의 상황에서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오늘 정말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맞이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일요일에만 열리는 올드 타운의 선데이 나이트 마켓이 열릴 줄 누가 알았으랴. 사람들이 부스를 만들고 천막을 치고 물건을 진열하는 그 바쁜 움직임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다. 허겁지겁 긴장의 연속 속에서 보낸다고 날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장날을 좋아한다. 그것도 도심 속에서 열려 있는 시장보다는 옛 시골의 맛이 듬뿍 묻어 있는 시골의 오일장을 더 좋아한다. 2018년 제1회 대회인 소상공인 진흥공단과 소상공인 방송 정보원이 주최하고 (사)한국광고모델에이전시협회에서 주관하는 전통시장 홍보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상을 받고선 전통시장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국내 오일장이 열리는 장날에 배낭을 메고 장터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장날에 갔다 돌아오는 내 배낭 속엔 그곳 특산품만 담겨 있었던 게 아니었다. 배낭을 열어보니 각 장터에서 보고 듣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솟아 나온 무언가가 있었다. 그 깊은 곳에서 불쑥거리며 치솟아 올랐던 크고 작은 깨달음. 그 무게도 제법 무거웠다. 


 배낭을 열고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제일 먼저 지역 특산물이 나온다. 그 지역의 산과 밭의 흙속에서 자라나는 그들만이 지니고 있는 품질이 우수하고 특이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특산물. 우리 개개인한테도 그런 특산물이 있다. 자기만이 갖고 있는 자신만의 장점(merit)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자신만의 특징이다. 수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장터는 옛날의 때 묻은 모습을 지우며 변해왔다. 장사하는 상인들도 역시 변해간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변한다. 이렇게 시장의 변한 모습에서 나는 변화(change)를 읽었고 배움을 얻었다. 변하지 않으면 모두 도태되고 만다는 그 냉혹한 적자생존의 법칙을 두 번째로 꺼낸다.


 신나게 장터를 구경하다가 손으로 뜯은 나물들을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봤다.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왜 울컥할까. 자식과 가정을 살리기 위해 좌판을 벌여 놓고 인고의 세월을 버텨온 할머니의 주름. 그 속에서 난 인내(patience)와 끈기를 다 봤기 때문이다. 배낭 속에선 물건들이 자꾸 나온다. 시골 장터에 가면 엿장수의 호박엿도 국산품이라 마음 놓고 사 먹고, 냉이든 산더덕이든 당연히 국내산이라 믿고 돈을 주고 산다. 강한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신뢰(trust)다. 

물건에 대한 믿음보다 당연하다고 믿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좌판 위의 산나물이나 포대 안에 있는 잡곡에서 배울 필요가 있진 않을까.


 주위가 왁자지껄해진다. 큰 소리 작은 소리가 뒤섞여 구석구석이 시끄럽다. 원래 장터는 그렇다. 그래야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시장이 조용하다면 시장이 아니다. 소리가 끊긴 정적은 장터에선 소용이 없다. 그렇다 우리네 시장은 서로가 소통(communication) 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떠드는 시장의 소리에 신이 난다. 소통 속에서 신이 났고 재미있었으며 살아 있음을 배운다. 

강원도 정선에 오일장이 열리면 정선 아리랑이 시장 안에 울려 퍼진다. 정선의 장터는 민요가 흐르는 민요 장터이다. 물건만 파는 게 아니다. 폐광이 된 지역에서 시장을 일으켜 세운 힘이 바로 문화였고, 그 문화로 얘기를 엮은 스토리(stroy)였음을 똑똑히 보고 배운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이것이 바로 스토리가 아니던가.


 양평의 장터를 찾았던 시간이 마침 점심 때라 우선 요기부터 하려고 먹거리 천막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식탁 위에 해장국 한 그릇을 내놓는다. 선지가 듬뿍 들어간, 갖은양념으로 맛을 낸 뚝배기 해장국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 본 것 같다. 양평의 해장국은 이제 전국에서 똑같은 이름으로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바로 브랜드(brand)의 힘이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그 옛날 조그만 한 지역에서 술을 마신뒤 속 풀려고 먹던 해장국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팔리고 있으니.


 물건들을 다 끄집어낸 배낭을 치우면서 생각한다. 나의 장점을 인내하며 갈고닦아 강점으로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모습으로 신뢰를 주고 소통을 나누며 산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인생의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어 빛나고 있지는 않을까.


올드 타운의 선데이 나이트 마켓은 일요일 오후 5시부터 열린다. 올드 타운을 드나들 수 있는 5개의 성문 중 동쪽에 위치한 문인 타페 게이트가 선데이 마켓의 시작점이다. 이 문은 란다왕국을 세운 망라이 왕이 1296년에 지은 아주 오래된 문이다. 벌써 꼬치구이를 굽는 냄새들이 사방에 퍼져간다. 점점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이기 시작한다. 향기와 모양이 일품인 과일 비누가 보이고 고산족들의 특산품인 향신료들도 있다. 망고나 두리안, 용과 등 열대과일을 말려서 만든 건과일은 수북이 쌓여 있다. 천연 소재를 이용해 만든 독특한 공예품까지. 보는 눈이 즐겁다. 바닥에 쏟아부어 가득한 귀금속 액세서리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고르고 골라서 한 바구니씩 담는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보니 분명 가격은 쌀 것이다. 

장터의 풍경은 파는 물건과 사람들만 차이가 있을 뿐 다 똑같은 장터이다.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깨닫고 마는 것은 모두 각자의 몫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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