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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준 Oct 18. 2023

7화. 더티 커피를 찾아서

 많은 세월이 흘러 아득한 옛날이 되었지만 아직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게 있다. 아침 일찍 아버지께선 잠에서 깨어나시면 꼭 먼저 하시는 일이 있었다.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서는 빈 속에 마시는 일이었다. 집에 계실 때 하루도 쉬지 않고 늘 그렇게 하셨다. 그 당시 외항선에 사무장으로 계셨는데 세계를 다니시다 한국으로 돌아오시면 항상 좋은 커피 원두를 가지고 오신다. 나는 관심이 없어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얘기를 해줬어도 몰랐을 것이다. 어렸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는 분명 기억이 난다. 그것도 거짓말 같은 냄새의 기억이. 방안 가득 커피 향이 퍼지고 나면 그다음엔 그 향은 집안 전체로 퍼져 나간다. 참 그 향이 좋았다. 이효석도 낙엽 태우는 냄새가 갓 볶아낸 커피 냄새라고 하지 않았던가.


 태국의 치앙마이는 커피로써 유명하다. 태국 북부 지역이 커피 생산에 아주 적합하여 품질 좋은 원두를 많이 수확을 한다. 그래서 치앙마이에는 카페가 많고 유명한 커피숍에는 찾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더치커피와 더티 커피는 글과 이름이 거의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더치커피는 차가운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오랜 시간 추출해서 만드는 향이 깊은 커피다. 그러나 더티 커피는 커피 위에 크림이나 우유를 듬뿍 올리고 그 위에 시럽이나 초콜릿을 뿌린 커피를 말한다. 그러나 종류는 다양할 수 있다.  치앙마이에선 더티 커피가 유명하다.


 점심을 조금 늦게 먹었는데 거리에 나오자마자 폰을 보며 열심히 걸어간다. 앞만 보며 계속 걸어가기에 나도 말없이 뒤만 따라간다. 이럴 때는 말을 걸면 길을 찾는데 헷갈릴 수 있기에 조용히 따라만 가야 한다. 나도 많이 익숙해져서 이젠 눈치만 보면 안다.

올드 타운의 거리를 걸어가는 외국인들 손에는 어김없이 폰이 들려 있다. 그들도 폰으로 약도를 보며 길을 찾아다닌다. 고개 숙여 폰 보고 고개 들어 앞을 보고, 다시 고개 숙여 폰을 보고. 여기저기서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며 박자를 맞추는 듯한 사람들이 많다. 폰이 없는 옛날에는 어떻게 다녔을지 궁금해진다.


 또 골목길에서 왔다 갔다 한다. 앞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하기를 여러 번, 결국 부근에 있는 태국 남자에게 묻는다. 그 남자는 아무것도 없는 벽을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자꾸 가리킨다. 쳐다보고 있는 나는 뭔가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간다. 분명 집 담벼락뿐인데 그쪽을 가리키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다. 그제야 아, 하고 손뼉을 치며 깨닫는다. 오늘은 벌써 문을 닫고 영업을 종료했다. 아직 이른 오후 시간인데. 담벼락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가게. 여기가 더티 커피로 유명한 '바트'라는 가게다. 못내 아쉬워 손에 든 책을 찾아보니 정말 똑같다. 책 그림 속엔 가게 안에 의자 몇 개만 있을 뿐이다.


 치앙마이에 오면 더티 커피를 마셔봐야 한다면서 더티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그때부터 다시 긴 행군이 시작될 줄이야. 콘죤 커피숍(konjohn coffee), Addict cafe, khna coffee brewers, AKHA coffee 등 유명하다는 카페를 순회하듯 찾아다니며 커피를 마셔본다. 역시 커피들이 다르고 맛이 좋다.


                                                        치앙마이 더티 커피


 옛날 회사 생활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 당시 최고의 커피는 커피믹스였다. 한 봉지에 커피와 프림 설탕이 다 들어가 있는 그야말로 편리한 커피다. 커피믹스를 하루에 9~10잔씩을 마실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커피믹스는 여전히 있지만 그때는 거의 그 커피만 마셨던 기억이 난다. 


 에티오피아의 목동이 염소가 식물의 열매를 먹고 흥분해서 날뛰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는 커피. 오랫동안 아랍세계 내에서만 맴돌던 커피가 무슬림 순례자들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에 도달하자 커피는 제 세상을 만난 듯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이제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음료이다. 우리도 치앙마이에서 더티 커피와 피콜로 에스프레소 등 향과 맛이 좋은 커피를 주로 마셨다. 커피 중독은 아니지만 머무는 동안 매일 마신다.


 여행은 사람의 오감을 발달시켜 준다. 어디를 가나 보고 듣고 맡고 먹고 만진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 될 수 있다. 여행은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면서 발전시켜 준다. '바트'에서 더티 커피의 맛을 보지 못해 우리는 올드 타운에서 성벽을 따라 게이트를 통과하고 다시 도로 위를 걷고 걸어 님만해민까지 가서 결국 맛을 본다. 그야말로 긴 행군이었다. 구글맵이 그렇게 길을 안내해 주었기 때문이다. 폰에 반드시 심을 갈아 끼운다고 굳게 결심하는 순간이 된다. 결국 님만해민의 마야 쇼핑몰에서 마침내 심을 갈아 끼우고선 나는 내 폰을 넘겨받았다. 더티 커피 한잔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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