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도 못하면서!!!
사람들마다 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난 술이든, 담배든, 약(치료 관련된 마약 진통제, 그냥 마약)이든 절제가 필요가 모든 것은 본인이 통제가 가능한 때를 벗어나는 순간 이후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러 곳이 아파 하루에 먹는 약이 40~50알이 넘고 돌발통이 오는 때에 먹는 마약성 진통제가 따로 있는 나는 사실 통증이 오는 순간마다 약을 더 많이 먹고 현실을 도피하고픈 때가 정말 많이 찾아온다.
그런데 내가 그 유혹이 오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무절제하게 마약진통제를 먹어 댄다면 지금도 한 시간, 두 시간씩 겪는 통증을 어느 날부터는 절대 멈추지 못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될 것임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내가 처음 '갑상선'과 '부정맥'을 앓게 되고 큰 스트레스와 떨어진 면역력으로 '세균성 뇌수막염'이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을 겪게 된 후 마음속에 담아두고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남편과의 불화로 인한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됐다.
그 우울증과 불면증이 점점 심해져 밤마다 잠을 못 이루며 그 무렵에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주(酒)종을 불문하고 하룻밤에 두병씩은 마셔야 그나마 새벽녘이 돼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고 어쩌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날에는 한숨도 잠을 못 자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alcoholic man)가 돼버린 거였다.
나는 누구의 얘기든 항상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언제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막상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하고 보니 내 얘기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차라리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잡생각을 잊을 수도 있고 그 당시 마지막으로 다녔던 지점의 동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견디기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들이던 처음에야 다들 내가 아프다는 소식에 걱정들을 해주며 간혹 연락을 하고 소식을 전했지만 점차 드문드문 오는 연락들에 자세한 얘기를 전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생활에 바쁜 그들에게 언제까지고 내 힘듦만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풀어놓을 곳도, 풀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해 깊은 우울증에 빠져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부정맥에는 절대 금물인 술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마셔대던 어느 날,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재활용을 버리게 됐던 날이 있었다.
재활용 가방 그득히 들어 있는 여러 종류의 술병을 보면서 문득 소름 끼치는 생각이 들었다.(재활용 쓰레기는 항상 남편이 버려줘서 제가 버리는 날이 많지 않았었어요.)
'내가 이렇게 정신을 놓고 살다 보면 또 어떤 일이 생겨 내가 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뇌수막염'도 예상했던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또 다른 일이 생겨 우리 지니가 엄마가 없이 살아야 한다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날 이후로 나는 술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술을 끊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낮에는 지치고 아픈 몸에 누워 지내는 날이 허다했고 밤에는 불면증에 몇 날 며칠이고 한숨도 못 자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잠을 못 자는 날이 이어질수록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더욱 간절하게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미칠듯한 마음과 싸우며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특히 아이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괜찮다.''엄마 괜찮아'를 연발하며 피눈물을 삼키며 살아가게 됐다.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인 남편은 조금 시간이 지났다 하여 한 마디 사과 없이 금세 뻔뻔함을 되찾아 갔다. 항상 퇴근하고 와서는 나는 아파서 먹지도 못하는 밥을 맛있게 처먹고 두 다리 쭉 펴고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침대에서 활개를 치고 코를 골며 처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솟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 그냥 죽여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많았었다.
이런 상황에 내가 술까지 끊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물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이 꼭 필요한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술을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맥주 한잔 이상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술이 내가 원하는 해결책이나 도피처가 될 수는 없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나는 그렇게 나를 다그치며 닦아세우고 딸을 지키고 나를 지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친정 집 식구들은 술이 센 편이었다.
웬만한 술 한, 두병으로는 다들 술에 취한 기미도 안 보일 정도였고 다들 결혼할 무렵이 다가오면서 결혼 상대자가 생기면 앞으로 식구가 될 사람의 술버릇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 삼 남매가 각자 좋아하는 술을 한 박스씩 준비해 놓고 맛있는 안주를 함께 만들어 밤을 새울 각오를 하고 함께 모여 술자리를 만들었었다.
우리가 결혼할 무렵 남편과 술자리를 만들었을 때 남편은 맥주 한 캔을 채 마시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시댁 쪽은 선천적으로 간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장점? 들을 타고나셨다.
시아버지는 어떤 모임에 나가셨다가 소주 한잔 반을 드시고는 그날 밤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그 정도로 술과는 인연이 없는 집안이었다.
그나마 제부나, 새언니가 조금 기분을 맞출 정도였고 남편은 전혀 못 마시는 축에 속해 '영업'을 할 때 술을 마시기 전에 먹어야 할 약과 숙취로 고생할걸 대비해 항상 약을 준비해 놓아야 했다.
그 당시의 남편의 거래처 접대? 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골프가 그 자리를 훌륭하게 대체하고 있지만 그때에는 준개인 병원마다 다른 회식에 맞춰 찾아가 회식 대금을 대신 낸다던지, 야유회나 세미나를 핑계로 모여 말술들을 마시고는 했다.
술을 전혀 못하던 남편도 점점 술자리가 늘어 감에 따라 술 마시는 스킬? 도 늘어갔고 어느샌가 남편이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남편을 마시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다.
원체 노는 것을 좋아해 친구들 모임 종류도 많았던 남편은 술을 많이 못 마시는 대신에 술에 취해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심지어는 본인 회사 회식 때 노래방에서 다른 회사 방으로 들어가 3차, 4차까지 술을 마시고 온 적도 있었습니다. 밉다 밉다 하니 처맞을 짓만 골라서 하고 다녔네요!!!) 한 번 술에 취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잠이 들어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이 술 마시던 동네를 뒤져서 남의 대문 옆에 자고 있는 남편을 발견해 집으로 함께 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날은 꼭 주머니의 돈이 한 푼도 안 남도록 꼭지가 돌게 술을 먹고 다들 몰려와서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대리비와 사우나비, 아침 밥값까지 주차장 밑으로 가지고 내려가 기다렸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달래도 보고 하소연도 해보고 짜증을 내봐도 절대 달라지지 않던 남편의 술버릇을 단번에 고치는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