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다 밉다 하니 미운 짓만 한 거니?
내가 갑상선을 앓기 시작한 후로 평소에 조금씩 부실했던 부분들이 크게 탈이 나며 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은행에 근무하면서 오른쪽 날개 뼈 쪽에 견갑거근 점액낭염이라는 병이 걸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모바일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이 상용화돼있지 않아 모든 거래가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은행원들이 단말기를 사용하는 빈도수가 훨씬 많았을 때이고 내가 근무했던 은행은 그 당시 청약통장이 유일하게 있는 손님이 많기로 악명이 높았던 ♡♡은행이었기 때문 이기도 했다.
그때 치료했던 병이 목디스크로 발전해 5번과 6번 경추 사이의 디스크가 탈출해 오른팔이 심하게 저려 똑바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앉아 있으면 팔이 저리고 손 끝까지 전기가 오는 것 같아 너무 힘들었어요. 항상 목부터 팔 전체를 파스로 도배를 하고 다녔어요.)
양쪽 어깨 사이의 뭉친 근육이 너무 아파 통점에 맞는 주사를 맞기도 했는데 얼마나 몸에 힘을 주며 반듯하게 살아내려 발버둥 쳤었는지... 어느 때는 굳은 근육 때문에 바늘이 휘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또 어느 땐 들어가려는 바늘과 밀어내려는 근육 사이의 힘 겨루기로 내 귓가에 주삿바늘이 어깨의 근육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들어가는 '뻐버벅' 하는 소리에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 아래쪽으로 척추관 협착증이 생겨 목 디스크 시술로 신경차단술을 받고 척추관 협착증 진단을 받고 오던 날은 너무 억장이 무너져 병원을 나서며 울기 시작해 누가 쳐다보든지 말든지 청담역부터 집까지 큰소리로 울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힘들고 견디기 괴로운 날들이었다.
남편은 술이 엄청 약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취해 잠이 들었고 그나마 소주는 소주잔 두 잔 정도면 보통의 일반 사람들이 두 병 정도 마신 것처럼 취해서 얼굴이 빨갛다 못해 온몸이 불타오르듯 빨갛게 변해버려서 오랜 시간이 흘러야 본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런데도 회식을 하거나 모임이 있을 때는 자제를 하지 못하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양 이상을 마셨고 들어 온다고 약속했던 시간을 지키는 법이 절대 없이 3차, 4차, 5차.... 그렇게 시간은 12시를 넘기고 새벽 1시를 넘기고 3시를 넘기고 동틀 녘이 돼야 돌아와 사우나에서 씻고 출근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건 퇴근이 아닌 외박이었다. 감히 외박!
처음엔 좋은 말로. 부드럽게. 알아듣기 쉽게. 달래듯 얘기를 했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는 행태에 나도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과 사이에 생긴 벽은 쉽게 허물수 없도록 더욱더 견고해져만 갔다.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들어서기도 전에 남편은 이미 너무 많은 실수들을 반복해서 저질렀고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되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소리가 튕겨져 나오는 벽이 아니라 모든 걸 흡수하는 스펀지 같았다.
무엇을 제안하고 얘기하고 설득해도 그냥 스며들고 마는 스펀지.
그리고 어느새 보면 내가 했던 노력이나 말들은 흔적도 없이 말라있었다.
노력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단순히 늦게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 일찍 들어온다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집안에서 해결했겠지만 10시나 11시쯤 술이 꼭지가 돌도록 마시고 들어와 화단 앞에 신발을 곱게 벗어 놓고 자는 남편을 제부가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생기면서 동생 내외에게도 남편의 고약한 술버릇이 알려져 버렸다.
동생 내외의 입단속을 시키고 남편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받았지만 우리의 이스방이 누군가!!!
자신의 입장에서 잔소리라 생각되는 얘기는 모두 일방통행으로 흘려버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르고 보는 이스방!
나중에 본인의 잘못임이 밝혀져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아 가차 없이 처단당하고야 마는 이스방!!
그리고 반드시 내게 크나 큰 마음의 상처와 몸의 대미지를 만들어 주는 우리의 이스방이 아니었나!!!
철석같이 달라지겠다 약속했던 남편은 또 한 가지 사건을 터트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