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살 난 자존감을 다시 채워 주신 그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by 강나루

3부 본 예배 시온 찬양대

무슨 용기로 성가대를 하겠다고 자원을 했을까?


처음엔 그저 조용히 교회를 다니며 내가 눈물 흘렸던 이유나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내게 위로가 시급하게 필요하기도 했었다.

남편이 우리 결혼 생활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후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입을 혼자서 속으로 삭이고 살았. 그 때문에 정신과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우울증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건 병원에 가보지 않아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상태였다.

정신병원을 가지 않고서 망가져가는 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교회였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전혀 생각 못했던 지인들이 내게 교회를 얘기하고 하나님을 얘기하며 든 것을, 아픈 것을 혼자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기 시작했다.


난 이단들이 벌이는 안 좋은 이미지 때문에 개신교 전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말했었다.

난 '예수쟁이' 하고는 안 노니까 알아서들 처신하세요.

그러던 내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으니 그것 만으로도 주변 지인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다.

심지어 은행을 다닐 때부터 친한(지금까지 30년 지기 친구입니다. 저보다 10살 많은 언니예요.) 언니는 내가 교회를 다니자 연락이 뜸 했던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생겼던 게 분명하다며, 자신이 너무 신경 써 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며 교회를 함께 등록해 나를 살뜰히 챙겨 주기 시작했다.


또 한편으론 교회에 처음 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러 집사님들과 권사님들께서 과하게 친절히 대해 주시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원래 예배당 앞에서 안내하시는 분들은 저렇게 똑같은 얼굴 모양으로 웃도록 연습 하시나?' 하는 생각을 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화장실에서 새로 오신 성도분께 인사를 하고 손을 닦으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울 속에 내가 예전의 나를 반겨 주시던 집사님과 권사님들처럼,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반달이 되고 입은 웃음을 함빡 머금고 교정 하지 않아 덧니가 짝 보이는 이를 한껏 드러내며 온 얼굴의 근육을 모두 사용해 활짝 웃고 있었다.

그때는 이런 모든 일들이 그냥 우연 같기만 하고, 우습기만 한 일처럼 느껴졌지만 사소한 것 모든 것 하나하나 하나님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교회로 갈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날 부르셨고, 낯가림이 심한 날 위해 오랜 벗을 함께 있도록 보내 주셨고, 언제나 친절하게 같은 모습으로 웃으시는 집사님과 권사님들의 성령 충만하신 그분들 본래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키신 것이었다.

거기에 동화된 나도 어느샌가 그분들과 같은 웃음을 웃으며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게 치명적 결함이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온 성가대 대원 분들은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셨다.

첫인사에 솔직히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또 설령 악보를 본다 해도 청음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정적으로 노래를 못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얘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지휘자 집사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저 다들 대환영해주셨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들은 지휘자는 나를 '알토'파트에 배치시켜 주었다.


엄청 떨면서 솔직하게 내 치명적 결함까지 털어놓으며 걱정했던 성가대 입단은 생각보다 싱겁게 지나갔지만 연습과 실전은 그렇지 않았다. 더 정신없고 떨리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기도 했다.


처음 두세 주 정도의 연습기간 동안에는 악보 보랴 지휘자 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곧 요령이 생겼고 옆에 앉은 집사님께서 바이올린을 전공하신 분이셨는데 그분이 거의 제 음에 정확하게 맞는 소리를 내시는걸 잘 기억했다가 무작정 악보와 찬양을 외우기 시작했다.

집에서도 밤이고 낮이고 알토파트 부분을 종일 부르고 다녀 지니가 나보다 먼저 찬양을 외우는 일도 빈번했다.

그런 식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6개월 정도 후에는 알토의 웬만한 음은 악보를 보고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또 성가대원 분들이 좋은 신 분들이 너무 많아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는데 큰 도움을 많이 주셨다.

시간이 가고 실력이 나아질수록 찬양의 내용에 빠져들 수 있게 되었고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이 발병하여 교회에 출석이 어려워지기 전까지 성가대와 찬양은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망가지고 상처 난 마음은 어느새 충만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가대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그리고 내게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일들이 나를 하나님의 인싸(insider)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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