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날들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우리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자마자 이사를 와서 이곳에서 내 아이를 낳고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그 장소 바로 그곳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집에서 교회까지의 거리는 빠른 걸음으로 3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6분 안쪽이었다.
우리 집 현관 앞 복도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교회 건물 한쪽면과 첨탑, 그리고 그 위에 십자가까지 모두 훤히 내려다 보였다.
내가 36년을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은 그렇게 조용히 내 옆에서, 내가 자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과 함께 당신 앞에 나아가 당신의 존재를 깨닫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교회를 나갈 무렵쯤이 내가 남편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갑상선 항진증이 생긴 지 햇수로 7년째 되던 때였다.
그 무렵엔 자궁에 12cm 크기의 물혹도 함께 발견되어 항상 조심하며 추적 관찰을 하고 있었다.
내게 처음 갑상선과 물혹의 존재를 알려주시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남편 거래처 병원의 원장 선생님께서는 물혹이 언제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진단서를 지참하고 다니다 위급한 순간에 바로 응급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원장 선생님이 발행해 준 진단서는 한동안 내 지갑 안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오른쪽 겨드랑이 임파선 쪽에는 14개월이 넘도록 6개 정도의 작은 혹이 만져지며 줄어들지 않아 유방암 검사를 앞두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근심이 늘어가는 날들이었다.
예전에는 구역예배라고 불리던 소규모의 예배를 요즘은 cell 예배라고 하는데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우리 셀의 셀 리더 이셨던 권사님께서 담임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아 보자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제대로, 조금이라도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정도로 아픈 몸으로 집에서 쉬면서 우울증과 외로움에 지쳐 사람이 고팠던 마음이 더 컸었다. 그리고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마음에 쉽게 두지 않는 낯가림으로 담임 목사님에 대해 어려운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태껏 내가 보고 알고 있던 안수 기도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어 무서운 생각부터 들기 시작했다.
권사님. 그런데 그 안수 기도라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TV 같은 데서 보면 좀 무서운 게 많이 나와서 좀 걱정이 돼서요... 언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요?
걱정이 앞선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보고 말았고 권사님께선 편안한 얼굴로 웃으시며 말씀 하셨다.
아이고! 걱정 안 해도 돼. 미리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증상이랑 병명이랑 자세히 적어서 나한테 줘요.
3부 예배 끝나고 잠깐 기도만 하는 거야. TV에 나오는 그런 이상한 짓 안 해. 호호호
우리 목사님 안수기도받고 낫는 분이 종종 계시고 자기는 새 신자라 은혜가 많을 때야.
그리고 자기가 좀 예쁘게 잘해야 말이지. 뭐든 열심히 하잖아. 잘 되길 기도 하자. 좋은 결과 있을 것 같아.
주님을 믿어 보자고.
권사님의 말씀은 너무도 감사했지만 솔직히 난 믿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기도 한 번에 나을 병이었다면 그렇게 몇 년씩 아프지도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았겠지
다만, 나를 위해 애써주고 기도해 주고 마음을 모아준다는 그 정성이 고마웠다.
그 다정한 마음이 나를 절망에서 건지고 있었다.
그 주 3부 예배가 끝난 후 나는 성가대 연습실로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권사님과 함께 교회 사무실 옆의 회의실로 잠시 들리게 됐다.
그 자리엔 벌써 나이가 좀 있으신 여전도사님과 안면은 있지만 성함은 모르는 권사님 두 분, 장로님 한분,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께서 계셨고 어려운 자리에 마음은 어쩔 줄을 몰랐지만 차분히, 얼굴엔 예쁜 미소를 장착하고 인사를 드렸다.
집사님, 얘기 잘 전해 듣고 집사람과 기도 많이 했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고... 제가 보니 예배마다 오시는 것 같은데 혹여 많이 힘드시진 않으세요? 오늘 함께 안수기도 하시고 기도 할 때마다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고 기도하세요. 반드시 믿음대로 이뤄지실 겁니다.
잠시 후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후에 내가 아픈 부위에 사모님의 손을 먼저 올리시고, 그 위에 목사님의 손을 얹고 다른 분들은 내 팔이나 머리, 등 같은 곳에 손을 얹은 신 후 통성으로 기도를 하셨다.
난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 후 나를 위해 그 자리에 모여 함께 기도 해 주시는 분들을 위하여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촌스럽고 소박하지만 열의를 다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기도 해주신 교회의 중보 기도단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위하여 자신들의 마음을 나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구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기도 하는 일뿐이었다. 그 자리엔 서로를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하는 우리와, 그 중보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고 확신할 만큼 성스럽고 진지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던 안수기도는 그렇게 무심한 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끝이 났다.
보름쯤 지나 정기 검진 후 아무런 변화 없이 모든 병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들어와 계신 것을 느끼고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삭막한 세상에 모르는 남을 위하여 귀중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다른 이의 안녕과 무사 평안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일인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귀함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또 좋은 것은 좋아서, 맛있는 것은 맛있어서, 예쁜 것은 예뻐서, 가장 좋은 순간에 가장 좋은 것들을 나누며 살기 원하는 내 삶의 모토와 삶의 방식이 닮아있는 그리스도 인의 삶은 나를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안수 기도를 한지 다시 한 달 뒤 정기 검진 날이 되었을 때였다.
내가 겪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않았을 입을 다물수 없도록 놀라운 일이 생겼다.
7년이 되도록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11알을 유지하던 갑상선 약을 6알로 줄일 수 있게 수치가 떨어졌다.
그 후 8개월 동안 점점 좋아진 수치는 반알을 마지막으로 갑상선 항진증은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안수기도 후 첫 번째 정기 검진에선 그대로였던 물혹이 두 번째 정기검진 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없어져 버렸다.
진단서를 써주시며 일 년 가까이 추적 진료를 봐주시던 원장 선생님조차 놀라서 여러 번 다시 검사를 해야 했었다. 만약 터졌다면 응급수술을 받았어야 했던 혹이라고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따를 의술은 없다며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너스레를 떠셨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임파선 쪽에 자리 잡아 유방암 검사를 서두르게 했던 혹은 검사 일정 2주를 앞두고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일이 내게 일어난 일이지만 나 스스로가 납득이 안되고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겪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이 있으시다고?
내게 생긴 일들은 교회 안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고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원래 새 신자에게는 은혜가 충만한 법이야! 자기 진짜 좋겠다. 자긴 좀 더 특별한 것 같아.
새 신자에게 은혜가 많다 해도 집사님처럼 다 잘 풀리는 건 처음 봐. 나하고 차 한잔 해요.
집사님은 특별한 사람 인가 봐. 못하는 게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부럽다!!
와우. 어떻게 하면 집사님처럼 할 수 있어요? 못하는 게 없어요. 정말 대단해요. 특별해요.
정말 나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이때만큼 내가 특별한 사람이란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제 믿음이 어느 누구보다 대단할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니었나 훗날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날 지키고 보호하고 계신다고 굳게 믿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자의든 타의든 눈에 띄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내게 좋은 기회도 많이 찾아오게 됐다. 찬양을 미치도록 사랑하며 내가 주님께 보답할 길은 찬양뿐이라 생각하고 살았던 내게 새벽 찬양단과 아르엘 중창단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지만 마음 한편엔 너무 빨리, 많이 주어지는 행복에 마음속에 불안이 스미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불안이란 놈을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서랍장에 넣어 잠가 버리고 말았다.
이젠 내게 행복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길 바랐고 또 한동안은 실제로 행복한 순간만이 내 인생에 남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남편이 저지른 어리석은 실수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우울과 불행으로부터 찰나의 순간에 밝은 빛으로 구조되어 나온 것만 같았다.
드디어 내가 내 인생의 참 주인이 된 것 같았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의 은혜를 모르는 체 오만불손하고 ego만 강한 한심하고 모자란 인간이었던 나였다. 그런 나였어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 주시며 받아 안아 주시는 주님의 귀한 은혜를 입게 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교회 생활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