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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17. 2021

대리 진료

도리(道理)-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반드시 행하여야 할 바른길.

Episode.1


"엄마, 엄마? 일어날 수 있겠어? 지금 벌써 알람 세 번째 울렸는데 못 일어나는 거 같아서... 나 씻고 나올 때까지 더 누워 있을래? 어제도 오늘 아침 일찍 잤구나. 내가 씻고 나와서 깨워줄게"


잠결에 어렴풋이 들리는 딸의 말소리를 다 알아듣진 못했다. 게다가 내손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움직여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들을 언제 껐는지도 모르게 잘도 꺼다. 심지어 들었 기억조차 는 세 가지의 다양한 알람들. 제일 황당한 건 그때 당시 아무리 침대 여기저기를 더듬어대도 휴대전화를 못 찾겠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딸의 말대로 심한 불면증 탓에 힘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붙일 수 있었던 나는 지금 어떻게 해도 쏟아지는 피로와 두통, 수면제의 발현(졸피뎀 서방정 섭취)등을 이겨 낼 재간이 없어 결국엔 다시 잠깐 눈을 붙여야겠다 생각했고 눈을 떴을 땐 이미 2시간이 넘게 지나가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딸이 나를 다시 깨우며


"엄마? 힘들지! 어제도 못 잔 것 같고... 병원 못 갈 거 같아. 내가 그냥 대진하고 올게. 오늘 특별히 시술 있는 과 없으니까. 그리고 신경과는 두통 보톡스 날짜 바꿔 달라고 말씀드릴게."

"아니야. 엄마 일어날 수 있어. 마지막 알람 울리기 전까지만 잠깐 기다려줘.(이미 마지막 알람 한참 전에 울린 게 함정ㅠㅠ) 어제 약 먹었는데도 잠들기가 어려웠어. 몸이 내내 불편하고. 엄마 꼭 병원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혼자 가지 말고. 알았지?"

"알겠어. 혼자 안 갈게. 다음번 알람 울리기 전에 잠깐이라도 얼른 졸아. 밤에 많이 아프면 깨우라니까! 혼자 참고 버티니까 힘들잖아. 아무튼 잠깐이라도 얼른 쉬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난 이렇게 나눈 얘기는 기억을 하지 못했고 딸은 그렇게 혼자 대리진료를 가야 했다.


Episode.2


병원으로 출발하기 2~3시간 전쯤.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비오기 전전날 이거나 비오기 전날, 아님 비 오는 날.

샤워기에서 찬물이 나오는 것을 피해 잠시 서 있다가 이제쯤 괜찮겠다 하고 다가섰는데 채 뜨거워지지 않은 물을 뒤집어썼을 때. 아님 샤워까지 무사히 마쳤는데 냉장고에 다가가 아직도 무심결에 오른손을 먼저 집어넣을 때.

밤새 몸이 아파 잠을 못 잤을 때. 두통이 심할 때. 매일 제자리에 있는 드레스룸 모퉁이에 팔을 부딪을 때. 식탁 의자에 발가락을 부딪때. 그냥 이유 없이 통증이 생겼을 때....

유는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엄마~~. 일어났어? 오늘은 병원 갈 수 있을 것 같아?"


하며 기대에 찬 모습으로 들어오다가 식은땀과 눈물이 범벅인 채로 입에는 보호대를 악물고 잇새로 신음소리를 삼켜가며 몇 번째 인지 모르는 통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세상에... 아프면 깨우라니까! 어떻게 혼자 참고 있었어? 콩이야. 왜 누나 안 부르러 왔어!!"

"낮에도 시달리고 밤에도 시달리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 한 사람이라도 쉬어야지. 다 같이 힘들어 죽어? 그리고 콩이가 엄마가 아픈데 불안해서 어떻게 움직여. 못 가지.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어."


이럴 땐 그냥 딸은 말없이 대리 진료를 가야 고 내 통증이 너무 심하거나 통제가 안될 때는(응급실에 가야 하는 일이 간혹 생길 때가 있습니다.) 병원에 양해를 구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급종합병원(제3차 의료 급여 기관) '당일 진료 변경'에 도전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다.





같은 병으로 오래 한 병원을 다니다 보면, 또 희귀한 난치 질환을 두 가지나 앓으며 여러 가지 합병증과 기타 등등의 병을 앓게 되어 다녀야 하는 진료과가 늘어나게 되는 나 같은 경우에는 환자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보호자가 *대진(대리 진료)을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가 있다.

*대리 진료
1)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2) ① 환자 거동이 현저히 곤란하고
      ② 같은 질환에 대해 계속 진료를 받아왔으며
      ③ 오랜 기간 동일한 처방이 이루어진 경우
(사회적 거동이 곤란한 자 포함 -교정시설 수용자, 정신질환자, 치매 노인 등)


소화기 내과나 정신과를 제외하고는 모두 혈액 검사나 시술 등이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모든 진료를 내가 본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진료가 있기 3~4일 전부터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반드시 출발하기 전에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일어나 난 그저 내 몸만 챙기면 된다.

그저 이 몸뚱이 하나만!!!!


나머지 모든 준비!

병원에서 탈 휠체어(병원 내 이동 간격이 넓고 검사나 시술 후엔 힘들어해서 사감 선생님 같은  보호자인 딸이 병원 외출엔 걷는 걸 절대 반대합니다.)


비상시에 먹을 (마약) 진통제, 때에 따라먹을 점심 약 내지는 저녁 약, 신경 안정제(불안증), 두통약, 근육통 약, 구토 방지제... 그리고 기타 등등 나머지 약과 얼음물이 가득 들어 있는 텀블러 까지.

이 모든 건 딸이 챙기고 준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병원으로 향한다.

*내가 일어나서 준비를 마쳤을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며칠 전부터 컨디션을 조절하고 약을 잘 챙겨 먹고 변덕스러운 '불면증'의 비위를 잘 맞춰 놓아도 장 큰 복병인 '날씨'(비오기 이틀 전부터 비 오는 날까지)'돌발통'의 변수를 피해 갈 순 없다.


그때엔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몰려와도 한여름 삼복더위 아스팔트에 녹아 달라붙은 엿가락 마냥 침대에 '쩍' 하고 달라붙어 정말 아무리 이를 악물고 몸부림쳐도 죽어도 못 일어날 만큼 몸이 아프다. 아니! 그냥 단순히 아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런 날은 내내 누워 통증 속을 헤매던지, 아니면 준비할 엄두는 내지 못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에 일어났다 누웠다 만을 반복하던지 그것도 아니면 딸에게 의사에게 물어봤으면 하는 것을 알려준다던지 그런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대진을 보내게 된다.(간혹 대진 시 통화를 하기도 합니다.)


엄마에게서 언제쯤 에나 자유롭게 벗어날 수 있게 될 수 있을는지, 어쩌지 못해 딸을 대진을 보내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 한가득이다.




세상에 어디든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고 아프신 분들은 한 번쯤은 느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나도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내 의지나 생각 만으로 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0.00001%만 있었어도 지금 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였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복 중의 하나인 인복(人福) 덕분에 내 병을 고치려 만난 선생님들 중엔 인품이 좋으신 분들이 대부분 이시다.

워낙 통증에 예민한 병을 많이 앓고 있는 데다가 먹는 약 자체도 대부분 중독성이 강하고 기분을 많이 좌지우지하는 경향이 많아 이 병에 대해 진단을 받고 얘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을 때 우리 세 식구가 모인 자리에서   가지 약속을 했었다.(우울증과 불안증도 한몫했고요.)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서 짜증을 내지 않도록 노력할 거야. 그런데 나도 사람이니까 너무 아프면 짜증도 나고 신경질도 내겠지. 그럴 땐 미리 양해를 구할 테니까 그럴 때만 좀 조심해서 대해주면 돼. 울고 소리 지르고 해도 너무 휘둘리지 마. 아플 때 아니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서로 조금씩만 조심하고 배려해주면 병 때문에 싸울 일 없을 테니까 잘해보자!


그리곤 식구들 사이에선 내 병으로 인해 트러블이 크게 생겼던 일은 다섯 손가락도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가족들 한테도 이럴진대 바깥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겐 더욱 밝게 보이려 애썼고 병원에서 만나는 각 과의 담당 교수님이나 밑에서 공부하시는 전공의 선생님들, 시술을 도와주시는 외래 간호사 선님들 그리고 입원실의 간호사 선생님들 에게도 항상 감사와 고마움을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나를 치료해 주시는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단순히 돈이나 직업윤리를 떠나 진심으로 환자에게 자신이 무엇이든 더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으려 애쓰며 환자의 치유에 힘을 쓰고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무엇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생하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나를 치료해 주는 분들이 내 병의 힘듬을 알고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든든함이고 치유의 힘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사 선생님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매일 환자를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 인지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인 나도 많은 비용을 내고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특진비를 지불하고 있다. 교수님의 기분을 맞춰드릴 만큼 내가 편하고 만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역류성 식도염에 마약 진통제 부작용으로 한 위염과 잦은 위경련, 그리고 변비가 생겼다. 마약 진통제를 먹을 때마다 심해지는 위경련에 매번 응급실을 방문할 수가 없어(구급차를 타면 덜컹거리는 반동 때문에 crps통증이 유발됐습니다.) 집에서 가라 앉힐 수 있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얘기했었다. 소화기 내과 담당 교수는 내게 짜증을 벌컥 내며


"그럼 마약 진통제를 안 먹으면 되겠네요! 그걸 안 먹으면 되잖아요? 의사는 난데 무슨 약을 환자가 처방하라 마라 합니까? 마약 진통제를 먹지 마세요!!!"

"교수님. 죄송한데.... 저 CRPS 환잔데요?

옥시코돈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데.... 네. 그냥 죽죠 뭐.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약 처방하지 마세요."


내 얘기를 들으며 짜증스럽게 컴퓨터의 스크롤을 내리던 교수는 이 일이 생기기 1년 전

(2019.2.13)쯤에서 스크롤을 멈추더니 갑자기 안색을 바꿨다.


"아니, 마약 진통제를 아주 먹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원래 위가 약하니까 조금 줄여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부스코판' 처방해 드릴 건데 이게 입마름이 조금 있으니까 적당히 드시고 물을 많이 드세요. 통증도 관리 잘하시고요.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이 날 이렇게 한 발 물러섰던 이 교수님은 딸이 대리 진료를 가도 남편이 대리 진료를 가도 꼭 언짢은 마음이 되어 돌아오게 만들었다.


사람에겐 도리( 道理-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라는 것이 있다.

너무 지나치게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고 꼰대같이 외치지는 않겠다. 다만 자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만 충분히 해낸 다면 서로 간에 마음이 상하거나 언짢음이 남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게 되지 않을까.


그저 자기 몫만 하고 살기도 벅찬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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