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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Oct 12. 2021

역경(逆境)에 짓눌려 갔다.

어둠 속으로

딸은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

왼쪽 눈의 시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안과 쪽에서도 진료와 검사가 진행됐지만 혹시나 싶어 받아 두었던 진료 의뢰서 덕분에 뇌신경과 쪽에서도 빠르게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아이를 입원시킬 때 죽어도 내가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실에 입원을 했다.

보호자 침대에 들러붙어 눈 한번 제대로 뜰 수 없고 몸 한 번을 제대로 추스를 수 없어 오히려 딸에게 짐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아이 혼자 입원을 하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게 할 수는 없었다.

남편이 있다 해도 남편은 저녁 늦게나 병원에 들를 수 있었기 때문에 난 아무리 아파도 그때만큼은 엄마여야 했다.


뇌 MRI를 찍고 유발전위 검사를 했다.

그리고 허리에 요추 천자를 하여 뇌 척수액을 검사했다. 뇌 척수액을 뽑을 땐 병실에서 검사를 진했는데 죽은 듯 누워만 있던 내가 팔을 뻗어 손을 잡아 주었다고 딸이 내게 말해 주었다.

딸의 눈은 '시신경염'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우선은 스테로이드 치료로 력을 돌릴 수 있었다. 검사 결과는 퇴원 5일 후 뇌신경과 외래에서 듣기로 했다.




이때의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억하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나에 또는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면.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을 알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 많은 불행과 시련들에 침잠되어 나를 망치고 자식에게까지 병이 생기는 일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찾은 요즈음에서야 든 생각이었다. 돌이켜 봐야,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 번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못내 안타깝고 슬프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생의 바닥끝까지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눈이 실명될 수도 있다는 얘기는 친정 쪽으로도 전해졌다. 입원해 있던 기간 동안 내게 등을 돌렸던 가족들은 햇수로 2년, 기간으로는 1년 반이 되던 때에 처음으로 다시 얼굴을 보이며 아이의 입원실로 찾아왔다.

만신창이였던 내 몸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심각한 병일지도 모르는 자식을 두고 기절을 밥 먹듯 해대는 내게 친정 엄마가 처음 건넨 말은 '아버지께 죄송하다'라고 말씀드리라는 것이었다.

친정 부모님 두 분 다 처음에 화를 내시던 시기가 지나고 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더 이상 연락을 드리지 않자 용서한다는 말씀을 안 하셨던 거였다. 내가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부분이다. 내가 아픈 자식을 둔 엄마이기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엄마였다.

오빠라는 인간은 딸을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그렇게 힘들면 삼촌한테 전화해서 힘들다고 얘기라도 하지'다. 딸은 듣고도 모른 척을 했다. 제일 먼저 우리의 연락을 차단한 게 오빠였다.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그런 순간에도 자기 면피가 우선인 인간이었다.

그나마 여동생은 나하고는 연락을 끊었지만 아이에게 병이 생긴 후론 아이에게는 신경고 있다. 동생이 딸에게 신경 쓰는 이유가 자신의 면피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인연을 끊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어진 인연까지 끊어낼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건 딸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로 부모님과는 가뭄에 콩 나듯 통화만 하고 있습니다.)




퇴원하고 5일째 되던 날, 딸은 어떻게든 나를 떼어놓고 검사 결과를 들으가려했다.  

딸의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더욱 잦아진 실신과 두통, 구토, CRPS통증으로 폐인처럼 변해가는 엄마를 보는 것이 자신에게 떨어질 어떤 병명보다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딸 혼자 사지(死地)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결과를 들으러 들어간 진료실에서 담당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 가슴을 찢어발겼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게 뇌 MRI사진입니다.

여기 가운데 중심으로 옆에 하얗게 퍼져있는 반점 보이시죠. 이게 병변이에요. 이 병은 MS(다발성 경화증)라고 합니다. 증상으론 초기 정도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병변이 많이 번져 있습니다. 중기 정도로 진행된 상태네요. 뇌에 병변이 한번 생기면 없어지진 않습니다.

진행만 늦출 수 있습니다. 증상으론 시신경에 염증이 생겨 실명하게 되거나 팔, 다리가 마비되거나, 마지막엔 전신마비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진행이 좀 된 상태라서 치료제를 어떤 걸로 선택할지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완치 방법은 없지만 약 만 잘 맞으면 진행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으니 너무 낙담하진 마시고 치료해 봅시다."


의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뜨거운 덩어리 같은 울음과 함께 힘겹게 삼켜야 했다. 일그러지는 얼굴도 억지로 잡아 펴는 것처럼 안간힘을 써 붙잡아야  했다. 간신히 눈을 돌려 바라본 딸의 얼굴은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눈물이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손을 뻗어 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아이는 소리 내 울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진료를 보고 나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딸은 고개를 숙이고 내 휠체어를 밀어 주차장에 도착했고 우리는 한참 동안 차 안에 앉아 출발하지 못한 채 주차장에 머물러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딸에게 말을 건넸다.


"니야. 걱정하지 . 너는 엄마 병이랑 달라.

지금은 놀라고 정신없어서 힘들겠지만 엄마가 항상 곁에 있을 거야.  벌써 오래전에 알려진 병이고  연구도 많이 된 병이고. 절대 너 혼자 앓게 두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연구 많이 진행돼서 완치까진 안 돼도 진행을 멈추는 약은 금방 개발될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꼭 나을 거라고. 엄마가 너한테  한 약속 한 번도 안 지킨 적 없잖아. 그렇지? 힘내자...!!"


지니는 대답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딸을 안으며 나도 같이 울었다.

우리는 계속, 계속 울었다. 온몸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치병을 가진 자식이 불치병을 가진 엄마를 간병하게 되어버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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