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수천번, 수만 번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숨죽여 울었다. 어미의 더러운 팔자에 꼬여 안타깝고 아까운 내 새끼마저 잡아먹는가 싶어 한동안 숨도 크게 한 번 쉴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다 내 잘못이었다. 병이 난 것도, 남편과 결혼한 것도, 더 참아내지 못한 것도, 아니 내가 태어난 것,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만큼 딸의 희귀 난치 질환 판정은 내게 깊은 슬픔이었다.
딸이 얼굴과 팔, 다리의 마비 증세를 호소했을 때 나는 딸을 바로 남편 거래처병원으로 보냈다. 내 베체트병을 처음으로 진단해 준 가족 주치의 같은 선생님 이셨다.
딸을 진찰하신 선생님께서는 신경 안정제를 처방해 주시면서 진료의뢰서를 발급해 줄 테니 3차 의료기관으로 가서 뇌 MRI를 찍어보라는 말을 했다고 남편이 내게 전했다. 그리고 다른 특별한 증상이 없다면 충분히 쉬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놀랐을 때와는 다르게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며칠간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만으로도 증세가 나아졌기 때문에 방심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워낙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간마다 달라질 정도로 up&down 이 심했던 때라 딸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자 별일이 아닐 거라 믿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딸의 증세가 호전되자 뇌 MRI 검사를 해보라고 했던 선생님의 말은 까맣게 잊히고 있었다.그랬다. 그때의 나는 내가 치를 떨며 경멸했던 내 가족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힘드니, 내가 너무 아프니 다른 일은 조금 미뤄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니에게는 엄마인 나 말고도아빠도 있으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나쁜 년이었다.
그때로부터 4개월이 지난어느 날의 이른 오후였다.
수면제를 복용하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져 언제나 부족한 잠 때문에 멍해져 있고 심한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한 신경 안정제와 두통약, 무지막지한 CRPS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마약 진통제에 취해 나는 제대로 기억하고 말하는 간단한 의사소통마저 많이 힘들고 어려울 때였다.
남편이 주는 도움 이라고는 늦은 퇴근 후에 청소 정도였고 간병은 딸아이 혼자서 오롯이 도맡아 하느라 딸의 심신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잠이 깨자마자 심한 두통에 밥을 먹기도 전에 약부터 찾는 나에게 두통약을 건네주며 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엄마. 머리 많이 아파?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내가 식사 빨리 준비할게. 그리고...."
"괜찮아. 엄마 밥 생각 없어. 두통약 먹었으니까 가라앉기 기다려야지 뭐. 왜? 뭐 할 말 있어? 엄마 다시 누울게. 잠깐만. 얘기해 봐."
"엄마.... 놀라지 말고.... 나 3~4일 정도 두통이 심했는데 왼쪽 눈이 안 보여.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쿵' 소리를 내면서 저 깊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알면서도 외면했던 사실이 커다란 바위가 되어 내가 아닌 딸을 덮치고 있었다. 내가 잘못 산 벌을 딸이 받게 돼버렸다. 모든 걸 내려놓고 불치병을 가진 엄마를 간병하고 집안 살림을 떠맡은 죄밖에 없는 딸에게 천형과도 같은 병이 생기게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