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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Nov 09. 2021

6년 만의 산책

효자견 콩이의 엄마 간호 일기-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엄마. 우리 콩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사연 신청한 거 통과됐대. 우리 촬영 한대. 내일 사전 인터뷰 먼저 하러 오기로 했어!!"


딸이 던진 느닷없는 말에 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들떠있는 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심스레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촬영을 한다고? 세나개 말하는 거야?"

"엄마, 기억 안 나? 2주 전에 엄마하고 얘기하고 신청했는데. 기억 안 나면 억지로 생각하려고 애쓰지 마. 두통 심해져. 내가 다시 얘기해줄게. 콩이가 그전엔 사람들이 집에 와도 안 짖고 좋아하기만 했는데 엄마 많이 아프고 구급대원 분들 자주 오셔서 엄마 데리고 가기 시작한 다음부터 외부인한테 짖는 게 엄청 심잖아. 앞으로도 계속 구급대원 분들 오실 일 생길 거고 손님들 올 때 조심하겠지만 혹시라도  물림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사연 신청해보자고 얘기했어. 이거 채택되면 어찌 되든 엄마가 다시 일어서는 신호처럼 여기자고."

"아... 그랬구나. 그런데 콩이가 심하게 짖는 편도 아니고 헛짖음이 있는 아이도 아니고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엄마만 챙기는데 방송이 된다고 하기는 할까? 그리고 지금 엄마 상태로 촬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어나 앉아 있기도 힘든데... 통증도 심하고. 기절도 많이 하고. 엄만 잘 모르겠다."

"이번에 신경과 교수님이 입원 날짜 잡으라고 하신 것 때문에 그러지? 엄마. 많이 힘든 거 내가 제일 잘 알지. 아직 입원까지 날짜 남았으니까 내일 인터뷰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 무조건 엄마 컨디션 맞춰서 할 거고. 우리가 아무리 하고 싶어 해도 사전 인뷰하고 잘릴 수도 있어. 어떻게 될지 좀 지켜보자 엄마."




사전 인터뷰를 오셨던 메인 PD님과 작가님은 내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콩이가 보이는 문제점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콩이의 문제 행동이 심각하지 않다는 말을 다.

그리고 촬영과 방송 여부에 대해선 자체 회의를 거친 후에 알려주겠다 말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메인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콩이의 문제점을 얘기하긴 하겠지만 그것보단 엄마가 아파진 이후로 배운 적 없던 환자 도우미견 역할을 해내고 있던 콩이의 모습을 부각하고 내가 앓고 있는 CRPS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방송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많이 아픈 내 상태를 배려해 이틀에 걸쳐 촬영을 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하룻밤을 꼬박 생각한 후에 촬영을 하기로 결심했다. 암흑 같기만 하던 내 삶의 전환점이 될만한 이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판에 박은 듯 어두운 동굴 속을 헤매던 내게 드디어 실낱같은 빛줄기가 비추기 시작했다.




입원까지 미루고 진행한 촬영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오후부터 촬영을 시작해도 일어나기가 어려워 촬영진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아... 미쳤지.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가지고. 엄마 죽어도 못 일어나겠으니까 다들 그냥 가시라고 해!"라며 딸의 속을 태우기도 하고 통증 덕분에 수시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게다가 생전 전화 한 통 없던 아주버니네가 마침 한국에 나와있던 때라 방송에 출연해 엄청 걱정해 주는 것처럼 촬영이 다. 달갑지 않았지만 일정상 그대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으로 돌아간 아주버니는 그 후로도 괜찮냐는 전화 한 번이 없었다. 혹시나가 역시나 였다. 흥!!

내 병에 한 번도 진심인 적이 없었던 남편 역시 제대로 된 내용으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고 내 증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방송되어 딸에게 엄청난 타박과 구박을 받았다.


하지만 항상 아픈 엄마와 누나, 강아지 동생 리아와 조용한 일상을....아니, 가슴 조이는 일상을 보내느라 힘들기만 했던 콩이는 집안에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 것만으로도 엄청 행복해 했다.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입에 웃음을 물고 '헥 헥'거리며 신이 났었다.

다만, 방송에선 미처 보여주지 못한 잦은 돌발통과 여러 차례의 기절로 여러 분의 촬영 감독님들이 심하게 놀랐고 심지어 방송 분량 중에 내가 기절하는 장면에 메인 pd님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어가기도 했다.

항상 기절한 나를 혼자서 침대까지 옮기느라 고생했던 딸은 촬영 기간 동안이나마 감독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진의 도움으로 베체트를 앓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콩이와의 6년 만의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콩이에게 가졌던 그간의 미안함과 안쓰러움, 고마움이 물밀듯이 몰려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여러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이 힘들고 고단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통증과 눈물, 우울과 불안이 넘치던 내 세상에 다시 이겨낼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모래알 같은 희망이 던져졌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상 중의 사소한 이벤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촬영과 선물 같은 6년 만의 산책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는 내 노력의 첫 포문을 열게 만들었다.



https://youtu.be/G_qU6 lpKs3 Y


https://youtu.be/qsRUzmIhyzk


https://youtu.be/hRXnhpXKjlA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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