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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Nov 08. 2021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구멍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나의 연약함이었든, 삶의 농간이었든, 운명이 내게 던져준 시험이었든지 간에 근 7~8년 사이에 내가 겪은 일들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더할 수없이 끔찍하고 잔인했으며 간성의 어두운 바닥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리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목숨을 잃지경까지 이르게 다.


이 모든 것들을 떨치고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려 결심. 더 이상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있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미 난 상처를 입었고 무너졌고 짓이겨져 있었다.


이제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만사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 병의 복합적인 증상들과 낫고자 하는 마음의 조급함이 더해져 오히려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따라와 주지 않는 몸에 답답함을 느껴 불안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우선 내 마음 먼저 살피자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에 와 딸의 마음 말고는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가족들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나마 얘기라도 꺼낼 수 있게 된 게 큰 발전이었다. 그전엔 너무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목이 메고 눈물이 쏟아져 한 마디도 꺼낼 수 없던 날이 허다했었다.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내가 이겨낼 것을 믿었다.


남편에게는 무심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타고난 성격상 누구를 대놓고 미워하거나 오랫동안 화를 내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대로 별일 없는 듯 지낼 수 있었던 거였다.(완전히 용서하지 못했다 해도)  나의 그런 면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잘못을 저지른 그 순간부터 조용해질 때까지 입을 다물고 요령껏 몸을 움츠리는 법을 터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게 상처를 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잘못을 한 만큼의 대가를 르게 하 아니면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일을 바로 잡게 만들도록 하기로 결심했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남편이 물러설 차례였다.

남편을 조용히 불러 얘기를 했다. 맑지 않은 정신혀가 꼬여 엉망진창인 발음으로 머리에서 생각하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르게 나와 내 뜻을 전달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가까스로 내 생각을 얘기할 순 있었다.

남편은 역시 5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몸에 밴 삶의 태도를 쉽게 바꿀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여러 가지 핑계와 자기변호,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게 주장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침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얘기했다.


"당신이 이면 열 가지를 다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내가 말하는 얘기의 핵심이 뭔지를 잘 들어봐.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건 당신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길 원하는 거야. 남편으로, 아버지로. 이 말이 너무 거창하고 념적으로 들린다면 더 쉽게 말할게. 만약 우리 집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당신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지, 얼마만큼의 희생을 요하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할 동안만 이라도 온전히 그 문제에 먼저 시간을 할애하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돼. 

그리고 지금은 내가 아주 많이 아프고 심지어 이렇게 아픈 동안 나를 돌봐준 것도 ◇◇이였으니까 이제부턴 당신이 나를 먼저 챙겨주고 배려해 주고 아껴줬으면 좋겠어. 난 당신의 아내지 ◇◇이의 아내는 아니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겠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은 이런저런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남편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당신이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어. 당신하고 결혼하고 이제껏 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도 없을 거야. 당신이 내가 말한 대로 노력할 생각이 없다면 결혼 생활 내내 당신이 내게 했던 방식 그대로 당신에게 갚아 줄게. 화내지 않을 거야. 당신이 내게 해온 방식 그대로 되돌려 줄 거야. 당신이 날 얼마나 외롭고 슬프게 만들었는지 뼈아프게 느껴봐. 그리고 한 가지, 아주버니네는 이민 가서 돌아 올 생각 전혀 없고 아버님은 다른 여자랑 사느라 자식은 안중에도 없으셔. 당신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나랑 ◇◇이뿐이라는 거 당신도 알 거야. 그렇게 당신 맘대로 살다 간 나중에 ◇◇이 얼굴도 못 보고 시골 요양원 구석에서 혼자 외롭게 늙어 죽게 될 테니까 생각 잘해봐."


남편이 쉽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눈곱만큼도 하고 있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살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걸 알려줘야 했다.

변하고 살아남느냐 변치 않고 버려지느냐는 이제 남편의 몫이 되었다.




내게 덮여 있던 무거운 장막과도 같은 어둠을 거둬내기 바라는 마음은 강했지만 사실 하루 한 끼도 거실로 나와 앉아 먹기 힘든 몸 상태였다.

한 번이라도 심하게 돌발통이 오면 그나마 남은 체력을 다 소진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겪어야 했고 기절도 여전히 잦고 심했으며 기억상실과 다른 인격이 나오는 일도 여전히 빈번했다.

변하고 싶은 마음은 갈급했지만 방법을 알지 못할 때 딸이 뜻밖의 식을 알려줬다.

사고(2019.2.13) 이후 1년 반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엄마. 우리 콩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사연 신청했는데 통과됐대. 우리 촬영 한대. 내일 인터뷰 먼저 하러 오기로 했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운명이 다시 내게 손을 내밀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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