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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Nov 04. 2021

기도하는 의사

담당 교수의 위로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옅은 잠 속에서 항상 반복되는 자각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듯 다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딸이 나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중환자 실에서 일주일이 흘러 있었다.


2019 2 20. 나는 나를 버렸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살 시도 환자는 누구든 격리 병동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아야 다. 하지만 난 자율 신경 실조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기절했고 수시로 CRPS 돌발통이 생기며 하루 24시간 두통이 떨어지지 않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환자였다.

마약 진통제 자체가 정신과 격리병동에 반입이 되지 않아 할 수 없 정신과 개방 병동에 보호자 동반으로 입원하게 됐다. 개방 병동이라 해도 오후 8시가 되면 병동 전체의 중앙문을 걸어 잠갔고 마약 진통제조차 간호사 실에 맡겨 놓은 채로 한알씩 받아먹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통증 관리 면에선 최악인 시스템이었다. 1인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기절해서 난리가 나고 돌발통으로 울부짖는다고 난리가 났다. 우리 병실 앞은 언제나 다른 병실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무슨 병인가 싶어 다들 호기심에 구경을 하러 온 것이었다. 제정신을 찾기는커녕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딸이 병원 복도에서 우연히 뇌신경과 담당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오랜 진료 기간과 잦았던 입원, 심했던 증세 덕분에 내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아시고 언제나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능력 있고 상하신 분이셨다. 딸을 본 교수님이 먼저 알은체를 하셨고 딸은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전과(轉科) 조치가 이뤄졌다.

입원실은 VIP 병동 작은 방으로, 뇌 신경과와 신건강 의학과, 마취 통증 의학과함께 협진하기로 했다.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던 우선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는 사실과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통증에 대한 조치가 로 이뤄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선 안도할 수 있었다.


리고 뇌 신경과 교수님이 보인 작은 행동 하나로 내가 짊어진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며 나만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병실을 옮기고 딸이 짐 정리를 얼추 마쳤을 때 마침 저녁 회진 시간이 되어 교수님께서 한 무리의 의사들을 이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딸과 한참 얘기를 나누던 교수님은 전해 들을 말을 다 들은 후에 함께 온 의료진들에게 양해를 구하셨다.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서 기다려 주세요. 잠시면 됩니다"


함께 온 이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본 교수님이 이번엔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하셨다.


"ㅇㅇ,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면 제가 잠깐 기도 해 드려도 될까요?"


crps를 확진받은 이후로 내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확신하고 있던 눈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차마 입을 열어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자신의 의사 가운을 벗어 보호자 침대에 걸쳐 놓은 체 블라우스 차림으로 내 아픈 오른팔을 피해 나를 가볍게 안고 나의 왼쪽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기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수님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내 오른쪽 귀에서 교수님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울림이 있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들리기 시작했다.

ㅇㅇ아. 많이 힘들었구나. 많이 지쳤구나.
나는 한 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단 한순간도 네 옆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니?
내가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했니?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로워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내가 지금까지와 같이 언제나 너와 함께할 것이다..!

*신명기 31장 8절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그날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교수님도 딸도 내 말을 믿지는 않았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지쳐, 내가 앓고 있는 병들의 고통젖어, 그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먹는 약물에 절어 환청을 들었거나 환각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또 그것이 실제로 환청 때문이든 섬망 때문이었든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제야 난 내가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특별한 존재 이신 그분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나를 사랑하는 내 딸이 내 옆을 지키고 있었으며, 나를 위하고 사랑해 주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언제나 함께였으며,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교회의 목사님과 많은 교인들이 함께였는데 너무도 힘든 상황에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불어 '착한 ㅇㅇ이'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날 버린 가족들에 대한 미움과 실망, 이기적이고 냉정한 남편에 대한 가망 없는 기대, 내 몸에 가해지는 견딜 수 없는 고통, 갈수록 더욱 망가져 가는 내 삶에 대한 슬픔, 다른 불치병을 안고 엄마를 돌봐야 하는 자식에 대한 절망과 미안함... 이 모두를  다 묻고 새로운 나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를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나 자신을 위하여 슬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기 위해 나를 내려놓은 고통스러운 한 달간의 입원 시간이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무너지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퇴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것으로 나는 나의 과거와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장례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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