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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Nov 02. 2021

무저갱 속의 나날들

클라이 막스

매일 눈물 바람이었다.

누구에게 화가 나있는지 대상도 특정하지 못할 만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모두가 원망스럽고 미웠다. 매사가 억울했다.

불치병은 다른 합병증 들을 불러왔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은 감당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다.

중요한 건 함께 사는 남편도 나를 버린 가족들도 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큰 고통과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나 홀로 던져  버려져 있었다.

이런 시간들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나 역시도 알지 못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급격히 쇠약해진 몸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딸의 지극한 정성과 정기적인 입원으로 몸을 care 한 덕분이었다.

그날도 입원을 앞둔 전날 저녁의 일이었다.

늦은 시간에 욕실 용품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딸의 일을 덜어 주려는 마음에...) 높은 장에 있던 물건을 꺼내려고 의자를 딛고 올라섰다가 내려오는 순간 샤워 후 미처 마르지 않은 타일을 밟게 되었고 귓가엔 큰 소리가 울리며 왼쪽 발목이 바깥쪽으로 심하게 틀어지는 것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보였다.

" 직!!"

미처 악! 하고 소리를 내지를 틈도 없이 이상한 자세로 주저앉아 버렸다. 처음엔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고 왠지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틀어진 발을 붙잡고 제자리로 잡아당겼다.

"우두득"

작은 소리가 났지만 발은 생각만큼 움직여 주지 않았고 그때부터 발에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자고 있는 딸을 깨우고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향했예약되어 있는 병실로 입원을 한 후 수술을 받게 되었다.

발목뼈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수술받은 다리는 CRPS 판정을 받았다.

재활을 받을 수 없었고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그제야 난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삶이, 내 운명이 나를 시궁창에 처박아 버렸다.




눈을 뜬다고 깨어 있는 게 아니었다.

눈을 감는다고 잠을 자는 것도 아니었다.

해리성 기억상실은 점점 심해져 어제와 오늘을,  좀 전과 지금을, 그때와 지금을 구분하지 못했고 다른 때의 내가 다른 인격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고 독한 약만 퍼부어 넣는 상태를 견디지 못해 구역과 구토는 일상이 되었고 거실로 나와 앉아 있는 시간이 하루에 10분도 가능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졌다.

삶의 희망을 잃고 죽고 싶은 마음만 커져가던 순간이었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날 원하지 않던 순간에 오직 한 사람 날 간절히 원하는 내 딸.

그것 때문에 버티고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세상 밖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깊게 상처받은 기억은 잊으려 노력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세 식구가 다 같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게 된 날이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는 엄마를 걱정하던 딸이 샤부샤부를 준비해 부담되지 않게 고기와 채소를 조금이나마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저녁이었다. 칼국수와 야채죽까지 미리 준비해 뭐든 조금이라도 먹어주길 바라는 딸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식사였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우연히 이사 초기의 얘기가 나오게 됐다. 시작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얘기가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남편과 내가 둘 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


"이제 다 지나간 일을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다음 날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얘기했고 전화하지 말라고 하셔서 안 하는 거라고."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그럼 여태컷 내가 얘기한 거 듣기는 한 거야? 당신이 그때 엄마하고 아버지한테 제대로 설명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지금 내가 이지경까지 돼있진 않겠지?"

"당신한텐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럼 됐지. 어떡하라고? 아우 씨!"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하며 내 팔을 양손으로 세게 붙잡고 엇 갈리게 하여 거칠게 벽 쪽으로 나를 밀쳐 버렸다.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이 없고 팔과 다리에 CRPS가 있어 대항할 수 없던 나는 종이 인형처럼 팔랑 거리며 '쿵'소리가 나도록 벽에 부딪혔다. 처음 는 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던 나를 보던 딸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살아생전에 가정폭력으로 경찰을 부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는데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경찰이 집에 도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보인 폭력적인 모습에 스스로도 놀란 상태였고 경찰의 권고에 따라 며칠간 입을 옷을 챙겨 집을 나갔다.

딸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경험하게 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놀라고 지치고 슬프게 만들었다. 남편을 용서하며 사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이후에도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지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주었고 남편은 일주일 동안 바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얘기하고 사과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난 남편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고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포용해 주었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남편의 사과는 진심이 아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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