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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Dec 07. 2021

우리 집

집과의 궁합

어느새 이사온지 26일나 지났다. 

 확신하기엔 이르지만 이 집과는 합이 잘 맞을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다.




여태껏 살았던 어느 집 보다도 조용다.

불치에 가까운 난치를 선고받은 내 두통은 무엇보다도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 소음 없이 산다는 건 절대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일정 부분 스스로 타협하고 감내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중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며 지르는 끼아아악~~~ 익룡의 소리(처럼 들립니다. 진심으로!) 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높디높은 데시벨로 지치지도 않고 내지르는 아이들의 에너지란!! 하하하 핫!! 아이들의 웃는 소리 사랑한다♡. 다만 흥분 겨워 지나치게 질러대는 비명소리는 나의 뇌를 부풀어 오르게 만들고 두개골의 막히지 않은 틈과 안구의 동그란 틈 사이로 순두부 같 연약하고 상처 받은 뇌가 뭉글뭉글 비집고 새어 나오는 듯했다. 심한 두통이, 여러 가지 고통들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 집에선 그 모든 소음으로 인한 근심과 분노가 자취를 감췄다. 종일 들리는 소리라 해봐야 소리를 낮춰 조용히 얘기하는 딸의 목소리, 아픈 엄마에게 익숙해져 발소리를 대한 내지 않고 걸어 다니는 강아지들의 톡톡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전부이다. 두통이 가라앉는 기적 같은 찰나 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몇 페이지에 불과하겠지만 책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기 있다. 언제나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돼 주었던 '책 읽기'가 돌아오려 하고 있다.

이사오면서 중고책을 많이 정리 했어요. 노안도 오고 두통 때문에 시력이 너무 나빠져서...새로 올 책을 기다려요♡.


이 집 하루 종일  빛이 가득하다.

복도 끝에 있는 남편의 방을 시작으로 딸의 공부방, 그리고 딸의 침실을 거치고 거실을 지나 안방을 마지막으로 하루 종일 햇빛이 집안에 가득다. 어두운 순간도 어두운 구석도 찾아볼 수 없다. 항상 광합성이 부족해 볕이 드는 시간에 베란다 쪽에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더할 수없이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 곁에는 올해 10살을 큰 병 없이 무사히 견뎌준 사랑하는 강아지 아들 콩이가 언제나 함께 있다.

언제나 엄마를 그림자 처럼 따라다니는 콩이, 그리고 그런 오빠를 샘내는 리아^^.


옛 동네에 살 때 쓰던 작은 TV와 김치 냉장고를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쓰다가 바꿔 새 살림을 작한 듯 산뜻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실 이 말이 어불성설이란 건 저도 너무 잘 압니다. 주 사용자가 딸이라는  저도 알고 딸도 알고 동네 밖에 사는 개미네 여왕개미도 알 테니까요. 그냥 제가 살림하는 척 좀 해봤습니다.ㅎ)

게다가 전혀 어울리진 않지만(이게 중요한 point입니다.ㅎ 저희 딸은 샤랄라 러블리 스타일하곤  좀 거리가 있거든요^^) 핑크를 사랑하는 딸의 침실 분홍색 헤드가 달린 침대를 놓아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좋아해서 늦게 장만해준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 침대는 아마 결혼하기 전까지 쓰않을까?싶다. 부디 어서 빨리 그러길 바란다.

내 말인즉 빨리 결혼해서 지긋지긋한 엄마 간병에서 탈출해 자기 인생을 살길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다. 꼭 결혼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건가? 하실지 모르지만 그저 그런 이유로 독립을 원한다면 아픈 엄마를, 그것도 아주 많이 심하게 죽을 때까지 죽도록 고통스럽게 아플 엄마를 두고 독립해야 하는 일은 우리 딸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편의 어리석음에 뼈가 에이고 피가 끓는다.)

아직 까지도 엄마가 세상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나 역시 딸에게 매달린 족쇄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딸이 날으려 할 때 날갯짓을 받쳐줄 높새바람이 되려 한다. 


엄마 팔자 닮지 고 세상 다정하고 사랑 많은 사람 만나 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잘살길 바란다.

딸 방에 놓아준 침대에요. 많은 여자아이들의 꿈의 침대죠.                          *출처-에이스침대 홈페이지


그리고 우리 집의 가장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남아 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낫고 회복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다. 조금이라도 더 회복되어 이곳에도 집을 장만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 만든, 이 집과 사랑에 빠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일몰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찍은 모습이에요.

하루를 갈무리 짓는 이 석양(夕陽) 아름다움이 매일 선물처럼 내게 주어진다. 그것도 완전 공짜로!!(공짜 좋아하면 ㅇㅇㅇ되는데 ㅎ ㅎ.)

글 위쪽에서 사라졌다고 했던 근심과 분노는 소음에 국한된 것이고 여타 다른 모든 힘듬과 어려움, 분노, 괴로움, 고통 등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지만 저녁나절에 노을 진 풍경을 마주할 때나마 그 모든 시름들을 완전히 내려놓는다. 가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중에 하나이다. 매일 같은 노을 이지만 매일 달랐다.


석양의 순간 찰나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고 아쉽다. 힘들고 아쉬움 많았던 내 인생의 모든 순간도 지나고 보면 찰나가 모여 아름다울 것을 믿는다.

나의 모든 찰나가 과거를 이뤘고 현재를 지나고 미래가 될 것임을 안다.


나의 모든 찰나가 영원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지는 석양을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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