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Dec 17. 2021

내가 이제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까

딸이 내게 전해준 진한 위로의 말

이사를 하고 벌써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나 흘렀는데 한 번 무리한 몸은 제 컨디션을 찾을 줄 모른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약을 먹어도 새벽 동이 트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어 추가로 약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는 중이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해 다음 날을 엉망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나 추가로 처방된 약을 먹고 과한 졸음과 늘어짐으로 하루를 망쳐버리는 데는 별다를 것이 없어 참담한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오늘도 전날 밤에 먹은 추가 처방된 약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서 화장실도 한 번 가지 못한 체 눈도 뜨지 못하고 아픈 몸을 돌려 가며 "끙끙" 앓아누워 있었다. 죽었다 깨도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갔던 몸뚱이는 하루에 한 끼라도 어떻게든 먹여보려는 딸의 노력에 홀린 듯이 눈이 떠졌다.


"엄마, 정신 좀 차려봐. 배 고프지 않아?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어요! 뭐라도 먹어야 살지! 엄마 엄청 끙끙거려요. 많이 아프지? 밥을 먹어야 약을 먹지. 정신 좀 차려봐!!"


침대 옆에 다가앉아 갈근탕을 데워 들고 와 정신없는 나를 추슬러 깨워주고 일으켜 준다.

이제껏 숨죽이고 있던 강아지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핥고 뽀뽀하고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퉁퉁 부은 몸으로 일어나 식탁 앞에 가 앉아 그제야 딸에게 안부를 물었다.


"미안해. 엄마 어제 약 먹었는데도 잠이 안 와서 새벽에 잠들... 뭐 좀 먹었어?"


딸도 내가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이 할 일과 여러 가지 챙기고 돌봐야 하는 일들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엄마 일어나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지. 그래도 커피도 마시고 요구르트랑 그래놀라랑 먹었어. 내 걱정은 하지 마. 배 고프면 뭐든지 먹지. 잠 못 자고 자면서 아파서 내내 끙끙거리고 잘 먹지도 않는 엄마가 걱정이지!!"


성인이 된 딸이지만 아직은 내 손길이 한참 필요한 딸에게 언제나 마음의 짐이 한가득이다.

그런 딸이 저녁 식사 시간에 문득 내게 한 가지 이야기를 건넸다.


"엄마, 내가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뭐를?"

"엄마가 아빠하고 결혼하고 나를 낳고 그 어려운 일을 겪고 혼자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들었는데도... 누구도 엄마를 도와줄 수 없었는데도.... 엄마는 정말 용감하게 날 지키고 내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주고 내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엄마라는 확신을 주면서 나를 키우고 엄마 스스로를 지키면서 정말 잘 살았어. 정말 대단해. 나라면.... 내가 지금 그 나이쯤 돼보니까 엄마가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 엄마 정말 고생했어. 고마워."


목이 메어 입 안의 밥을 한참 씹어야 했지만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식 농사 잘 지었다 생각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