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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pr 19. 2022

개과천선 프로젝트

유튜브를 시작하신 브런치 작가님

올해는,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이어 가던 중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사고가 생겼던 해(2019년)로부터 만 3년이 되는  이기도 했다.

사실 그 사고 이후로 표면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자살을 오로지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도 여전했고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내게 등을 돌린 가족들을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들을 용서했음에 내게 일어났던 사실들을 잊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것도 여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에서 나를 가장 따뜻하게 보듬으며 위로해 줄거라 믿은 보다 못한 차가운 남편의 이기적인 모습에 살아갈 힘을 잃었던 것 또한 달라지지 않았었다. 남편은 나를 등졌던 그 어떤 가족보다 내게 냉정했고 모질었다.


 처음으로, 내가 사고를 내고 난 후 음으로 비교적 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깝게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비록 완전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고 해도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몇 사건들은 사진을 보듯 선명해져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모든 일들이 다시 일어서려 발악하 노력하는 나를 비웃듯 더욱 거세게 저항하며 나를 짓밟고 목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족이었든, 남편이었든, 내 운명의 한계였던 상관없이 시의적절하게 내 전투력에 불을 지폈고 비록 내가 병으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해도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글렀었는지에 대해 뼈에 새겨 주리라 작심을 했다.




이사한 날로부터 두 달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남편의 거취 문제와 이혼 여부에 대한 얘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집으로 들이닥친 딸과 강아지들로 인해 뒷 이야기를 이어 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얘기할 기회를 놓친 것을 다행이라 여긴 남편은 쾌재를 불렀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이사하기 두세 달부터 남편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불안증이 심하게 생겨 매일매일이 고역이었는데 그것조차 피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 숨이 막혔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과 마음이 어떤지를 여과 없이 그대로 까발려 보여 주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한 후 남편에게 말했다.


"♥♥이가 다 모를 거라고는 생각 안 하지? 그나마, 이가 성년이 되고도 5년이나 더 지난 후에 글을 보고 당신하고 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거야. 길게 얘기 할거 없이 아이가 당신 같은 남자 만나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거 원치 않잖아. 지금껏 수도 없이 얘기했고 난 당신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당신 퇴근하는 소리만 들려도 '자낙스'부터 삼켜야 돼. 이건 사는 게 아니지. 이런 조건이  싫으면 당장 나가고. 아니면 어떻게 되든 버텨볼테면 내가 말하는 대로 하던가. 그래 봐야 내가 겪은 26년 세월만 못해."

"여보, 내가 정말 미안하고..."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려면 지금 당장 나가. 입에 발린 소리 치가 떨리고 소름 끼쳐서 구역질 나니까"

"알았어. 알았어. 그냥 아침 일찍 출근하니까 낮에는 나 볼일 없을 거고 저녁엔 당신이 거실에 나와 있으면 거실이나 주방 쪽으론 얼씬도 안 할게. 입도 벙긋 안 할게. 나가라고만 하지 마."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내린 거뿐이니까 너무 기대하지 마.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나도 장담 못해."

"고마워. 여보. 당장 나가라고 안 해줘서 고마워. 내가 잘할게."

"아니!!! 아무 짓도 하지 마. 이젠 너무 늦었어. 내가 좋게 얘기할 때 진작 러지 그랬어. 그때 노력 했어야지!"


이렇게 이도 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며 서로가 괴롭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신통방통한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났다.




남편과의 관계를 끝낸다 도, 아니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노력을 해보려 한다고 해도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의 사정을 누군가에게 다시 얘기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지금까지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복기하고 싶은 생각도, 여유도, 건강도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던 초기부터 깊은 인연으로 이어 질거라 생각했던 브런치 작가 한 사람이 자신이 '유튜브 채널(달달 언니 TV)'을 개설했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주며 응원해  고마운 작가였던 그 사람의 또 다른 직업은 소통관계 전문가로 대학이나 기업체에서 강연을 하강사였다. 

 작가는 자신이 잘하는 분야로 유튜브를 시작 것이었다.

한두 편을 먼저 시청한 나는 이게 우리의 살길이라고 생각했다.(물론 남편이 따라와 준다 전제하에 말이다)


세상 모든 중요한 얘기들은 가까운 사람이  얘기하면 잔소리가 되지만 남이, 그것도 전문가가 얘기하면 똥을 된장이라 해도 지당하신 말씀이 된다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골똘히 생각한 후에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지금 내가 당신을 두 달이 넘도록 그냥 지켜보고 있으니까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거라 생각하지? 그런데 어쩌지. 난 그럴 생각이 없어.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얘기하라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천 번도 얘기할 수 있어. 내 살과 뼈에 새겨졌거든. 그런데 딱 한 가지, 내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같아. 물론 당신이 잘해야겠지만. 내가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 영상을 올라오는 순서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 영상 내용이 들어간 감상평 하고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까지 댓글에 올려. 내가 확인해보고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판단되면 그때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댓글 똑바로 달아"

"알겠어. 여보. 내가 영상 빠짐없이 보고 댓글도 성심성의껏 올릴게. 그거 다 보고 천천히 생각해도 돼. 여보 미안하고 고마워."


내가 남편과 가족들에게는 생전 보여준 적 없던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 것으로 남편은 이미 끝을 짐작하고 매달리고 있었다.


남편을 지켜보는 시간이 6개월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커멓기만 하던 어둠 속에서 반딧불 같은 빛이 꺼질 듯 말 듯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또 한번 남편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기회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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