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믿음이 제일 깊다
새해가 돌아왔다.(2007년)
언니(양여사)가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게 되면서 세례식 때 느꼈던 혼란스러운 감정은 빠르게 잊혀 갔다.
우리 셀의 리더이자 새벽 찬양단의 대장이었던 김집사는 나보다 2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나와 성격이 잘 맞아 셀 모임 자체가 재미있어졌다. 우리 집을 셀 모임 장소로 제공했고 매주 셀 원들과 함께 모여 주일에 들었던 설교 말씀에 대한 공부를 하고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권유하는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엔 모두 참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다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단순히 사람들과의 교제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위해 더욱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씀을 가까이하게 되면서 이런저런 잡념이 사라졌다.
다시 새벽 예배와 금요 기도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 시간을 늘려가며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 결실을 보는 듯했다. 이렇게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는 나를 보며 교회 어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사기(士氣)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런데 사기만 치솟았으면 좋았을걸.
직장을 다니면서 항상 느꼈던 자부심과 함께, 내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며 감춰져 있던 나의 오만함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 믿음이 하늘같이 높다고 생각했다. 바다같이 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리라 굳게 믿었다.
그야말로 허울 좋은 하눌타리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에서 나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내게 교회를 나가야 한다는 권유가 여러 차례 이어졌던 것처럼 그 무렵 남편에게도 비슷한 귄유가 이어졌고, 딸아이에게도 친구들로부터 교회를 나와 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은 후였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병까지 얻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였지만 처음엔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 흘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같은 말을 모든 식구가 여러 차례 들었다는 걸 알게 된 후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나의 괴로움과 슬픔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것은 내가 과연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누구에게나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정이입을 잘하며, 공감하는 폭이 넓어 항상 눈물이 많고 마음 여린 나였지만 내 모습이 그렇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정말 가까운 이 몇 외에는 알지 못할 만큼 꽁꽁 감추며 살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런 모습을 드러내다 보면 사람들은 쉽게 나를 만만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진심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었지만 그건 어느 정도의 선까지만 이었다.
그 무렵까지 살아오면서(서른 후반쯤이었을 때입니다) 그 선을 넘어 내 마음까지 닿았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마음을 활짝 열어 내 모든 걸 보여줬던 사람 중에 이제껏 나를 배신하거나 실망시켰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설령 사람을 죽이는 돌이킬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렀다 해도 내가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나를 믿어줄 만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훗날 내가 인생을 살며 삶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하게 되는 큰일을 겪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나와 딸을 지켜주어 내 삶의 동아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을 위해서라면 돈이나 시간, 명예 같은 것은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달라고 해도 그것이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기라도 한다면 주저 없이, 기꺼이 내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내 마음을 무참히 짓밟은 첫 사람이 남편이었다.
남편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 내 신앙심이 아무리 깊어진다 해도 남편에 대한 미움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이런 내 모습이 싫어 어떻게든 마음을 돌리려 애쓰며 기도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때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내 사랑을 너무나 가볍게 짓밟았고 그것을 돌이키려 애쓰고 노력하는데 소홀할 뿐이었다.
그런데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집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다르게, 교회에선 성실하고 착한 가장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했고 그런 남편의 모습에서 괴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함께 시온 찬양대에서 봉사를 하고 제약 관련 일을 한다는 이유로 한 달에 한번 있는 '외국인 근로자 진료'(한 달에 한 번씩 어려운 교회의 의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어려운 외국인을 위해 진료 자원봉사를 합니다. 약사님들이나 제약회사에서 약을 무료로 제공해 주시고 간단한 교육 후엔 학생들이 참여해 봉사 시간 이수도 할 수 있어요) 봉사를 하며 나름대로 본인만의 신앙생활을 착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남편이 하나님을 믿고 속사람이 깨어 예전에 잘못을 모두 회개하고 새로 태어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남편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난 남편을 믿지 않았다.
남편이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나를 사랑한다 말하고 가족이 우선이라 말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말해도 나는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남편의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남편도 알고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아실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믿음은 종이장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감히 내 믿음을 따라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나를 속이고, 지금도 나를 기만하고 있는 남편의 믿음이 결코 나보다 좋을 리 없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렇게 조용하지만 편치 않은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굽은 손가락이 펴지진 않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를 다니면서 가지고 있던 병이 다 나았던 내 몸에 또다시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