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밤낮이 뒤 바뀌어 버렸다. 사실 밤낮이 바뀌었다기 보단 밤이고 낮이고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시간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안방 베란다 창문에 커다란 암막 커튼을 굳게 내려 버렸다. 오로지 침대 옆 독서등에만 의지해 간신히 물건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낮은 조도의 불빛을 비추게 만들어 놓은 채 그저 누워만 있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혼곤한 시간들이 벌써 5개월을넘어가고 있었다.
입맛을 잃어 음식을 먹지 않으려는 나를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먹여 볼 요량으로 딸은 하루 종일 분주해 보였지만 딸의 애원에도 음식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딸의 정성을 외면하지 못해 억지로 몇 숟갈 넘긴 음식은 반드시 체하거나 심한 두통으로 돌아와 다시 토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독한 약들을 많이 먹어 붓고 살이 쪄 철옹성 같던 살덩이들도 어느새 조금씩 내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ㅋ ㅋ ㅋ.
씻는 일조차 버겁고 지쳐 냄새날 것 같은 더러운 모습으로 널브러진 나를 누구든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었으면 하는 생각만 반복되는 날들이다.
CRPS를 진단받고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겪으며 값싸고 무거운 코트처럼 나를 짓누르던 우울증은 어느새 어떻게 해도 벗을 수 없는 철갑처럼 변해 버렸다.
내가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선고받은 후에 멘털이 무너져 버리고 명료하게 통제하던 일상까지 무너진 후 가족들은 내게 등을 돌려 버렸고 그 후론 세상마저 내게 친절하지 않기로 작심을 했나 보다.
통증(痛症)이라는 단순한 두 글자로 표현하기엔 너무 지독한 고통이 매일 나를 죽음 앞으로 밀어내고 위로와 공감을 잃어버린 남의 편의 방관에 고통보다 더한 깊은 상실을 느낀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지금보다 더 달콤하게 나를 유혹했던 적이 있었을까.이겨낼 수 있을까.
지금을 이겨내면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린다고 누가 내게 확답할 수 있을까.
수많은 나의 선택들이 모여져 이루어진 지금의 삶과 이 어려움들... 모두 다 내 잘못 이기만 한 걸까. 백척간두 위에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고 서있는 것만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다.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자 선포하듯 다짐했던 마음조차 놓치고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더 이상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어두움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매 순간 눈을 떠 내 고통이 현실임을 인지하는 순간마다, 집안에 갇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할 때마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을 때마다, 나의 오래되고 사악한 동반자우울증은 내게 죽음만이 답이라고 강요한다.
그가 다시 내게 끈질기게 속삭인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 놓으라고.
이제그만 쉬어도 된다고.
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사무쳐 몸이 떨리는 것을참아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살이 뜯겨 나가고 뼈가 드러 난다 해도 내 몸을 둘러싼 철갑 같은 우울증을 뜯어내 버릴 힘과 의지가 내게 남아 있기를,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콩이와 산책할 수 있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가져 볼 수 있기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사실은 살아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있기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기를, 매일 죽고 싶지만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