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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Dec 03. 2022

수면제 모으기를 멈추는 날이 온다면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완전한 순간이 왔다는 뜻

코로나로 인해 입원이 쉽지 않아 진지 벌써 꽉 채운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진단받은 후로 처방된 마약 진통제와 더불어 여러 가지 합병증과 기존의 질병들에 처방된 독한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를 먹으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게 됐다.




심하다 못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CRPS 돌발통 그에 못지않은 여러 가지 통증들을 잠재우기 위해 먹는 다른 진통제들, 평소에 느끼는 일반적인 통증과 예민해지고 날카로운 신경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먹 신경 안정제들이 몸 안에 쌓이고 남아 오히려 더한 감각의 과민함을 일으키게 되었다.


피부는 살짝 스치기만 해도 당장 찢어질 듯 아파오고 언제나 그랬듯 콩이가 무심히 다리 위에 올라앉기만 해도 고관절이 골반에서 빠져나오는 듯 아파 비명이 터져 나다. 며칠 동안 오락가락 흐린 날씨에 허리를 쓰지 못하고 앓고만 있던 몸이 그예 탈이 나고 말았는가 보다.


심한 두통에 어지러움을 넘어서 식욕을 잃고 헛구역질을 해대며 명치부터 부풀어 오른 배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뭐나 맛있는 것 많이 먹어서 배가 부른 거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못 먹 살이나 빠지던지.

심술 난 두꺼비 마냥 온몸이 울불뚝 붓기로 빵빵하다.


백일을 지난 아기도 아니건만 밤낮이 뒤바뀐 채로 수면제를 먹어도,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도대체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으니 사람이 할 노릇이 아니다.

조금을 자더라도 밤에 자야 하고 잠시 깨어 있더라도 낮에 깨어 있어야지 올빼미도 아니고 부엉이도 아니고. 난 사람인데.

3일, 4일을 못 자도 꼬박꼬박 수면제를 챙겨 먹어도 다들 자고 있는 고요한 밤과 새벽 시간을 지나고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강아지들의 아침밥 챙기는 딸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잠을 이루고 그 마저도 혼곤한 꿈에 젖어 잠꼬대 반, 는 소리 반으로 채운 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저녁이 되고 만다.


한동안 미루어 왔던 입원으로 제때에 Wash out 이 이루어지지 못해 몸에 쌓인 많은 약물들로 인해 억제가 일어났고 내 몸과 마음은 모든 치료와 약물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몸은 감각 과민으로, 정신은 예민과 까칠을 넘어서 조울증과 심한 불안증, 혼자서는 문 밖을 나서지도 못하는 광장 공포증을 대동한 공황 발작과 더욱 심한 기억 상실로 나를 절망으로 잡아 끌어내리고 있다.




2019년 2월 13일.

지독한 고통과 그보다 더한 삭막한 냉대와 사무친 외로움에 지쳐 죽음으로 내던져졌던 쓸쓸한 내 목숨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기를 빌고 또 빌며 악스럽고 지독하게 과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그었었다.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해도 살아있는 삶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연속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신(해리성 기억장애)으로 불안과 공황, 우울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건 매 순간이 공포이고 악몽이 다.

이 모든 것에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순간은 잠을 자는 순간뿐데.

매일 셀 수없이 기절하는 것과(자율신경 실조증) 잠을 자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자지 못하고,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못한 이후로 다시 수면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니다.

사실 수면제를 모으지 않았던 때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는 땐가 더 잘 견뎌 보마고 많이 모았던 수면제를 딸에게 내어 준 적도 있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수면제를 지켜보는 보호자가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많이 모을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병이 많은 환자들 사고를 칠 수 있는 구멍 생각보다  여기저기 많이 있다.

다만 입밖에 내어 말하지 않을 뿐.

이미 많이 모아진 수면제가 아니더라도 잠깐이나마 내 판단력을 흩트려 놓을 만한 약은 집에 차고도 넘쳤다.

또 약이 아니어도 그런 순간은 언제나 내게 넘쳐난다.

무너진 판단력에 저지를 일들이 나를 걱정케 한다.


오랜 병으로, 또 많은 병으로 지치고 힘에 겨워  쉽게 굴복하고 무너지기 위해 약을 모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만 버티고 이겨내 살아내서 마침내 생존자가 되고 싶은 마음 한편에 편한 잠 한 번 실컷 자보고 싶은 소망도 한가득이다.

하지만 내가 수면제를 먹지 않고도 잘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저기 안 쪽 깊숙이 숨겨놓은 한 뭉텅이의 수면제를 보기 좋게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날이 꼭 병이 낫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믿고 더 아끼고 사랑해주어 나 스스로를 절대 버릴 수 없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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