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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14. 2023

두통은 얼굴까지 망가뜨린다

죽음의 고통-난치성 편두통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상을 달리 하기도 하고, 완화되는 부분도 있으며, 심각한 상태로 악화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어떤 것들은 증세가 변하기도 하여 다른 새로운 병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면 아마도 오랜 시간 희귀 난치 질환이나 난치 질환으로 고생을 해온 환우 분일 것이다.


하지만 심한 병을 오래 겪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들었던 병명만을 기억하고 환자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많은 분들도 내가 겪는 여러 가지 통증과 어려움에 대해 기도해 주시지만 변해가는 증상과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차마 내 입으로 일일이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려가며 기도를 부탁할 '염치'가 일단 내게는 없고 너무 많이,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내 고통을 나 조차도 따라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저 통증이 생기는 그 순간순간 만을 모면하며 하루를 버티고 때우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아 졌다. 




내가 두통이 심하다고 처음 생각했던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3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 데다 사춘기를 함께 겪고 있던  나는 (우리 땐 사춘기가 늦었죠^^) 예민하고 까칠했던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려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던 오빠의 지랄 맞은 사춘기를 직접 눈으로 목도하며 그 사춘기를 함께 감내하며 힘들어하시던 엄마에게 나까지 함께 짐을 얹어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웬만한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감추고 누르며 시간을 보낼수록 두통의 강도는 더욱 세져만 갔다.

하지만 내가 두통을 병으로 인지한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보통 머리가 아플 때 감기가 아닌 이상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두통이 나아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오래도록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그 덕분에 오히려 두통의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피린계 중독이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https://brunch.co.kr/@oska0109/255

(지금은 판피린 끊었습니다)


베체트를 확진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 모를 구토를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혈관성 두통이라는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두통으로 고생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였다.


여러 가지 약물을 시작으로 그때만 해도 임상으로 처음 시도하던 두통 보톡스 시술을 비롯해 신약들까지 안 해 본 치료가 없었지만 두통을 쉽사리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지금은 교수님이 되신 주치의 선생님이 권하시는 약이라면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약이라도 구해서 먹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었다.

다른 병들도 함께 앓고 있었기 때문에 1년에 4번씩 2주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 몸 안에 과하게 쌓인 약물을 씻어내는 Wash out 과정을 거쳐야 했다.

두통을 유발하는 식품을 피하기 위해 철저한 식단 관리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갑자기 밝은 빛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에는 낮에도 암막 커튼을 내리고 있어야 했다. 집안의 전체적인 조도를 낮추고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TV 볼륨조차 크게 해 놓은 적이 없었다.

두통이 심해지면 냄새에도 심하게 예민해지기 때문에 집안의 환기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많은 노력과 많은 시간 그리고 많은 돈을 들이며 애를 써 조금씩 두통 강도를 줄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좌절을 맛보게 되고 말았다.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을 진단받 된 후 두통은 통제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CRPS 때문에 먹게 된 마약 진통제들과 붙이는 패치, 늘어나는 신경 안정제와 수면 보조제 등 50여 가지가 넘는 약의 복용으로 약물의 사용을 민감하게 조절해야 하는 두통의 관리 체계가 무너져 버렸고 어떤 약도 두통의 고통을 줄일 수가 게 돼버리고 말았다. Wash out도 소용없었다.


CRPS를 확진받아 돌발통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도, 이미 두통으로 생기는 고통 만으로도 내 삶의 질은 현저하게 낮아져 있었다. 두통 역시 10단계의 통증 강도로 표현하는데 심하다고 느끼는 6 이상의 통증을 한 달에 대여섯 번만 느껴도 중증 통증 환자에 속한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두통을 10단계 이하로 느껴본 적이 없었고 단 하루도 두통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없게 되었다. 1년 365일 24시간, 단 한순간도 두통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수면제를 먹고 짧게나마 잠을 자는 순간에도 두통을 느끼며 잠을 잔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내뱉는 첫마디가 '아이고! 머리 아파!!'이다. 마침내 작년에 내가 겪는 두통에 대해 '난치'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두통은 지금의 나이를 먹기까지 35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혀 왔다.




그런 난치성 편두통시력저하, 구역, 구토, 오심, 안구통, 부종, 구음장애를 일으켜 어떤 순간엔 차라리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화장대나 아일랜드 식탁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 박살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순간도 많다. 머리를 깨버려 피가 솟구친다 해도 지금 겪고 있는 이 심한 통증 보다야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다.


게다가 야속하게도 작년 난치성 판정을 받았을 무렵부터 두통이 시작되는 왼쪽 얼굴이 조금씩 시려오더니 두통이 심해질수록 내 살 같지 않은 감각이 느껴지면서 얼굴뼈가 조각나는 것 같은 통에 피부는 시리다 못해 쓰라리고 욱신거리 이중삼중의 까지 견야만 하게 됐다.

나치게 과도한 통증들을 억지로 참아가며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을 견디다 못해 얼굴까지 통증이 번져버리고 말았다.

너무 많은 약물을 투여받고 있는 상황에 더 이상 약물은 쓸 수 없어 여러 가지 검사 후에 지금은 두통 보토스 시술 때에 왼쪽 안면부에 있는 을 찾아 주사를 더 놓는 것으로만 치료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통증을 느낀다.


이제는 나 자신을 그다지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다 말하지 못하고, 일일이 말할 수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내가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할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내 남은 삶이 모두 통증과 불행에 스러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반드시 그럴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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