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키기 위한 노력
모든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달라진 건 단 하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점뿐이었다.
나는 모태신앙도 아니었고, 어릴 적부터 신앙심이 깊은 사람도 아니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던 건 아프기 전, 고작 8년 남짓이었다.
그 8년 동안 교회에서 권유하고 주도하던 교육에 열심히 참여했기에 그나마 지금의 믿음이 자리 잡을 수 있었지만, 돌아보면 정작 그 시간은 나 혼자 즐거워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밥 먹는 잠깐의 시간도 앉아 있기 힘들 만큼 아픈 내가 예배 시간을 견디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예배 시간의 회복 없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난감한 마음에 조급함까지 더해져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미칠 것만 같았다.
병으로 망가진 몸과 그 몸으로 인해 망가진 정신, 그리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들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지 몰라 곤란하고 막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또 한 번 살 길을 내어 주셨다.
흔들리는 나를 붙잡고 몇 년의 세월을 버텨온 딸은 그저 내 병만을 간병했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으려 할 때, 그 아이는 내가 희망처럼 흘려보냈던 말을 기억해 내어 진심을 담아 권하기 시작했다.
엄마, 예전부터 글 써보고 싶다고 했잖아.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있는데, 거기 작가 신청해 보자. 작가 승인이 나면 글을 쓸 수 있고, 엄마 얘기도 마음껏 나눌 수 있어.
엄마 글 잘 쓰잖아. 학교 다닐 때도 상 많이 받았다며. 교회에서도 늘 간증하라 했잖아.
혹시 알아? 책까지 낼 수도 있지! 엄마, 한 번 해보자.”
하지만 나는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너무 비관적이었다.
그게 뭔데. 뭐가 됐든 엄마는 못 해.
이렇게 아픈 머리로는 생각한 단어랑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 다른데, 뭘 할 수 있겠어?
하루 한 끼도 간신히 먹고, 그마저도 토하기 일쑤인데?
돌발통이 오면 비명 지르고, 기절하고, 울고...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니. 엄마는 망가졌어. 병도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딸은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 며칠 동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의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아픈 나를 위해 희생했던 건 딸아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딸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우리 강아지 콩이의 사연을 신청했다.
콩이는 내가 CRPS를 앓기 시작한 후로 돌발통을 겪는 순간에 단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기특하게도 항상 통증이 생기는 곳을 피해 조심히 내게 몸을 붙이고 누워 힘을 보태주려 애를 쓰는 듯했다.
게다가 누나가 쉬거나 잠든 사이에 내게 돌발통이 생기거나 갑작스레 기절을 하게 되면 곧바로 누나 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세게 긁어 누나를 깨워 내게로 데리고 왔다.
누가 방법을 알려주거나 배운 적이 없는 것들을 스스로 깨우쳐 보호자인 나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다.
콩이에겐 언제나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아픈 보호자의 곁을 지키느라 산책 한 번, 여행 한 번을 마음 놓고 해 보지 못하고 콩이의 생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사람과 다른 시간대를 사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지만 내 병에 밀려 미쳐 콩이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지나쳐 너무 심하게 짖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돌발통과 기절로 인한 2차 부상이 있는 경우에 119 구급대원분들이 출동해 나를 데려가는 것이 콩이에겐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며칠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방송에 나가 내 병에 대해 얘기하고 콩이와의 기록을 남기는 것과 과연 내가 지금의 건강 상태와 실력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Wash out을 위한 입원을 며칠 남기지 않고 딸에게 말했다.
그래. 한 번 도전해 보자. 신청한다고 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하겠다, 안 하겠다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겠지.
만약에 두 가지 다 된다면 이게 엄마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려고.
하나님이 엄마에게 보내는 신호! 또 다른 기회!
밑져야 본전이야. 더 떨어질 바닥도 없으니까. 한 번 해보자!
2주가 지난 후에 '세나개'쪽에서 연락이 와 너무 늦지 않은 때의 콩이의 모습을 기록에 남길 수 있었다.
또 방송 이후로 아직도 나를 염려해 주고 걱정해 주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예배에 나가지 못했어도 언제나 우리를 챙기고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극한의 고통에 몰려 죽음을 선택했을 때에도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딸에게 힘을 보태 주시던 담임 목사님께서는 예배시간 중의 방송 얘기를 전하셔서 많은 교인분들의 안부전화와 기도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담당교구 목사님으로 재직하시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가신 목사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기도와 말씀을 전해 주시며 내가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내가 얼마나 우매하게 살아왔는지 깊이 회개하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촬영 이후로 병원에서 걸을 수 없을 거라 말했던 다리로 걷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이제 8살이 넘은 콩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 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 마음은 열망에 가깝도록 불타올랐다. 마음대로 만질 수 없는 다리는 재활은 불가능했지만, 나 혼자 서라도 조금씩 운동해서라도 반드시 다시 걷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원한다고 모든 일이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안 그래도 집에 갇혀 꼼작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이젠 비자발적으로 더 꼼작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마저 하나님이 주신 또 한 번의 기회라 생각했다.
떨리고 자신은 없었지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이미 병으로 6년이 넘는 세월을 잃었는데,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를 전염병의 시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이제 힘들었던 지난날의 나의 얘기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 주신 얘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얘기를 쓰고 또 쓰기로 작심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 것을 믿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