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 이유, 병이 낫지 않는 이유

하나님이 내게 주실 사명은?

by 강나루

자살 사고 이후, 살면서 처음으로 온전히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오직 ‘나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게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후회하지도, 앞으로 손해 보지 않으려 애쓰며 내 행복만을 좇을 생각도 없다.
여전히 나는 내가 맛있게 먹은 것은 함께 나누고 싶고,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함께 보고 싶은 사람이다.
누구에게든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아까움이 없고, 마음을 내어주는 데도 여전히 주저함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대하려 노력했고, 친절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예절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처음 교회를 찾아가 영접기도를 드렸을 때 주님께서 내 눈을 통해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눈물은 내 의지로 흘린 것이 아니었다.
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눈물의 의미를 오래도록 곱씹으며 생각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바로 그때에 나를 부르셨을 것이다. 그분은 내가 앞으로 겪게 될 육체의 고통과,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의 고통을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그래서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품으시면서도, 그 길이 고통스러울 것을 아셔서 눈물을 흘리셨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잠시나마 하나님은 나에게 병을 이겨내는 기적과 은혜를 보여주셨다. 덕분에 보잘것없던 내게 재능을 펼칠 기회를 주시고, 사랑받고 기쁨을 누릴 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일을 통해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고, 내가 아프고 고난에 빠졌을 때 교인들은 진심으로 걱정하며 기도해 주었다.
어떤 이는 위로를, 어떤 이는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들의 사랑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베풀어 준 그 도움은, 내가 평생 나눴다고 생각했던 어떤 베풂과 사랑보다 더 크고 깊은 사랑이었다.

나는 늘 남을 도우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른 이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평생 스스로를 바로잡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는 것을.

그 단순한 진실 하나를 깨닫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흔히 인생을 드라마 같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내가 지나온 시간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는 것을.


한때는 죽음으로 내몰렸던 나를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다'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단순히 '살리심'이 아니었다.

살고자 발버둥 쳤던 내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순간마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언뜻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이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병이 깊어지고, 삶의 여러 무게가 한꺼번에 덮쳐올 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수없이 죽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속삭였다.

내가 이렇게 살아내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믿음 하나로 이제까지 버티며 살아왔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주님께서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지키고 계셨다는 사실을.


만약 내게 자살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보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을까?


신앙의 길 위에서, 하나님은 내게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은혜와 기적을 여러 차례 보여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어리석었다.
삶의 또 다른 불행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채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내게 조용히 다가오셔서 말씀해 주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한다.


죽고 싶다고 말하던 내 마음속, 사실은 간절히 ‘살고 싶다’고 외치고 있던 그 속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알아보셨다.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사랑 덕분에 하루를 더 살아내며, 그분의 손길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자살 시도 후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잠시 나는 내가 아픈지조차 알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호흡도, 먹는 것도 기계에 의지했었기 때문에 처음 의식이 돌아온 후 호흡기가 제거되기 전 얼마간의 시간 사이에는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하지만 곧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중환자실의 특징으로 팔, 다리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 실. 히. 느낄 수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내게 그토록 아픈 것이기도 했다.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내 병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나님이 왜 이번엔 병이 낫게 해주지 않으시죠?

집사님 병을 낫게 하시고 음성을 들려주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이번에도 병이 나아야 하잖아요?

병이 낫지 않아 오히려 실망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내가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선 병이 낫는 기적은 이미 내게 보여 주셨다.

사람들은 지나간 일은 잊고 또 새로운 것을 보이라고 하나님께 얘기하고 있었다. 기적은 상시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다들 모르는 듯 행동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 다른 기적도 이미 우리에게 보이셨었다. 혼자라고 외롭게 여기던 내게 친구들, 지인들, 교인들...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언제나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내게 고통과 삶의 어려움들은 여전한데도 말이다.


올여름 일찍 시작했던 긴 장마와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무더위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지만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내겐 기적이다.




믿는 분들은 너무 잘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사도 중에 몸에 가시(병)가 있는 '바울'이라는 사도가 있었다.

그분은 이방인으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크게 회심하여 나중엔 선교하는 일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가시(병)를 없애달라고 세 번의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실제로 바울은 그 시대에 교육을 제대로 받고 능력도 있었던 사람이라 자신의 능력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방해가 되길 원치 않았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때 그 강함이 더 크게 드러날 수 있다고 여겨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한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찬양캘리-블로그(예봄캘리그래피 발췌)


물론 나는 바울과 같은 대단한 선교자나 능력 있는 사도는 절대 아니다.

짧은 식견으로 생각건대 하나님께서 내 병을 낫게 해주시지 않는 건 내가 너무 어리석고 우매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금방 잊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 내 믿음이 아직 약하고, 은혜를 받으면 곧 잊어버릴지도 모르기에 그분은 내게 ‘기억’을 남겨두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앓는 병들이 바로 그 기억의 표식이자, 나를 낮추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도구인 셈이다.

내게 있는 가시(병)가 비록 바울에게 있었던 가시와 같지는 않더라도 내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은혜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끔찍하고 무서운 고통일지라도 조금 더 열심히 참아보려 노력해 볼 생각이다.

진심으로.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했다고 해서 아픈 몸이나 어려운 상황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까지도 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기 어려울 만큼 통증이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없었고 방 밖으로는커녕 침대 밖으로 조차 나갈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은 나쁜 상태였다.


우리에겐 주의를 환기할 만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만한 일.

하지만 뭔가 재미있고 뜻깊은, 기록에 남길만한 이벤트. 그리고 우선 잠시라도 아픈 나를 병석에서 일으킬 수 있는 이벤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누나인 지니를 도와 나를 함께 간병한 강아지 콩이의 이야기를 제보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 담당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셨다.


출처;Page Church, 종이 위에 세운 교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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