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성 장애
잇따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어 죽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이미 앓고 있던 여러 가지 병의 수는 열 손가락을 훌쩍 넘어 있었다.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 어떤 병의 증상인지, 아님 다른 병으로 인해 생긴 후유증인지 그것도 아니면 하루에 4~50알이 넘도록 먹어야 하는 독한 약들의 부작용인지는 나도 모르고 의사들도 몰랐다.
찾아가는 진료과마다 자신들이 진료하는 병을 기준으로만 진료를 했기 때문에, 병이 점점 늘어 가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가 겪는 혼란은 가중되어 가기만 했다.
체력은 항상 바닥난 상태였고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빈속에도 통증이 오면 독한 마약 진통제를 쑤셔 넣기 바빴기 때문에 사실 내 상태가 어떤지는 가히 짐작할 수 조차 없었다.
하루에도 셀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끔찍한 돌발 통증도 여전했다.
돌발 통뿐이었을까. 잠시도 쉴 수 없이 몸을 가르는 듯한 통증에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키며 땀을 비 오듯 흘려야만 했다.
바닥에 사정없이 메다 꽂히는듯한 기절도 여전히 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통은 이미 너무 심해 내게 톱이나 도끼가 있었다면 두개골을 쪼개서 뇌를 끄집어내 차가운 수돗물에 씻어내고 얼음을 넣은 물에 담가 조금이라도 붓기나 열기를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두통으로 인한 오심이 시작되면 역류성 식도염까지 덩달아 심해져서 왼쪽 갈비뼈 아래에 위장 부분이 뻐근해지고 꼬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위경련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화장실로 뛰어갈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팔과 다리에 언제 생길지도 몰라 전전긍긍하는 돌발통은 사실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 밖에도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고 약물에 의지하고픈 충동이 들게 하는 고통은 하루에도 수십 수 가지의 방법으로 끝도 없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살 사고 후로 나는 약물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나 스스로를 놓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할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이 됐던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더는 내 삶이 망가지게 둘 수는 없었다.
내 병이 낫지 않을 거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불행한 일들을 겪으면서 생각으로나 마음으로 내 상황을 받아 드렸다.
그러나 하나뿐인 딸 지니의 병만큼은 꼭 낫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아픈 아이가 평생 나에게 매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 볼 수도 없게 만들 수는 없다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됐든 내가 붙잡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리신 이유도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고 이후 한 달간의 입원 치료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내 병이 낫는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병까지 생기며 나를 간병하는 딸을 지치게 만들고 말았다. 훗날 지니가 엄마를 간병하던 시간 중에 이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말을 해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난 자식에게 큰 빚을 진 나쁜 엄마다.
이 무렵에도 기절하던 증상은 여전했는데 가끔 한 번씩 가장 고통스러웠던 몇 년간의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가고 있었다.
딸이 전해 주는 말에 따르면 평소에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 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잊은듯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런 일들은 자살사고로 한 달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한 이후부터 3~4일 간격을 두고 자주 발생했다.
부러져서 채 아물지 않아 제대로 걷는 것은 고사하고 보호대 없인 한 발자국도 내디딜 엄두도 못 내던 발목으로 온 집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고, 온갖 짜증과 화를 내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런 모습이 나타날 때는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통증이 심했던 날 주로 심하게 발현 됐는데, 기절했다가 깨어났을 때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고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때의 나를 딸과 나는 ' 화 많은 김 씨'라고 불렀다.
처음엔 딸이 내게 했던 모든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딸이 말하는 모습은 내가 평소에 보였던 모습 그 어디에도 없던,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상마저 차갑고 날카로우며 험상궂어 보였다는 아이의 말에, 내가 너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아이는 휴대폰에 몰래 녹음을 했고 그제야 나는 내게 다른 문제가 생겼다는 걸 받아 드릴 수 있었다.
처음 녹음 한 내용을 들었을 땐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딸의 말대로 기절 후에 잠깐씩 나타나는 모습 속의 목소리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였다.
내가 CRPS를 진단받기 전.
딸의 병을 알게 되기 전.
내가 자살사고를 저지르기 전.
발목이 부러져 CRPS가 다리에까지 생기기 전.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대에 살고 있는, 지금 현재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는 예전의 나였다.
다만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낯선 모습의 나였다.
결국엔 녹음된 내용을 가지고 진료받고 있던 신경 정신과에 상담을 요청했다.
진료 중에 딸의 얘기를 듣고 녹음된 내용까지 모두 들으신 교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해리 현상 중에 한 가지입니다. 지금 해리성 기억상실이 있는 것처럼 몇 년간 급작스럽게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셔서 마음이 방어기제로 일정기간의 일을 잊고 싶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생길만한 큰 일을 겪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스스로 본인을 보호하려 보이는 행동이기도 하고요.
사실 해리 현상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은 몸을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잠시 안정제를 쓰긴 하겠지만 본인이 극복하셔야 돼요.
많이 힘드신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언제든지 예약 상관없이 상담 필요하시면 전화 예약해서 오세요.
가급적 스트레스 안 받도록 주의하시고 다른 것에 신경 쓰실 만한 것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해리 현상도 본인이 어떻게든 병을 이겨내 보려고 노력하는 중에 생기는 현상이니까 지나갈 겁니다.
지금도 너무 잘하고 계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시간이 지나가면 해리 현상도 줄어들 겁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뭐라고 했든 간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 힘들고 괴로웠던 많은 시간들을 잊으며(해리성 기억상실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었던 터라 그런 걱정은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고 아무 노력도 하기 싫은 힘겨운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한번 죽어 보기까지 했는데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진정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재능이 모자라서, 돈을 버느라, 아이를 키우느라, 병과 싸우느라 여태껏 꿈만 꾸던 일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아직 살아 있고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에게 뜻밖의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해리성 장애- 해리성 장애는 평상시에는 통합되어 있는 개인의 기억, 의식, 정체감, 지각 기능 등이 붕괴하여 와해된 행동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해리’라는 것은 연속적인 의식이 단절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해리 현상은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나 외부적 충격에 대한 자기 방어기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갑자기 장애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기도 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