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

기도하는 의사

by 강나루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약을 먹은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날의 이른 새벽녘이었다.

지독하게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어리둥절한 마음에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빨리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금세 잠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누워있는 나를 껴안은 딸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엄마, 잘 잤어? 왜 이렇게 오래 잤어... 너무 걱정 많이 했어. 다시는 나만 두고 이러면 안 돼...!!

울고 있는 딸을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몇 마디라도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호흡기를 떼어내지 못한 탓에 소리는 한 마디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을 졸였을 딸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도 건넬 수가 없었다.


2019년 2월 20일, 중환자실에서 난 그렇게 나를 버렸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살시도를 한 환자는 원칙적으로 정신과 격리병동에서 한 달간 입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호흡기를 제거하자마자 나는 절대 입원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그냥 퇴원은 절대 안 된다는 병원과 대치 끝에 3일 후로 외래 진단 예약을 잡고 그 기간 안에라도 조금이라도 이상한 마음이 들면 바로 병원을 찾기로 약속한 후에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정말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어떤 근거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내게 생긴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었다.

변하지 않은 상황들과 나를 버린 가족들에 대한 원망도 여전했고 병에 대한 고통 역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여전히 아프고 외로웠으며 지쳐있었다.


아무리 잘 관리를 하고 날짜에 맞게 개수를 맞춰 놓아도 심한 불면증으로 인해 먹는 졸피뎀과 신경 안정제, CRPS 돌발통과 12시간 간격으로 먹는 마약 진통제가 집에 항상 넘치도록 있었다.

다시 죽으려고 마음먹는 건 시간문제였다. 약으로 죽기 어렵다는 걸 알았으니 약으로는 두려움만 없애도록 도움을 받고, 다른 방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섬뜩한 마음에 혼자 놀라기도 했다.

3일이 지나기도 전에 입원하겠다고 내 입으로 말을 하고 병원으로 자진해서 들어갔다.

살아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마음이 사실상 더 컸다.




격리 병동으로 입원을 하려고 하니 앓고 있는 병과 먹는 약들이 문제가 되었다.

난 자율 신경 실조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기절했고, 수시로 CRPS 돌발통이 생기며, 하루 24시간 두통이 떨어지지 않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환자였다. 그런데 마약 진통제 자체가 정신과 격리병동에 반입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정신과 개방 병동에 보호자 동반으로 입원하게 됐다.

개방 병동이라 해도 오후 8시가 되면 병동 전체의 중앙문을 걸어 잠갔고 마약 진통제조차 간호사 실에 맡겨 놓은 채로 한알씩 받아먹어야 되는 시스템이었다. 통증이 아무리 심해도 모르핀을 맞을 수는 없었다.

통증 관리 면에선 최악인 시스템이었다. 1인실에 입원해 있었지만, 기절해서 난리가 나고 돌발통으로 울부짖는다고 난리가 났다. 우리 병실 앞은 언제나 다른 병실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무슨 병인가 싶어 다들 호기심에 구경을 하러 온 것이었다.

제정신을 찾기는커녕 내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딸이 병원 복도에서 우연히 뇌신경과 담당 교수님을 만나게 됐다.

오랜 진료 기간과 잦았던 입원, 심했던 증세 덕분에 내 상태에 대해 자세히 아시고 언제나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능력 있고 자상하신 분이셨다. 딸을 먼저 알아본 교수님이 알은체를 하셨고, 딸은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전과(轉科) 조치가 이뤄졌다.

입원실은 VIP 병동 작은 방으로, 뇌 신경과와 정신건강 의학과, 마취 통증 의학과가 함께 협진하기로 했다.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던 우선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는 사실과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통증에 대한 조치가 바로 이뤄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선 안도할 수 있었다.


병실을 옮기고 딸이 짐 정리를 얼추 마쳤을 때 마침 저녁 회진 시간이 되어 교수님께서 한 무리의 의사들을 이끌고 병실로 들어왔다. 딸과 한참 얘기를 나누던 교수님은 얘기를 다 들은 후에 함께 온 의료진들에게 양해를 구하셨다.

미안하지만 잠깐 나가서 기다려 주세요. 잠시면 됩니다

함께 온 이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본 교수님이 이번엔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하셨다.

나루님,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면 제가 잠깐 기도 해 드려도 될까요?

예전의 나였다면 실력 없는 의사가 하나님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는 이미 오래 경험해 잘 알고 있는 나였다. 목숨을 버리려 했던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한 교수님만의 최선의 위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CRPS를 확진받은 이후로 내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확신하고 있던 내 눈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마 입을 열어 기도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님께서 나를 버렸다고 억지를 부리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동안 사실 주님은 나를 지키고 계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까지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교수님은 자신의 의사 가운을 벗어 보호자 침대에 걸쳐 놓고 블라우스 차림으로 아픈 내 오른팔을 피해 나를 가볍게 안았다.(여자 교수님입니다) 그리고 나의 왼쪽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기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내 오른쪽 귀에서 교수님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울림이 있는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리기 시작했다.


나루야. 많이 힘들었구나. 많이 지쳤구나.
나는 한 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단 한순간도 네 옆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니?
내가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을 보지 못했니?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로워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내가 지금까지와 같이 언제나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날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함께 있던 교수님도 딸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내 말을 믿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지쳐, 내가 앓고 있는 병들의 고통에 젖어, 그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먹는 약물에 절어 환청을 들었거나 환각을 느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믿든 안 믿든 그건 내게 상관없었다.

그제야 내가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특별한 존재 이신 그분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놓지 않으셨고, 나를 사랑하는 내 딸이 내 옆을 지키고 있었으며, 나를 위하고 사랑해 주는 친구들과 지인들도 언제나 함께였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교회의 목사님과 많은 교인들이 함께였는데 너무도 힘든 상황에 그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더불어 언제나 '착한 나루'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날 버린 가족들에 대한 미움과 실망, 이기적이고 냉정한 남편에 대한 가망 없는 기대, 내 몸에 가해지는 견딜 수 없는 고통, 갈수록 더욱 망가져 가는 내 삶에 대한 슬픔, 다른 불치병을 안고 엄마를 돌봐야 하는 자식에 대한 절망과 미안함... 이 모두를 다 묻고 새로운 나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나를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나 자신을 위하여 슬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살기 위해 나를 내려놓은 고통스러운 한 달간의 입원 시간이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 무너지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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