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내몰렸다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아픈 마음은 병든 몸 안에, 병든 몸은 집 안에 갇혀 옴짝달싹을 못한 채 고립무원이 되었다.
다리까지 CRPS가 되어버린 후론 집 안에서 혼자 운신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물론 그전에도 잦은 기절로 침대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젠 다리에 생기는 끔찍한 통증이 더해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리에 통증이 생기면 당연히 팔에도 통증이 번졌고, 반대로 팔에 통증이 생기면 다리에도 통증이 번졌다.
매일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 잠겨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세 식구가 다 같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게 된 날이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는 나를 걱정하던 딸이 샤부샤부를 준비해 위에 부담되지 않도록 고기와 채소를 조금이나마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저녁이었다. 칼국수와 야채죽까지 미리 준비해 뭐든 조금이라도 먹어주길 바라는 딸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식사였다.
너무 많이 먹어야 하는 독한 약들 때문에 입안이 항상 쓴맛이 돌아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준비하느라 애쓴 딸의 마음과 정성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식탁에 앉았었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우연히 이사 초기의 얘기가 나오게 됐다.
시작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얘기가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건 남편과 내가 어느새 둘 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 지나간 일을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냐고?
이사한 다음 날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얘기했고 전화하지 말라고 하셔서 안 하는 거라고.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그럼 여태컷 내가 얘기한 거 듣기는 한 거야?
당신이 그때 엄마하고 아버지한테 제대로 설명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모든 게 이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
당신이 작정하고 속인 게 모두 내 잘못이 됐다고!! 모든 걸 망친건 당신이야!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러면 됐지. 뭘 더 어쩌라고? 아우 씨!!!
서로를 비난하며 큰 소리로 싸우던 중에 남편은 내 양팔을 두 손으로 세게 붙잡고 엇갈리게 하여 거칠게 벽 쪽으로 밀쳐 버렸다.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이 없고, 팔과 다리에 CRPS가 있어 대항할 수 없던 나는 종이 인형처럼 날아가 '쿵'소리가 나도록 벽에 부딪혔다.
처음 겪는 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게다가 잇따른 돌발통으로 이를 악물고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던 딸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살아생전에 가정폭력으로 경찰을 부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경찰이 집에 도착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이 보인 폭력적인 모습에 스스로도 놀란 상태였고 경찰의 권고에 따라 며칠간 입을 옷을 챙겨 집을 나갔다.
딸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경험하게 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놀라고 지치고 슬프게 만들었다. 딸이 엄마, 아빠의 불화를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식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무던히 인내하고 노력했던 지난 세월과 노력이 무색해져 버렸다.
남편을 용서하려 노력하며 사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지 않아 남편은 사과를 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편의 사과에 진심이 빠졌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 아무리 많이 아팠어도 부모님에겐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괜찮아요, 견딜만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프다고 말해봐야 달라질 것 없는 현실에 염려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다. 그런데 평생을 그렇게 살았더니 나는 원래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졌었나 보다.
돌발통이 너무 심해 이를 악물다 못해 이를 보호하려고 끼우고 있던 이 보호대(마우스 피스)가 찢어지기까지 한 날이었다. 시간에 맞춰 마약 진통제를 투약했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통증에 몸부림치다 생전 처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 좀 살려줘.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엄마... 나 너무 아파.
그런데 다음날 가족 중 한 사람이 내게 전화해 말했다.
아프면 방문 쳐 닫고 들어가 혼자 참아.
통증이 생겼을 때 엄마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엄마도 많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참기 힘들면 차라리 죽어버려.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내 거미줄 같은 신경은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며칠 전,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던 권사님 한 분이 2년여의 암투병을 끝으로 나와 마지막 연락을 한 사흘 후에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며칠 후에 소천하셨다.
삶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견디고 참아낼 수 있는 방법도, 마음도 내겐 없었다.
모든 것들이 내게 너는 죽어야 돼. 알고 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운명은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다.
너는 이제 그만 죽어야 한다고....
네가 이래도 견디겠다고?
다들 네가 필요 없다고 하잖아? 남편도 널 사랑하지 않고 부모도 널 버렸어.
딸은 너 때문에 아프고 그 아픈 몸으로 어쩌면 평생 동안 네 팔, 다리 노릇을 해야 할지도 몰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널 떠나는데 네가 뭐라고 견디고 버텨?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없으면 다들 행복할 거야.
내게 있었던 그날의 일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이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은 죽음으로 내몰려졌을 뿐이다. 넌 죽어야 한다는 운명에 내몰려 무섭고 두렵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게 시련을 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내 곁에는 계시지 않을 거라 장담하듯 말했지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건, 내가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이 계시다는 걸 확인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2019년 2월 13일 이른 새벽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 딸과 콩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가지고 있던 다량의 수면제와 신경 안정제, 마약 진통제 수백 알을 삼키고 난 깊고 오랜 잠에 빠져 들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후회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미련과 슬픔, 고통과 안도가 뒤섞인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