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장르가 바뀌고 있었다

비극

by 강나루

50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들이 겪는 만큼의 풍파는 겪을 만큼 겪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어려움들은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인 CRPS를 진단받고 생긴 어려움에 비하면 그저 전초전에 불과했다.

진정한 불행에 '적당히'라는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다.




딸에게 나을 수 없는 희귀 난치 질환이 있다는 판정을 받은 후엔, 그나마 그때까지 견디고 버티던 내 마음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딸아이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썼지만 그건 부질없는 노력에 지나지 않았다.

딸의 병이 중증으로 진행될 때까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딸이 사춘기로 접어든 이후로 시험 때가 되면 종종 두통을 호소하며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안과에 데려가 보려 해도 시험이 끝난 후에 가겠다는 말에 시간을 미루다 보면 그런 증세가 사라지기도 하고, 막상 병원에 데려가 보면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해 보안경만 맞추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포동에 있는 대학병원 안과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듣고 말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딸은 자주 발목을 삐거나 넘어져 반깁스를 일상처럼 하고 다녔다.

멀쩡히 학교에 갔다가 하교 길에 정형외과에 들렀다 오는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어떤 병원에서도 다발성 경화증의 가능성을 얘기한 곳은 없었다. 그저 많이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해 힘들어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MS(다발성 경화증)의 증상이었고, 그것들을 겪을 때마다 아이의 뇌에 반점이 생겼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고 미친 듯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 돼버렸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영접했을 때 하나님께선 왜 내게 그토록 넘치는 은혜와 기적을 보여주셨던 걸까?

보통의 평범한 크리스천들처럼 평범하게 평안한 삶을 바라는 게 지나친 욕심이었던 걸까?


딸의 희귀 난치 판정 이후로 나빠진 컨디션을 조절하고 Wash out을 위해 잡혀있던 입원날짜가 다가온 밤이었다.

딸아이가 희귀 난치 질환에 걸렸다고 해서 내 병이 한 번에 좋아질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했지만, 힘들어하는 아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모두 잠든 밤에 병원에 가져갈 세면도구를 챙기고 있었다.(다른 짐은 이미 딸이 다 준비해 놓았고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건데...)

높은 장에 있던 물건을 꺼낸 후 딛고 있던 발판을 내려서는데, 샤워 후에 미처 마르지 않은 채 남아있던 물을 밟아버렸고 그 순간 왼쪽 발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돌아가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꽈지직!!!

발목이 왼쪽으로 15도쯤 더 돌아간 모습이었다.


너무 놀라서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돌아간 발을 붙잡고 바르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한 만큼 발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제야 아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와 남편을 깨우고 119를 부르고....

수술한 발목으로 인해 왼쪽 다리 역시 CRPS 판정을 받았다.

어깨 수술로 CRPS가 된 오른팔에 이어 왼쪽 다리까지 CRPS가 돼 버렸다. 수술 후 재활을 하지 못하고 CRPS가 돼버린 다리로 걷기는 어려울 거라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

자율신경 실조증 증상인 잦은 기절 증세로 혼자서는 외출할 수도 없고 외출 시엔 진작부터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던 나였지만,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모든 상황들이 그저 지독한 악몽 같았다. 아니, 꿈이라면 깰 수라도 있지. 내 인생 자체가 지옥이 돼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런 순간순간에 내가 믿던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셨던 걸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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